누구나 이 영화를 보면 이것이 노아 바움백의 자전적인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할 거다. 공식적으로 감독 본인이 그렇게 이야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은 제니퍼 제이슨 리라는 걸출한 배우와의 결혼과 이혼이 극중 연극 연출가인 아담 드라이버와 배우인 스칼렛 요한슨의 결혼 생활과 이혼 공방에 투영 되었으리라 넘겨짚게 된다. 사진 상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저 장면에서 스칼렛 요한슨의 빰엔 아마 눈물이 흘러 내렸다. 왜 날 사랑하지 않느냐며 펑펑 우는 수동적인 눈물이 아니라 계속 작아지고 작아져서 이대로 매몰될 수는 없다는 독립된 자아의 능동적인 눈물이다. 그래서 그녀의 눈은 한편으로는 이글거린다. 짧게 자른 머리, 무채색의 얼굴, 손목에 찬 시계, 시종일관 남성적인 패턴의 셔츠와 바지를 입고 나오는 그녀는 남편을 대신해 아빠의 역할도 거의 도맡아 한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내가 바라는 내가 아니다. 그녀는 그런 자아에 타협할 수가 없다. 아담 드라이버는 도무지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의 손가락에 끼워진 결혼 반지는 법적 부부로서의 징표로만 느껴진다. 모든것이 그런대로 잘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연극은 브로드웨이로 가고 아내도 나름의 커리어가 있다. 때로는 귀찮게 느껴지는 어린 아들은 어쨋든 계속 자라고 있다. 전만큼 뜨겁게 사랑하지는 않겠지만 이혼씩이나 해야 할 정도로 뭔가가 크게 잘못 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혼은 얼마나 뭐가 어떻게 잘못되어야 하게되는 선택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해서 결혼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 이혼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없는 이혼은 없지만 이혼이 실패한 결혼의 동의어로 해석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학습된 결과이다. 이혼 할 용기가 있으면 보다 상대를 이해하고 결점을 보듬으며 살아라가 아니라 오히려 이혼할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결혼을 해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혼 생활에서 배우자와 부모로써의 역할 기대에 수동적으로 매몰되지 않고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남는 것은 과연 가능한일일까. 이 영화는 남녀 둘 중 누구 한명을 굉장한 피해자로 설정하고 이혼 과정에 감상적으로 접근하는 대신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 문제를 숫자로 단순화하고 관계를 도식화하는 피튀기는 법적 공방으로 피폐해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어쩌면 광활한 미국 사회 특유의 풍경일지도 모르겠지만 원래 남이었던 두 사람이 우린 남이 아니야 라는 결혼 장치에 스스로를 세뇌하다 법적으로 다시 처절하게 남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은 씁쓸했다. 범죄 전문 변호사는 나쁜 사람도 좋게 만들어야 하지만 이혼 전문 변호사는 정상적인 사람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극 중 변호사의 말처럼 누군가는 절대적으로 나쁜 가해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녀의 이혼은 상대를 짓밟고 소중한 것을 빼앗으려는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속에서도 정체성을 유지하며 계속 성장하고 싶었던 한 인간의 외침이었다.
적지 않은 아담 드라이버의 영화를 보았지만 그는 나에게 왠지 밉상 캐릭터로 남았는데 이 영화를 통해 조금 친근해진 느낌이다. 그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참 좋았다. 갑자기 뮤지컬 영화인가 싶을 정도로 호소력있었던 노래 실력. 거의 이혼을 당하다시피하고 그 과정에서 마치 몽땅 잃은 듯 보이는 그를 동정하게 만들기 위한 편파적인 장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승자없는 싸움으로서의 이혼과 패자를 양산하는 결혼이라는 제도의 맹점을 환기시킨다. 이 영화에서의 이혼은 결혼의 정반대 개념이 아니라 결혼과 동일한 크기의 조각을 이루는 관계의 일부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 랍스터가 생각났다. 절대 누군가를 사랑해서는 안돼며 결혼이 불법인 사회와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신시키는 양극의 두 사회. 이래도 저래도 우울한 사회다. 결혼은 정말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인 미친 짓일까. 사랑하는 사람과 살며 두 사람 모두 각자 가장 순수한 결정의 자아로 영원히 남고 싶은 열망. 그것은 정말 신기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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