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작사 작곡하고 노래까지 부르는 사람들의 온 노래에 걸쳐 묻어나는 고유의 자전적 스토리 텔링이 있듯이 각본과 연출을 항상 겸하는 사람들의 작품들 사이의 뗄레야 뗄 수 없는 연결 고리들을 확인하며 지속적으로 그들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관객으로써 큰 행운이다. 작업하는 배우들과의 끈끈한 관계와 이 영화에서 다음 영화로 계속 확장되는 이야기들에서 노아 바움백과 홍상수가 비슷한 연출 스타일을 가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좋다. 뚜렷한 직업없이 뉴욕에서 생활하는 로저는 베트남으로 휴가를 떠나는 형의 집을 봐주기 위해 십년 넘게 떠나있던 고향으로 돌아온다. 번듯한 가정을 이루고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하는 개인 비서까지 집에 둘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남자인 형과 비교하면 한없이 불안정하고 결핍된듯 보이는 로저. 항공사며 커피 회사며 여기저기로 불만이 가득 담긴 신경질적인 편지들을 보내는 것으로 소일하고 수영장이 딸린 대궐같은 집에 덩그러니 남은 형의 개가 살집을 짓는 목수가 되어 형의 개인비서인 프랜시스와의 소통을 시작한다. 하지만 개는 병이 들어 죽어버리고 로저가 짓는 개집은 주인을 기다려보지도 못하고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오랜기간 떠나있던 고향에 돌아오는 주인공의 조금은 움츠러든 시선과 (하지만 동시에 애써 그러지 않은척 소극적으로 으시대는) 고향에 남아있던 친구들의 그런 주인공을 바라보는 조금은 차갑고 떨떠름한 시선이 공존하는 이런 느낌의 영화들이 종종 있었다. 이혼한 샤를리즈 테론이 고향에 돌아와서 결혼에서 잘 살고 있는 옛 남자친구의 행복한 현재를 애써 부정하며 몸부림치는 Young adult (https://ashland11.com/191) 라든가 직장도 잃고 뭘 해야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마음을 추스리러 고향에 돌아오지만 부모님 집에서 샤워조차 마음 편히 할 수 없는 몸만 큰 아이가 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프란시스 하의 어떤 장면이라든가. 난 항상 뭘 해야할지 모르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지극히 평온해 보이는 주인공들이 나오는 영화들과 그들이 막 뭔가를 하려는 순간 끝이 나버리는 영화들이 좋았다. 어쩌면 나 자신이 아무런 발전도 성장도 추구하지 않고 주어진 작은 일들에 안주하는 삶을 살고 있거나 그것이 최선이자 최상의 상태라고 합리화하는데 익숙해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철빔 하나가 빠져서 어떻게 해도 각이 안 잡히고 무너지는 텐트 같은 삶속에서 방황은 나의 영원한 소임이라 말하는듯한 로저에게 맡겨 둔 애완견 하나 건사하지 못한다고 힐난하는 형의 목소리는 버겁기만 하다. 그래서 별달리 이룬것 없고 앞으로도 달리 그럴것 같지 않은 인생을 대하는 마흔살 로저의 심리와 아무것도 하지 않는듯 보이지만 그렇다고 별 걱정도 없어보이는 로저의 그런 표면적 여유를 동경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지나치게 젊기에 불안한 이십대의 플로렌스의 심리 둘다에 공감이 갔다. 심지어 '나 그냥 가끔 목수일하면서 그냥 별 일 안하면서 살 고 있어'라는 식으로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향해 냉소하는 로저에게 '우리 나이에 그런 결정을 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지' 라고 무덤덤하게 말하는 베스에게서 우리 모두가 그에 맞서 투쟁하지만 애써 부정하는 삶의 피로감이 처절하게 묻어난다고 하면 비약일까.
너무나 좋아했던 배우 제니퍼 제이슨 리. 돌이켜보니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러쉬, 위험한 독신녀, 조지아 등등의 모든 전성기의 영화에서 그녀가 보여준 매력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퇴폐미가 아니었나 싶다. 택시 드라이버의 조디 포스터 역이나 25그램의 나오미 왓츠 역, 레퀴엠 포 어 드림의 제니퍼 코넬리역을 그녀가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그 시대의 비슷한 또래의 여배우들 중 가장 개성있었고 드라마틱한 얼굴을 가졌던 배우, 곧 예순을 바라보지만 무슨 역을 해도 좋으니 마블 영웅들의 엄마역 같은것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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