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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Frances Ha_Noah Baumbach (2013)


올리비아 아사야스의 크라이테리온 베스트 목록  (올리비아 아사야스 크라이테리온 베스트) 을 통해 알게 된 영화.  2013년 영화인데 크라이테리온에서 출시 되었다는게 신기하기도 했고 흑백으로 촬영되었고 무엇보다도 흑백과 핑크가 절묘하게 조화된 음악적인 영화 포스터가 Smith 의 베스트 앨범 자켓을 떠올리게 했다. (포스터 속의 프랜시스가 지휘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알고보니 춤을 추고 있는것이었음) 오아시스가 영향 받은 뮤지션으로 스미스와 스톤 로지즈를 언급한 적이 있기에 수집하기 시작했던 스미스의 앨범들. 이 뜬금없는 흑백 영화가 영화를 채 보기도 전에 나로 하여금 어떤 회상에 젖게 하고 있다는 기분 좋은 예감, 어쩌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추억도 아낌없이 녹아 있을것 같은 느낌. 요즘이 배경인 영화인데 굳이 흑백 필름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제목에 등장 인물의 이름을 내세운 영화라면 여주인공은 아주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인물이 아닐까. 



뉴욕 브룩클린에서 친구와 함께 집을 빌려서 살아가는 무용수 프랜시스. 함께 살자는 남자 친구의 제안도 거절하고 그녀가 택한것은 그녀들 스스로도 섹스만 없을 뿐 레즈비언 커플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단짝 친구 소피와의 생활이다. 하지만 믿었던 소피는 꿈꾸던 동네에서 (당연히 방세가 비싼) 살 기회가 생겼다며 프란시스를 남겨두고 미련없이 떠난다. 소피는 아마도 더 비싼 집값을 분담할 능력이 되는 룸메이트를 구한것일거다. 혼자서 집세를 낼 여력이 없던 프란시스는 소피를 통해 알게 된 남자들이 살고 있는 집의 하우스 메이트로 들어가고 방세를 내기 위해서는 크리스마스의 무용 공연이 절실하지만 공연에 설 수 없게 되었다고 통보 받는다. 무용수로서의 일 대신 행정 업무를 보며 스튜디오를 사용할 수 있는 자리를 제안 받지만 거절하고 무용단을 나와 이런 저런 파트 타임을 뛰며 돈을 모으는 프랜시스. 한 저녁 모임에서는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잘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겉돈다는 느낌을 받고 취한 프랜시스는 즉흥적인 파리 여행을 계획하고 그로 인해 더 큰 적자와 더 깊은 공허함에 빠진다. 파리의 카페에 앉아 케잌 부스러기를 만지작 거리며 시간을 떼우고 있는 프랜시스에게 소피가 전화를 걸어오고 남자 친구의 일 문제로 도쿄로 떠나게 된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그리고 프랜시스는 더욱 상실감에 빠진다.



마냥 부러워 할 수 만은 없는 프랜시스의 이야기이지만 영화의 시작과 함께 짤막하게 나열되는 소피와 프랜시스의 일상들은 여유롭고 경쾌하기 그지없다. 공원에서 탭 댄스를 추고 모은 돈을 버스킹하는 밴드에게 넘겨주고 줄행랑치고 소파에 누워서 책을 읽으며 뜨개질을 하고 있는 상대에게 책의 인상적인 구절을 읊어 준다거나, 좁은 부엌에서 함께 요리를 하고 창틀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대화를 주고 받고 계단에 앉아서 맥주를 들이키는 특별할것 없지만 걱정과 근심이라는 단어가 자리잡을 곳도 없어 보이는 자의 일상. 어떤 상황에서도 의지할 수 있을것 같은 영원할것만 같은 우정이 있고 가볍고 장난스러우면서도 개성 넘치는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이 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일상 뒤에 따라오는것도 역시나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들남자 친구와의 문제일자리 그리고 돈에 관한 것들그리고 잠들기 전 그들이 나누는 대화 역시 그러한 질척한 고충을 맞닥뜨린 자들의 전형적인 미래 일기이다. '프랜시스 넌 정말 유명한 현대 무용가가 될거야난 너에 관한 엄청난 책을 출판할거고 우리는 파리의 비싼 아파트에서 휴가를 보낼거고 정말 멋진 연인이 되겠지만 우리는 아이는 가지지 않을거야'. 모두가 비슷한 것들을 꿈꾼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때 똑같이 절망한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다. 누가 어디에서 누구와 살며 어떤 옷을 입고 어디를 여행하며 무엇을 먹는지가 우리가 낭만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지 오래이다. '저거 임스체어 아니야??' 프랜시스가 새로 살기 시작한 아파트에 방문해서 방 구석구석을 훑어 본 후 소피가 내뱉는 첫 대사이다. '난 일자리도 필요없고 차도 필요없고 세금도 내고 싶지 않아' 라고 말하는 <영원한 휴가>속의 앨리는 요즘 세상에 없다. 낭만의 정의는 바뀐지 오래이고 젊음은 더 이상 그 자체로 빛을 발하지 않는다. 



불안정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 그래서 서로에게 정신적으로 의지가 되었던 소피와 프랜시스이지만 소피는 결국 프랜시스를 남겨두고 떠난다. 심지어 커피물 끓일 주전자 마저 가지고 떠나버린 소피, 텅 빈 아파트에 홀로 남겨진 절망적인 프랜시스는 급한대로 냄비에 커피물을 끓이다 손을 데이고 소피에게 전화를 걸어 주전자를 내놓으라고 욕설을 퍼붓지만 다음 장면은 세금 환급에 관한 편지를 받고 천진하게 기뻐 날 뛰는 프랜시스의 모습이다. 세상에 널리고 널린게 집인데 정작 자신이 설 조그마한 자리, 방 하나 찾기가 마땅치 않음에 조급해지고 절망하는 프랜시스.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버지니아 울프를 얘기하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프랑스 흑백 영화도 마음 편하게 보고 싶겠지만 모든것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영화를 보며 중국 음식을 먹는 프랜시스는 체할 것 만 같아 보인다. 낭만의 도시 파리를 여행 하고 있지만 시간을 떼우려고 케잌 부스러기를 손가락으로 누르고 있는 프랜시스의 모습은 처량하기만 하다. 아직 단단히 자리 잡지 못한 가진것 없는 세대에게 더 이상 낭만을 허용하지 않는 세상. 현실을 짓누르는 무거움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될것이라 다독이며 감내하던 여유도 삼켜버린지 오래이다.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사람이 인생에 뜻하지 않은 기회와 우연과 운명을 제공할것이라 기대하지만 결국 돌아오는것은 더 큰 절망, 현실은 더 날것이 되어 소화되지 못하고 배탈을 일으킨다. 



매사에 즐거워보이고 장난끼 넘치는 긍정적인 프랜시스이지만 함께 살기 시작한 레프와 벤지 사이에서도 박탈감을 느낀다. 정신적인 교감은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오토바이 헬맷을 들고 유유자적 집을 나서는 레프를 보며 벤지와 프랜시스가 나누는 대화는 이렇다. '레프는 오토바이도 있고 심지어 차도 있어.' '좋겠다. 난 심지어 이 집을 나설 다리도 없는데.'  재치 넘치는 대사, 과장된 몸짓과 디테일한 연기들이 흑백 필름속에서 빛이 난다. 흑백 필름속의 트렌디하고 풍족한 뉴욕을 보며 이 영화가 마치 아무렇게나 찍은 컬러 사진을 수십가지의 필터를 통해 흑백으로도 로모 카메라로도 손쉽게 변환 시킬 수 있는 인스턴트 같은 영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것은 기우였다. 내가 언젠가 동경했고 지금도 여전히 매력적으로 느끼는 어떤 흑백 영화속의 삶의 원형들을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렸다. 레오 까락스의 <소년, 소녀를 만나다> (소년,소녀를 만나다 리뷰 보러가기) <나쁜 피>, 짐 자무쉬의 <영원한 휴가>와 <천국보다 낯선>, 구스 반 산트의 <말라노체> (말라노체 리뷰 보럭가기)그리고 누벨바그 하면 항상 거론되는 어떤 프랑스 고전 영화들. 이 영화 <프랜시스 하>를 보려는 사람이라면 재미 삼아 보면 좋을것 같은 영화들이다. 왜 굳이 흑백으로 촬영했을까 라는 물음표로 시작된 내 기대감도 아낌없이 충족됐다. 만든이들의 추억과 그들의 옛 영화에 대한 동경이 영화속에 여지없이 드러난다. 2013년의 젊음들은 흉내내기 힘든 삶의 애티튜드. 무원칙이라는 원칙속에서 자유로웠던 인물들. 영화는 한편으로는 2013년의 좌절한 프랜시스가 꾸는 흑백의 백일몽처럼 느껴진다. 30년전의 흑백 영화속에서 사랑에 고통받지만 지독히도 냉소적이었으며 대책없이 허무했고 별다른 삶의 모토없이 (혹은 그런척하며) 하루라는 최소한의 삶에 조차도 얽매이지 않으려 애썼던 많은 인물들이 프랜시스에게 레프에게 벤지에게 소피에게 살며시 다가와 어깨를 토닥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장면. 갑자기 흘러 나오는 음악. 1월에 세상을 뜬 데이빗 보위의 <Modern love>이다. 정말 가슴이 펑하고 터지는 장면이었다. 30년이 훨씬 지난 노래인데도 그 인트로는 뭉클하다.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고 퇴폐적인 목소리와 감성, 시대를 앞서갔다라는 구태의연한 수식도 아깝지 않은 뮤지션이다. 프랜시스의 달리기 장면 그 자체가 짜릿했는지는는 모르겠다. 단지 같은 음악에 맞춰서 담배를 꼬나 물고 어둡고 조야한 밤거리를 미친듯이 뛰던 30년전 영화 <나쁜 피>의 드니 라방이 떠올랐을때 가슴이 턱하고 막혔던것이다.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띄고 상기된 표정으로 뉴욕 한복판을 달리고 또 달리는 프랜시스의 이 장면은 분명 레오 까락스의 나쁜 피를 향한 오마쥬이다. 줄리엣 비노쉬를 향한 가슴속의 벅차 오르는 사랑을 주체 못하고 정신 나간듯 달리던 드니 라방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우울에 잠겨 있는 안나가 있는곳으로 되돌아 간다. 그리고는 말한다. '사랑이 이토록 별안간 갑자기 시작되어서 영원히 지속된다는것을 믿느냐고.' 우리가 늘상 꿈꾸는 감정을 그토록 솔직하고 순수하고 비현실적으로 담아내던 그들. 그래서 낭만적이다. 긴 달리기 끝에 프랜시스는 새롭게 둥지를 튼 벤지와 레프의 집에 골인한다. 프랜시스의 표정은 가까스로 다시 발 붙일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으로 가득하다. 결국은 그 안도감도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절망의 종류는 두 가지이다. 절망의 원인이 확실할때. 도무지 그 원인을 알 수 없을때. 프랜시스가 느끼는 좌절은 한편으로는 드니 라방의 그것보다는 정당하고 명백해보인다. 팍팍한 현실. 이유있는 좌절. 하지만 모든것이 상대적인 박탈감에서 비롯된 우울일뿐이다.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래서 우울하다. 그곳에 낭만이 설 자리는 없다.



레프가 쓰고 있는 페도라는 <네 멋대로 해라>에서 장 폴 벨몽도가 쓰고 있는것과 너무 비슷하고, 그의 전체적인 외모는 <천국보다 낯선>속의 에디와 윌리의 겉모습을 섞어 놓은듯 하다. 물론 그는 무늬만 보헤미안스럽지 선배들의 애티튜드와 감성을 전혀 물려 받지 못했다. 그의 아름답고 모던한 아파트속의 (하지만 역시 임대료를 내야하는) 벽속에 걸린 추억돋는 액자속 사진들은 그의 가족 사진도 아니고 여자들을 데려오면 으례 내 방 구경 시켜줄까 하고 자기 방으로 끌고 가는 그렇다고 여피도 아닌 시쳇말로 그냥 있어 보이는 인물이다. 프랜시스는 소피의 블로그를 통해 그녀의 도쿄 생활을 엿보고 모르긴해도 그로 인해 더 조급해진다. 함께 미래일기를 쓰던 친구인데 누구는 지구 반대편의 삶을 만끽하고 누구는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찬 컴퓨터실에서 행복 돋는 친구 블로그나 클릭하고 있고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소피는 하지만 도쿄 생활의 불만을 토로한다. 프랜시스는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은 소피의 모습에 다시 안도했는지도 모른다. '너 블로그에서는 행복해보이던데 왜'. 왜 지금의 우리는 우리의 삶 그 자체에 환호 할 수 없는걸까. 왜 있어보이는 삶에 집착할까. 전보다 더 많은것을 가졌음에도 왜 없어보이는것에 불안해할까.  



임대료를 낼 여력이 없던 프랜시스는 결국 벤지와 레프와 함께 살고 있던 아늑한 집을 떠나서 도미토리에서 지내게 된다. 깔끔하기 그지 없는 장소이다. '난 돈이 없어서 직장에서 짤려서 임대료가 턱없이 비싼 요즘 같은 불평등한 세상에서 도미토리에 묶는 불쌍한 세대' 라고 불행한 단어와 문장으로 목조르기에는 탤런트도 있고 건강한 신체를 지닌 아직도 낭만이 가능한 삶 아닌가. 이것은 내가 밀린 임대료 때문에 밥을 굶어 본 적이 없기때문에 할 수 있는 배부른 소리일까?  이전의 가난과 불행이 절대적이었다면 요즈음의 그것은 내 삶을 나보다 더 나은 타인의 삶 (이란것이 있다고 세뇌하는 사회속의)과 비교하는데에서 오는 상대적인 박탈감에 지나지 않는다. 가난의 수준도 상향 조정되었으니깐. 옛날 영화였으면 프란시스는 바퀴벌레가 기어다니고 <트레인 스포팅>에서 나오는 스코틀랜드에서 제일 더러운 화장실의 변기만도 못한 변기가 놓인 도미토리의 화장실에서 이를 닦아야했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떠나 호스텔 도미토리를 사용했을때 이렇게 잠들기 전에 맨발로 돌아다니며 공동 샤워실에서 양치질을 하고 수많은 침대가 놓인 침실로 돌아가야 할때가 있었다. 땀 냄새 풍기며 코고는 남자 아이들, 구석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여행자들, 새벽에 들이닥쳐 소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짐을 푸는 여행자들. 모든것이 지극히 낭만적이었다. 돈이 많으면 조식이 나오는 깔끔한 호텔에서 지내며 가이드가 붙어 있는 투어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겠지만 왜 굳이 '돈이 없어서'  라는 조건을 붙여서 내 소중한 삶의 낭만을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걸까. 



그럼에도 다행인것은 프랜시스는 충분히 긍정적이고 밝고 꿋꿋했다는것. 비록 기대했던 우정은 추억으로 남았지만 재능있는 발레리나 대신 안무가의 길을 택하면서 그녀의 삶은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리고 룸메이트없이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꼼꼼하게 우체통에 꽂을 이름을 적는다. 비록 글씨 크기를 조절을 못해서 이름의 절반은 접어야 했지만 그녀 자신의 인생과의 사랑을 시작한 그녀. 지금부터 시작되는 프랜시스의 인생을 다루는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그때는 그녀가 내가 동경했던 영화 주인공들의 삶을 살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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