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th> Paolo Sorrentino (2015)
끊임없이 쏟아지는 영화, 새로운 시즌이 시작된 몇몇 티비 시리즈들. 봐야 할 것도 보고 싶은 것도 너무나 많다. 영화를 보는 그 자체가 정말 아름다운 행위이지만 영화의 장면 장면에서 많은 다른 작품들과 이미지들을 떠올리고 내 개인의 경험과 감상들을 뒤섞어 추억에 젖어들때 행복함을 느낀다. 때로는 영화가 전달 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정작 놓쳐버리고 개인적인 감상에만 매달리는 경우가 많지만 내가 보는 영화들이 내 사전속의 내 개인적인 언어이고 내 사진첩속에 남겨지는 개인적인 추억일뿐이라 생각하며 결국은 타협하고 만다. 포스터속의 하비 케이틀의 표정과 레이첼 와이즈의 이름을 보고 덥석 찾아서 본 영화.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분위기의 영화이지만 영화의 전개 방식과 배경은 내 생각보다 세련되고 신선했고 출연진을 보고 짐작했던 등장 인물간의 관계도는 내 예상을 한참 벗어났다. 짐작인 즉슨, 젊은 시절 통제불능의 팜므파탈, 제인 폰다를 동시에 사랑했던 마이클 케인와 하비 케이틀이 (그리고 둘 중 누군가는 결국 제인 폰다를 차지 했을것이며 그녀는 나이가 들어 신경쇠약에 걸렸겠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반세기가 흐른 현재 휴양지에서 고혹적이고 젊은 뮤즈 레이첼 와이즈에게 동시에 매료되지만 결국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치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는 그렇고 그런 상상을 해봤단다. 실제로는, 오랜 친구인 마이클 케인과 하비 케이틀은 깨끔발을 들고 서면 당장이라도 하늘에 맞닿을것 같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깨끗한 공기로 가득한 스위스 산자락의 고급 호텔에서 지낸다. 전반적으로 부산스러운 영화의 진행방식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낮 버젼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유사했다. 그 산만함 깊숙한곳에 자리잡은 개개인의 불안함과 고독은 <멜랑콜리아>를 전체적인 틀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서 힌트를 얻은것 같다. 영화는 어떤 정신적인 면에서 <마의 산>이라는 문화 유산에 커다란 빚을 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의 배경은 알프스 산맥의 어디쯤일까? 돈 많은 부자들이 마치 고여서 썩어가는 물 같은 고산속에 모여들어 죽음을 기다리던 <마의 산>의 배경도 고립된 알프스의 요양원이 아니었던가. 늙고 힘없을때 저런 요양원에 들어가서 살 수 있을 정도면 정말 자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평생 계산의 계산을 거듭해야 하는 피곤한 인간의 모습, 그 높은 산자락에 겨우겨우 다달았을때에는 오히려 산소 부족으로 급사하는 역설적이고 극단적인 인생을 상상하며 영화를 보았다.
<Youth> Paolo Sorrentino (2015)
마이클 케인과 하비 케이틀이 연기한 은퇴한 지휘자와 현역 영화 감독의 이미지는 '감정은 과대평가 된 것' , '감정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이라는 그 둘의 상반된 견해를 통해 그들이 살아 온 인생과 남은 삶에 대한 자세가 어떻게 다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젊은 스탭들에 둘러싸여 여전히 열정적으로 일하는 하비 케이틀, 감독 인생의 오랜 뮤즈였던 제인 폰다가 경제적인 이유로 티비 촬영을 선택하고 그의 영화 출연을 거절하면서 퍼부은 비난을 이겨내지 못한 그는 좌절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평생 일에 매달려 가정에 소홀했다는 딸 (레이첼 와이즈) 의 비난을 아무런 대꾸없이 묵묵히 감내하며 마치 이미 죽은 사람과 같은 표정과 몸짓으로 호텔을 관 삼아 하루하루를 보내는 마이클 케인. 그의 역작인 심플송을 여왕을 위한 콘서트에서 연주 해달라고 요청받지만 아내를 위해서 쓰여진 곡이며 아내 만이 부를 수 있는 곡이라는 이유로 마지막까지 거부한다. 둘은 너무나 다른 사람, 남은 인생을 대하는 자세도 젊음을 놓아버리는 자세도 판이하게 다르다. 하비 케이틀이 죽음을 선택하는 장면에서는 겉으로는 정력적이고 아직 많은것을 열망하는 듯 보였던 그의 에너지는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커리어에 대한 불안한 미련이었을까 생각케 했다. 정작 일에서도 인생에서도 은퇴한듯 시종일관 맥빠진 태도를 취하며 관조적이었던 마이클 케인은 사탕 봉지를 부스럭 거리며 리듬을 타고 워낭소리와 바람소리에 마음속의 지휘봉을 놓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콘서트 제의를 받아들이고 아내 대신 다른 소프라노를 세워 지휘에 임한다. (갑자기 조수미가 무대에 등장해서 너무 놀랐다. 영화 도입 부분에서 The Retrosettes 라는 밴드의 콘서트 장면도 그렇고 이 영화는 단순히 엉뚱하다고 하기에도 뭐한 컬트적인 요소들로 가득차있다.) 하비 케이틀과 마이클 케인을 보며 <냉정과 열정사이>의 준세이와 아오이, 피렌체의 두오모와 밀라노의 두오모를 떠올렸다. 그 둘은 각각 감성과 이성을 상징하며 죽음 직전까지 그들이 관철한 삶의 자세가 결과적으로 어떤 인생의 결말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준다.
<Youth> Paolo Sorrentino (2015)
영화는 결핍된 것이라고는 결핍이라는 단어 뿐인 화려하고 결벽적인 요소들로 넘쳐나는 스위스의 고급 호텔에서 벌어진다. 노년의 두 오랜 친구가 지난 삶을 안주 삼아 현재 맞닥뜨린 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큰 구조속에서 호텔속의 다른 젊은 등장인물들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대조적으로 배치했다. 노인들에게 남겨진 짧은 인생은 고장난 산소 발생기가 방치된 작은 어항과 같다. 반면에 호텔속의 젊은 입주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을 마치 망망대해로 여기고 파닥파닥 거린다. 사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양을 알지 못한다. 모두에게 주어진 물리적인 시간은 오히려 절대적이고 동등하다. 우리는 단지 순간을 살아가는 존재이니깐. 호텔 수영장에 일렬로 누워있는 사람들, 단지 그들의 피부 주름과 머리카락 개수에 따라 그들의 일반적인 기대 수명을 감지할 수 있을뿐 결과적으로는 같은 돈 같은 시간을 지불한 사람들이다.
<Youth> Paolo Sorrentino (2015)
제인 폰다의 하이힐, 하비 케이틀의 슬리퍼 그리고 그들을 뒷배경에 놓여진 스키 장비들. 이 모든것이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생각하는것도 사실은 알고보면 젊음과 노년에 대한 우리들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것인지도 모른다.
<Youth> Paolo Sorrentino (2015)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거야' 라는 문장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정말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에게나 던질 수 있는 질문같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에게는 '앞으로 어떻게 살거야' 라고 묻는 정도겠지.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에게 곧 잘 던지는 그 질문은 알고보면 절대적으로 같은 내용이 아닐까. 모든 젊은이들이 그 젊음의 온전한 가치를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호텔 로비에 우두커니 앉아 수동적으로 고객을 기다리는 창녀가 누리는 젊음이 과연 나이든 이들이 갈구하는 젊음의 그것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을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젊음은 단어일뿐이다.
<Youth> Paolo Sorrentino (2015)
피부속의 검버섯 따위는 다 태워버릴 수 있을것만 같은 햇살이다. 젊은 우리는 얼마나 그것을 누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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