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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Southpaw] Antoine Fuqua (2015)


 


제이크 질렌할은 잠깐 안 본 사이에 또 이렇게나 다작을 해주셨다. 차례대로 챙겨 봐야함. 요새 재미있게 보고 있는 미드 <트루 디텍티브> 시즌 2의 레이첼 맥아담스. 요즘의 그녀를 보며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엘리자베스 슈 역을 연기했더라면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자주 생각한다. 예전에 주로 로맨틱 영화 속의 전형적인 예쁜 여인들을 연기하곤 했다면 최근에 와서 강하고 개성있는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들을 연기하려 부단히 애쓰고 있는듯. 영화 포스터에서도 느껴지지만 지금까지 함께 했던 그 어떤 상대배우들보다 두 배우가 잘 어울리는것 같기도하다. 복싱을 소재로 하는 많은 영화들은 로버트 드 니로의 <성난 황소>와 실베스타 스탤론의 <록키>와 같은 고전들에 어느 정도의 빚을 지고 있다. 후광이라고 해도 좋을 그 것. 스크린 속에서 반짝이는 링은 이미 관객을 상대로한 게임에서 이 영화들에게 주어지는 어드밴티지와 같다. 성난황소나 록키와 같은 고전 영화들이 있기 때문에, 심지어 30년후의 드니로와 스탤론이 <그루지 매치>와 같은 웃픈 영화를 찍어도 야유는 커녕 더 진한 향수를 자극할 뿐인 그런 강렬한 영화들 덕택에 그와 비슷한 뭔가를 기대하며 계속해서 보게 되는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중에서도 복싱만큼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소재도 없는듯. 왜냐하면 복싱만큼 적나라한 스포츠는 없으니깐. 링 위에서 선수들은 벌거숭이가 된다. 사각의 링에 갇혀 강점도 약점도 거침없이 드러내야 한다. 드니로도 스탤론도 결코 전형적인 미남 배우가 아니었단것을 생각하면 제이크 질렌할이 연기하는 복서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영화를 위해서 적지 않은 트레이닝을 거친 듯한 느낌, 제이크 질렌할 특유의 선하고도 매력적인 입꼬리 올라가는 웃음을 볼 수 없었던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무게감 있는 연기었지만 영화 자체만 놓고 보면 결과적으로 복서 제이크 질렌할의 사우스포가 20년후의 누군가에게 록키와 라모타 만큼의 향수를 느끼게 해줄지는 의문이다.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승리하길 바라는 관객의 바램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모두가 해피엔딩을 기대하고 결국 그렇게 될거라는것을 알지만 아무런 긴장감도 없는 지나치게 예측 가능한 착한 스토리 진행도 그렇고 극의 일관적인 흐름을 깨는 몇몇 에피소드들. 예를 들어 포레스트 휘태이커가 체육관의 흑인아이의 죽음에 자책하며 오열하는 장면은 시나리오가 나쁘면 포레스트 휘태이커 같은 배우도 발연기를 할 수밖에 없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엉뚱했고 양육권을 빼앗긴 빌리 호프(제이크 질렌할)가 딸을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내뱉는 '안경은 어디갔니, 새 신발은 어디서 놨니' 같은 진부한 대사들은 불보듯 뻔하게 불행한 대상들에 그러한 인위적인 상황들을 연출해서 오히려 리얼리티를 떨어뜨리고 만다. 몇몇 장면들은 <록키>를 향한 오마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주인공들이 단골로 드나드는 싸구려 술집의 분위기도 심지어 텔레비젼 배치도 거짓말처럼 비슷하다.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도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은 그닥 달라진것 같지 않다. 빌리 호프가 포레스트 휘태이커의 체육관으로 찾아와 길고 경사진 내부 계단을 오르는 장면은 록키를 체육관에서 내친 할아버지 코치가 록키의 집에 찾아오는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계단이라는 막막한 터널을 지나면 혹시나 새로운 세상이 있을까 서로가 서로를 기회이자 마지막 희망으로 여기는 그 상황들은 이들 영화에서 항상 반복된다. 한쪽에서는 피터지는 훈련이 한쪽에서는 비정한 스포츠 비지니스가 행해진다. 타이틀 방어전이라는 복싱 특유의 메커니즘이 있다.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기 위한 노력과 가진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중 고귀한것은 어떤 것일까. 비단 챔피언 벨트에 국한된 질문은 아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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