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m>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거머쥔 브리 라슨이라는 생소한 배우가 궁금해서 찾아 본 영화. 여우 주연상 후보 설명에 '5살 아들과 좁은 방에 감금되어 살아가던 여자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탈출을 시도한다'라고 요약된 줄거리에 흥미를 느끼며 보기 시작했지만 역시 이런 줄거리 요약은 소재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일 뿐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세지를 예상하는데에는 별 도움은 주지 않는것 같다. 잔혹한 범죄자에 의해서 방에 갇히게 된 모자가 상상하기 힘든 악조건속에서 생활하다 급기야 탈출에 성공하지만 탈출후에도 여전히 그들을 옭아매는 악의 무리들과 혈투를 벌이게 되고 출동한 경찰들과 앰뷸런스에 둘러싸여 링거를 꽂은채 서로 꼭 껴안고 끝이나는 영화일까. 헥헥. 범죄자는 만신창이가 되어 들것에 실려 앰뷸런스 안으로 들어가고 꼭 껴안은 모자에게 담요를 덮어주는 훈남 형사도 나오고 말이다. 그런 일반적인 범죄 스릴러에서는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상을 잘 주지 않는 법인데 도대체 브리 라슨이라는 배우는 어떤 역할을 어떻게 연기했던걸까. 아니면 이따금 별로 부각되지 않던 배우들한테 깜짝 상을 주기 좋아하는 오스카의 습관인가. 뭐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면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왠걸 영화가 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들은 탈출에 성공했다. 그리고는 또 상상했다.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해서 좋은 시설에서 보호받고 요양하지만 집에 돌아가는 순간 아직 안 붙잡힌 범인이 나타나겠지 생각하며 또 영화를 보는데 범인은 또 쉽게 잡혔다. 영화는 인간이 얼마만큼이나 악랄해 질 수 있는 보여주는 범죄스릴러도 아니었고 아들을 살리기위해 사투를 버리는 모성애만 절절하게 묘사한 영화도 아니었다.
여자는 오래전에 납치되어 강간을 당하고 방속에서 갇힌 채 아이를 낳고 기른다. 그들은 어느집 마당에 덩그러니 놓여진 컨테이너속에서 살아간다. 그들이 갇힌 장소 자체는 어처구니없이 엉성해보인다. 삼중 사중의 철창이 쳐진 지하 깊숙한 곳의 감방도 아니고 힘들게 탈출해서 나와보니 까마득한 사막 한가운데인것도 아니다. 이것은 공간의 지배를 받는 인간에 대한 냉소적인 은유이지 애초에 탈출이 얼마나 힘들었고 갇혀 산 그들이 얼마나 불쌍했는지를 꾸역꾸역 묘사할 의도는 없어보인다. 5살 아이는 태어나서 한발짝도 방바깥으로 나가본적이 없다. 여자는 오랜시간에 걸쳐 수없이 탈출을 시도했겠지만 번번히 실패했을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서 현실과 타협하는 중이다. 어떤 현상이든 그 사실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이고나면 그 상황에 익숙해지는것은 그리 어려운일이 아니니깐. 도스토예프스키도 인간에 관한 가장 완벽한 정의는 인간이 모든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불멸의 존재라고 하지 않았던가. 바깥 세상에서 자유로운 삶을 경험했던 여자는 방안의 삶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아들을 측은하게 여길 수 밖에 없지만 굳게 잠긴 컨테이너 박스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거라는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상태에서 아들에게 바깥 세상에 대해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해주는것도 쉽지 않았을것이다. 아들에게 실현 불가능한 꿈을 심어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또 다시 탈출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이미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되어버린 방안의 삶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은 이상 심리도 작용했을것이다.
영화는 갇힌 방속에서 살았던 그들의 삶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구구절절 열거하지는 않는다. 엄마와 아들이 직면해있는 현실과 그들이 공유하는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주는데 한편으로는 좁은 공간에서 그들이 영위하는 삶은 행복해 보이기 까지 했다. 햇살이 넉넉하게 내리쬐고 신선한 공기 원없이 들이 마실 수 있는 너른 공간에서 그들이 함께 누릴 수 있는 자유롭고 평범한 일상들을 상상해보면 그들이 처한 현실은 물론 안타깝지만 그들이 항상 함께 였다는것, 그들에게 서로는 희망이었다는것, 그리고 방안의 삶이 태어나서 경험한 세상의 전부인 아들이 엄마의 절대적 사랑을 원없이 누릴 수 있었다는것은 그들이 폐쇄된 공간에서 긴 시간을 건강한 정신상태로 버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을것이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한창 친구를 사귀고 뛰어 놀아야 할 나이에 방안에 갇혀 사는 아이의 일생이 정말 불쌍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정작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다른 삶이 있다는것을 알때. 우리가 입을 수 있는 더 좋은 옷,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더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것을 알때 그리고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할때 우리는 보통 불행을 느낀다. 방안에 갇힌 엄마가 아들에게 끊임없이 바깥 세상을 언급하며 갇혀 있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반복했다면 그들은 그렇게 오래 버텨내지 못했을것이다. 아무것도 모를때. 지금 누리고 있는것이 내가 가진 전부라고 생각할때. 우리는 한편으로는 평화로운 삶을 보장 받는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의 삶은 사회적 요구에 부합하지 않기에 비난받기 일쑤이다.
탈출에 성공해서 자유로운 세상 한가운데에 놓인 모자의 삶이 마냥 평탄하지만은 않을것이라 예상할 수 있는것은 바로 그런 이유이다. 자신이 살던 방이 그립다는 소년은 엄마와 함께 범죄 장소로 보존된 방을 찾는다. 세상과 단절된 공간이었지만 그에게는 하나의 온전한 세상이었던 곳. 달걀 껍데기를 이어서 만든 엄마표 장난감에 익숙해진 소년은 각지에서 그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보내준 장난감들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이미 세상 밖으로 나온 이상 새로운 세상의 규칙에 하루라도 빨리 적응해야 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갇혀 살면서 아들의 미래에 대한 고민은 없었냐는 야속한 질문에 그래도 아이는 나와 함께였다고 당당하게 대답하지만 남들과 쉽게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들에게 결국은 화를 내고 만다. 오랜 시간을 감금된채 살아 온 그들의 이야기는 곧바로 언론의 표적이 되지만 세상은 그들에게 적응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엄마는 정신적 부담을 겪지만 어린 아이는 오히려 관조적이다.
바깥 세상으로 나온 엄마와 아들은 많은 이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누린다. 굳이 없더라도 생활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물건들. 그것 없이도 큰 불행을 야기하지 않는 단순한 일상들이다. 한편으로는 그런 행위들로 인간이 행복감을 느끼고 기쁨을 느끼도록 조성된 사회적 시스템이 얼마나 조악한지 보여주기도 한다. 아직 사물이나 상태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이 확립되지 않은 어린 아이에게 바깥 세상은 방안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일뿐이지 그는 아직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기쁨따위를 인지하지 못한다. 앞으로 적응해 가야 할 삶과 자신이 격리되어 살아온 삶 사이의 괴리감이 어떤것인지 아는 엄마는 생활에 어려움을 겪지만 아이는 그를 지켜봐주는 인내심있는 조부모 곁에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내가 좋은 엄마이지 못해서 미안하다라는 말에 아이는 말한다. '근데 엄마는 엄마 잖아'.
햇살에 익숙하지 않았던 아이는 시력보호를 위해 당분간 안경을 써야했고 정상적인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여러가지 신체적 재활도 동반해야 했지만 치료가 필요한 정서적인 장애는 없었다. 태어나서부터 누군가와의 애착 형성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상태라면 그가 어떤 물리적 환경에서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자극을 받고 살았느냐의 문제는 한 인간의 행복한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은 아닐것이다. 나의 아이가 단지 나의 아이로 태어난 사실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아이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랑, 이 아이가 살아있는 동안 받을 수 있는 애정과 관심은 보장되어 있기때문이다. 아무것도 보장된것이 없는 세상에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키워진다는것은 그것이 정상적인 부모와 함께라면 그 아이는 사랑과 관심이 보장된 삶을 시작하는것이니깐. 아이에게 더 많은 물건을 사 줄 수 없어서 더 넓은 집에 살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이 정의한 더 나은 삶에 대한 개념을 타인에게 강요하는것이다. 정작 아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것은 다른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오히려 특정 상황에서 미안해하는 부모들의 행동에서 불행의 개념들을 확립해가는것이 아닐까. 작은 방속에서 건강한 정신상태로 잘 길러진 이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어떨까. 더 큰 방. 더 많은 규칙과 더 많은 타인에 의해서 정립된 개념들로 넘쳐나는 세상에서의 삶은 작은 방속의 삶보다 안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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