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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3.16 Graduation (2016)
  2. 2020.01.20 Beyond the hills (2012)
Film2020. 3. 16. 07:00

 

Beyond the hills 을 보고 난 후 운좋게 바로 찾아서 볼 수 있었던 Cristian mungiu 의 2016년도 영화. 어떻게 읽어야할지 몰라서 그냥 영어로 쓴다. 뭉규? 멍쥬?. 크라이테리언 콜렉션이 편애하는 감독들이 확실히 있는것 같다. 이 영화도 발매되어있다.

사실 이 영화는 그로부터 4년 후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오히려 마치 유명해지기 전 데뷔작처럼 훨씬 젊고 용감하고 거칠다. 무거운 주제를 초반에 휙 던져놓고 영화가 엄격하게 전개될 것이라 예상하게 하면서 막상 사건을 대하는 인물들의 미지근한 자세와 그들의 일상적이고도 개인적인 대화를 배치하는 이 감독 특유의 형식은 여전하다. 사람이 죽어서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전화를 쓰려고 돌돌말린 충전기를 느긋하게 펴는 의사와 강간사건 이야기를 하면서 잎담배를 마는 경찰, 얼떨결에 살인을 한 수녀들을 태우고 경찰서를 향하는 자동차의 앞창을 뒤덮는 구정물처럼 리얼한 디테일들이 그렇다.

구멍난 상처를 기우고 또 기운 후에 더 이상 실로도 바늘로도 치유 불가능한 너덜너덜한 천조각이 되었을때에야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오르는 어떤 사회적 현안들. 그제서야 부랴부랴 대안을 찾고 혁신에 돌입하는 낡은 시스템. 그리고 그렇게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일순간 또 잠잠해지며 좋은게 좋은거라며 훈훈하게 끝나는 일일연속극 같은 세상에 대한 답답하고 안타까운 시선도 함께이다.

어쩌면 그것은 자국의 내부 문제로도 벅찬 작은 국가들이 좀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과정에서 흔히 직면하는 고충들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선으로 세상에 보여주려는 예술가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동네의 영화를 흥미를 가지고 볼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이곳 리투아니아의 모습과 중첩되는 부분이 많아서이기도하다.

독립한지 30년이 지났고 유럽적 가치를 최우선시하지만 여전히 지울 수 없는 소련적 체취가 곳곳에 있다. 머리에 꽃무늬 수건을 두른 할머니와 마트 비닐 봉지를 손가방처럼 들고 다니는 할아버지, 세금 용지를 네등분으로 잘라 뒷면을 이면지로 활용하는 등의 절약이 몸에 밴 노년층과 대화의 절반을 리투아니아어화한 영어 단어로 채워쓰는 10대 사이에 분명히 채울수 없는 간극이 있다. 하지만 특정 과거가 정말 그렇게나 하찮고 빨리 지워버려야하는 치부이기만 한것인지 새로운 흐름에 대한 맹신이 오히려 모든것을 그르치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된다.

이른 아침 갑자기 누군가가 내 창문을 향해 돌을 던진다면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단순히 아침부터 재수없다 라며 화가 날 수도 있을거고 평소에 뭔가 양심에 찔린 행동을 했거나 잘못한 것이 있다면 누군가의 해코지일지 몰라 불안에 휩싸일거다. 이러나 저러나 그것은 일종의 각성작용을 한다. 균열이 생긴 후에야 우리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시작하고 최소한 그랬다면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소리다. 이 영화도 그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때까지 그것이 누구의 소행이었는지는 누가 이 주인공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것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사실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주인공 자신의 양심에 난 균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것인지도 모른다.

공공 병원 의사인 주인공에겐 졸업 시험을 앞둔 외동딸이있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부인과는 각방을 쓰고 그 관계는 거의 단절된 상태이며 해체직전의 이 가정에서 부부의 유일한 대화주제는 딸의 미래이다. 그는 딸을 등교시키고는 애인의 집으로 가서 밀회를 즐긴다. 영국의 명문대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은 딸에게 졸업 시험 성적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험 성적으로 취종 입학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험을 코앞에두고 딸은 대낮에 강간을 당한다. 미수로 그치긴 했지만 그것은 아빠의 계획에 큰 걸림돌이 된다.

딸에게 몹쓸짓을 한 범인을 찾기위해 경찰서를 드나들고 딸이 순조롭게 시험를 치룰수 있도록 교사와 시험 관계자들도 만나봐야하는 눈코뜰새없는 남자에게 내연녀는 보다 정확한 관계를 요구하고 부인은 집에서 나가달라고 통보하며 노모는 지병으로 쓰러지는등 정신이 없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깨진 창문 조각이 익명의 경고 메세지처럼 아른거린다.

의사인 남자에게 수술을 앞두고 돈봉투를 건네는 환자, 다 큰 아들에게 잼이며 채소절임등이 담겼을 유리병을 가방에 넣어주는 연금생활자인 노모, 중고 옷가게에서 샀음직한 후줄근한 니트를 입고 낡은 책을 정리하는 도서관 직원인 아내, 이곳은 그토록 부정하고 싶은 희망이라곤 안보이는 나라이지만 그들 전부는 그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이들이다.

공공기관에서는 여전히 뇌물이 유효하다.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지녔지만 철망을 쳐야 그나마 발뻗고 잘수있는 우범지역의 5층짜리 대단위 연립에서 살 수 있는 생활 수준. 적은 월급을 쥐어짜서 시킨 자식의 고급 과외에 희망을 걸어야하는 삶. 이 모든 모습이 낯설지 않다.

80, 90년대에 공산주의 사회에서 혈기왕성한 20대를 보냈을 남자. 굳건했던 체제의 붕괴를 목도하며 혼란을 경험하고 올바르고 살기 좋은 세상에 관한 희망으로 30대를 지나왔을 거다. 하지만 자유를 얻자마자 급변할거라 믿었던 세상은 생각만큼 큰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다. 마치 완숙인줄알고 깨뜨렸는데 줄줄 흘러나오는 덜익은 노른자처럼 사회를 지탱하는 시스템도 구성원의 멘탈도 설익었다. 더 나은 삶은 여전히 이곳이 아닌 저곳에 있어보인다. 하지만 본인의 삶에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가정은 무너진다. 내 자식만은 이 나라가 아닌 다른곳에서 꿈을 펼치길 바란다. 하지만 정작 자식이 뭘 원하는지는 모른다. 그 스스로가 원하는 삶에 대해선 이미 생각하지 않은지 오래이다. 자식은 너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는 부모의 말에 결코 감동하지 않는다. 삶은 여전히 그곳에서 지속되고 있었지만 그것을 회피하는 이들에게 보장된 것은 절망뿐이다. 이른 아침 창을 뚫고 날라오는 돌멩이는 변화를 주도해야 할 지식인들을 향한 경고이다.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진입 해야할 사람은 결국 여전히 그들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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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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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20. 1. 20. 07:44

 

제목이 비슷해서 더 그랬겠지만 빛이 바랜 사진 느낌의 포스터에서 오래전 영화 비포 더 레인을 회상하며 보기 시작했다. 멀리 펼쳐진 언덕을 뒤로하고 또 다른 언덕 어딘가로 급히 오르고 있는 짐가방을 든 두 여자의 느낌도 좋았다. 언덕 너머에 뭐가 있을까. 뭐가 있을 거라고 기대에 부풀어서 오르는 언덕은 아니길 바랬다. 저런 목가적인 풍경은 역설적으로 누군가의 불행을 도드라지게 했고 세상은 또 나 몰라라 하고 그들에게 등을 돌리곤 했다. 부디 이들에게는 너무 가혹하지 않기를. 비포 더 레인에 마케도니아의 어느 높은 절벽에 홀연히 위치한 정교회가 등장했다면 이 영화는 루마니아의 궁벽한 정교 수도원이 배경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들 나라들은 이어지고 또 이어져서 어디가 시작인지도 모를 그런 산과 평원, 가까운 하늘을 공유하며 비슷한 색채의 유사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좀 더 멀리 가서 터키나 이란 영화에도 은근히 녹아있는 그런 우울하고도 이국적인 정서가 이 포스터에서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알리나와 보이치타. 독일에서 일하는 알리나는 보이치타를 데리고 돌아갈 생각으로 고향 루마니아로 돌아오지만 정교 수도원에서 수녀의 삶을 시작한 보이치타는 그럴 생각이 없다. 의지할 곳이라곤 서로뿐이었던 어린 이들 사이에는 성적 교감이 있었고 그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불렀으며 알리나는 여전히 그 감정에 얽매여있지만 보이치타는 이제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존재는 신 뿐이라며 알리나가 꿈꾸는 둘의 삶을 부정하고 거부한다. 독일로 돌아갈 날은 다가오지만 보이치타의 마음은 변하지 않고 알리나는 불안하다. 보이치타는 오갈데 없는 알리나를 수도원에 머물게 해달라고 신부님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알리나의 모든 행동에 책임을 지겠다는 조건과 함께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곧 자리가 없는 빠듯한 수도원을 떠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이치타는 알리나 역시 자신처럼 종교에 귀의하기를 바란다. 알리나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전처럼 사랑할 수는 없겠지만 수도원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이 그 둘이 계속해서 함께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리나는 입만 벌리면 신을 들먹이는 보이치타에게서 배반감을 느끼고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거짓이라고 비난하며 과격해진다. 수녀들과 신부는 점점 더 거칠어지고 난폭해지는 알리나를 악마에 씐 것으로 간주하고 세상에 종말이 온 것 같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를 결박한다. 

무겁고 어두운 주제이지만 오히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유머러스하다. 하지만 코미디라는 장르를 빌려 만들어낸 웃음이라기 보다는 누군가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몹시 우스꽝스럽지만 그 본인들은 그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심지어 남다른 원칙으로 그 상황을 존속하고 보호하려고 진지한 얼굴로 애쓸때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을 때의 그 느낌이다. 이 수도원은 신의 부름을 받고 종교적 사명감을 가진 이들이 모여드는 곳이라기 보다는 나이가 차서 고아원을 나와서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궁여지책으로 발을 들여놓는, 마치 일용직 근로자들을 가득 태우고 일터를 향하는 허름한 봉고차처럼 치열한 곳이다. 보이치타가 수도원의 규율에 반하는 알리나의 행동에 전전긍긍하는 것은 친구가 걱정되서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수도원말고는 더 이상 그 인생을 책임져 줄 곳이 없다라는 불안감에서이다. 결국 독일에서 유람선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든 루마니아의 고립된 산자락 어디에서 수녀가 되든 그것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인 것이다. 이른 아침 수도원의 아침 식사 시간을 채우는 것은 종교적 위엄이 깃든 성스러운 대화라기보다는 여보 쌀이 떨어졌어요 식의 의식주 해결에 관한 세속적인 대화들이다. 수입과 지출을 잘 안배하고 한 푼 한 푼 아껴써야 성당벽에 그림 그릴 사람을 고용할 수 있다. 성당이 좀 더 믿음직스러운 곳으로 발돋움하려면 기적의 이콘도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정교적 요소와 그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해서인지 사실 수도원의 일상이 묘사된 부분은 아름답다 느꼈다. 눈으로 뒤덮힌 수도원의 풍경과 극단적인 추위 묘사도 좋았다. 전기가 없어서 촛불을 켜고 생활하고 매번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써야 하는 번거로움도 금욕적인 고행처럼 여겨졌다. 물론 그 모든것은 마치 중세시대를 연상케하는 고립되고 낙후된 수도원을 묘사하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첩첩산중에 한때 곳간으로 쓰였을 법한 집들을 개조해서 만든 듯한 지붕도 채 이지 않은 궁색한 수도원을 보니 이곳은 이제 막 기반을 다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하루하루의 행보가 의미심장하다. 이 장소가 성스럽고 신실하다는 소문이 나야 이 공간은 유지될 것이며 후원금이 생겨야 제대로 된 난방도 할 수 있을 거고 물이 새지 않게 지붕도 고치고 할 수 있을 거다. 그러니 구색에 맞춰 성당 벽화도 그려야하고 이콘이 놓일 장소도 잘 보살펴야 한다. 그저 신을 믿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신의 구원을 받는 것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난방도 되지 않는 꽁꽁 언 방 속에서 우물을 깃는 쇠사슬로 꽁꽁 묶인 가엾은 양을 향한 기도, 알리나를 결박하는 수녀들의 몸짓과 눈짓은 진심으로 알리나를 걱정하고 있으며 악귀를 몰아내기 위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오직 그것밖에는 없다는 듯이 절박하다. 그들은 정말 진지하다. 알리나를 향한 조금의 악의도 없다. 그들은 맹목적인 신념에 매몰되어서 그것이 빚어낼 결과를 조금도 예상하지 못할정도로 무지하다. 이것이 아니면 저것, 선 아니면 악이라고 규정짓는 것이 가장 큰 악이라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한다. 사실 영화의 결말에 있어서는 애매하다. 알리나는 구급차에 실려가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결박한 흔적, 아무것도 먹지 못한 알리나의 상태등으로 수도원 사람들은 경찰서로 끌려간다. 자신들이 한 짓을 아직 파악하지 못하며 울먹이고 절규하는 사람들 뒤로 보이치타의 표정은 오히려 평온하다. 결국 알리나를 악으로부터 구원한 것은 보이치타였을까. 돌아왔던 곳으로 다시 가라며 한밤중 알리나를 감싼 쇠사슬을 풀어준 것은 이제는 해방되고 싶은 스스로를 향한 고발이었을까 아니면 이미 그 자신을 압도한 무지한 신념의 극치였을까. 이 영화도 크라이테리온에서 발매되었네. 좋은 화질로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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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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