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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미나리 (2020)

 

미나리 2020

 

 

콩나물이 나왔으니 미나리. 콩나물 다듬는 주인집 아줌마 (ashland.tistory.com/1015), 할아버지가 좋아했던 콩나물 사러 가는 아이(https://ashland.tistory.com/1016), 그리고 딸 보러 미국에 와서 미나리 키우는 할머니. 콩나물 무침에 미나리며 쑥갓이 들어간 전골이 보글보글 끓는 밥상에 이들이 빙 둘러앉아 수다 떨며 저녁 먹는 모습을 상상해도 별로 낯설지 않다.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가 곧 드라마일진대 크게 억지 쓰지 않고 양념 치지 않고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예산 영화 특유의 방식들로 서로 모두 닮은 구석이 있다.

 

잘 먹고 잘 살기 그리고 최종적으로 잘 죽기. 그러기 위해서 인생은 많은 선택과 결정을 요구한다. 그냥 이대로 살아도 되지만 왠지 그러기엔 아쉽다. 그 결정들이 매번 주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합리적이고 타협 가능한 결정이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때도 있다. 이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혹은 그것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많은 이들이 새 삶을 찾아 무언가로부터 떠난다. 어떤 이는 고향을 떠나고 나라도 떠나고 때로는 사랑도 포기하고 사람도 포기한다. 만약 내 배우자나 자식이나 부모가 내 바람과 의지와 계획과는 정말 배치되는 결정을 내려버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정적인 순간에 정말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며 모든 것을 뿌리칠 각오를 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결정을 내린 적이 있었던가.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했고 자연스러웠던 결정들이 누군가를 당혹스럽게 슬프게 아쉽게 한 적은 없었을까.

 

어떤 가족이 허허벌판에 놓인 길고 긴 컨테이너 앞에 도착한다. 남자는 오랫동안 병아리 감별사로 일해서 돈을 모았다. 이제 그 모든 것을 걸고 자신의 농장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들떠있다. 여자는 이 시골에 오래 머물일이 없다며 짐도 풀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면서 주말이면 교회에 나가는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 어린 아들은 심장이 약하다. 병원은 멀다. 여자는 불안하다. 빚은 늘어간다. 남자를 설득해보지만 남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농장을 포기할 수 없다.

 

농장에 대한 남편과 아내의 온도차를 보며 마음이 불안불안했다. 하지만 둘 모두를 이해한다. 단지 잘 살기 위해서. 흩어지지 않고 다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 이것 때문에 혹은 이것이 아니면 불행해질 것 같은 불안에 둘은 갈등하지만 네가 아니면 아무도 없는 이 먼 땅에서 서로의 손을 놓아 버리는 것이 두려워 결국 자기 자신과 갈등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거다. 

 

병아리 공장 굴뚝에서는 마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피어오를 것 같은 연기가 올라간다. 알을 낳지도 못하고 닭이 되어도 맛이 없는 수컷 병아리를 태우는 것이다. 알에서 부화한 수컷 병아리는 바로 죽음을 맞이한다. 운좋게 살아남은 암컷은 사육될 것이고 누군가를 위해 알을 낳다가 때가 되면 또 죽음을 맞이할 거다. 울타리 없는 넓은 벌판에서 마음 놓고 뛰어놀던 닭도 결국은 누군가의 식탁에 올라가는 법이다. 닭의 입장에서 가장 잘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 인간에 의해 규정지어지는 닭의 삶을 인간의 삶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인간은 온전히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은 닭과 정말 다른 것인가. 이 지점에서 난 좀 허무했다. 남자는 그리고 남편은 그리고 아버지는 알도 낳지 못하는 쓸모없는 수컷의 삶이 아닌 의미 있고 쓸모 있는 삶을 살겠다고 말한다. 가족을 먹여 살리려 열심히 일하고 모든 것을 바치는 남자도 그런 남자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신에 의지하고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여자도 결국 같은 곳을 바라본다. 

 

한국에서 아이들의 외할머니가 온다. 화투짝과 함께 맛있는 것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생각하는 것을 드러내려 애쓰지 않는다. 관대하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누굴 가르치려는 생각도 별로 없다. 그저 애정의 눈초리를 지니고 있을 뿐이며 그래서인지 가끔 멋진 말들을 무심코 내뱉는다. 미나리 미나리 신기한 풀 원더풀 기적의 풀 원더풀. 미나리는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와서 낯선 이국땅의 외진 시골 시냇가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아이들은 그저 어른들의 결정을 따를 뿐이다. 그들의 갈등을 목도하며 그들의 걱정과 사랑 속에서 자라난다. 어디에서 사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삶이 어때 보이는지도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그곳이 어디여도 살아남을 거다. 무엇을 위해 왜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다면 말이다. 이것은 아마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후에도 제자리에서 하늘거리고 있는 미나리 덤불처럼. 어쩌면 다 잃었을 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순간 옆을 지키고 있는 작은 것들의 거대한 의미로 우리는 또 다른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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