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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The mule (2018)

 

The mule 2018

 

 

미나리를 보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자 손녀에 관한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이 영화가 떠올라서 웃겼다. 농장일을 시작하는 제이콥(스티븐 연)에게서 원예 일에 미쳐 한평생을 보낸 할아버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얼굴이 겹쳐졌다. 정작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도 제이콥의 노년도 본 적이 없지만 말이다. 그 둘의 삶은 전혀 달랐기를 바라지만.

 

아흔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손녀딸에게는 한없이 친절하고 달콤한 할아버지이지만 딸과 아내와는 사이가 안 좋다. 원예 관련 시상식에 상을 타러 가느라 딸의 결혼식에도 가지 못했고 그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항상 일을 택하고 가족을 등한시한 결과 그에게 남은 것은 그나마 살가운 손녀딸과 한 줌의 잡초 덩어리. 그렇게 무료하고 외로운 노년을 보내던 그는 트럭으로 물건을 옮겨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한두 번 날라주다 생각보다 짭짤한 수입이 생기더니 나름의 활력이 생긴다. 그런데 그가 운반하는 물건은 알고 보니 코카인. 가슴이 철렁했지만 이제 와서 과연 뭘 더 잃을 수 있겠냐는 생각이었을까. 그는 그 일을 멈추지 않는다. 문 닫을 위기에 처한 동네 친구 식당에 돈도 보태주고 얼떨결에 마약왕의 저녁 파티에도 초대받는다. 

 

그런데 그가 몸 담은(?) 마약 카르텔에 하극상이 벌어진다. 서두르는 법도 없고 긴장도 하지 않고 시간 개념도 없이 능글맞게 마약을 운반하는 그를 보며 동료들은 안절부절 못한다. 하지만 마약을 싣고 도로를 질주하는 깡마른 90살의 할아버지는 아무에게도 경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살아온 세월이 얼굴과 행동에 그대로 남아있는 그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 정도의 세월을 견뎌내면 저절로 얻어지는 연륜에 그 특유의 근성이 합쳐져서 그는 점점 능숙한 마약 운반자가 되어 간다. 하지만 그를 믿지 못하는 애송이 동료들이 그의 뒤를 밟고 마약 운반 첩보를 입수한 수사팀까지 따라붙으며 일이 꼬인다. 그를 쫓는 담당 형사 브래들리 쿠퍼와 심지어 모텔에서 아침까지 같이 먹는다. 물론 이렇게 꼬장꼬장하고 여유로운 노쇠한 할아버지가 마약을 싣고 다니고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하고 눈앞에서 놓쳐버린다. 범인을 잡느라 가정은 뒷전일 젊은 형사에게 할아버지는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을 건넨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있을 때 잘하라고. (이 부분에서는 심지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브래들리 쿠퍼한테 개인적으로 하는 조언처럼 들렸다. 두 배우가 이 영화에서 또 만났고 브래들리 쿠퍼도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으니 뭔가 더 접점이 생긴 느낌도 들고.)

 

그런데 딸의 연락을 받은 그는 임종을 앞둔 아내를 외면할 수 없어 마약으로 가득 찬 트럭을 몰고 아내의 집으로 향한다. 갑자기 행적을 감춘 그를 찾으려 모두 바빠진다. 그는 그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실수를 만회한다거나 개과천선하는 기회라기보다는 그래도 여전히 그를 찾아 준 가족에 대한 마지막 예의를 차리고 정말 사랑했지만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확인시켜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까지 아내를 외롭게 남겨두고 싶지도 않았을 거다. 어쩌면 이제와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이고 마지막이니깐. 더 늦으면 후회조차 할 수 없으니깐 말이다. 

 

항상 딴 곳에 마음이 가있던 남편과의 영원 같은 시간을 가진 아내. 그들의 삶이 쉽지 않았던 이유는 사랑하지 않는 마음 때문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서 였을거다. 인간적인 매력으로 충만하고 서로 충분히 사랑하지만 단지 뭔가에 미쳐있기 때문에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는 사람으로 인해 늘 남겨지는 사람들의 고통 말이다. 반드시 뭔가 굉장히 큰 일에 마음이 쏠려 가정을 내팽개쳐야만 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저렇게 하고 마는 상대를 감내하지 못하고 나를 향한 기대를 나도 늘 배반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때 문제가 생긴다. 만약 내가 누군가로 인해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뭔가를 미치도록 해야겠단 사람을 막을 방도는 없을 것 같다.

 

언젠가 코미디언 이경규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제대로 된 기억인지 모르지만 그 인터뷰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감독이 되고 싶다는 부분이었다. 여전히 현역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 노감독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이자 남들이 인정하는 좋은 영화 감독으로 남고 싶은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자기분야에서 최고인 그의 삶도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을까. 영화가 뭔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회한이 담긴 자전적인 스토리인 것 같아서 더 재밌게 봤던 기억. 이 배우를 보면 정말 뱀파이어인가 싶다. 필모를 보면 끝도 없이 내려가서 50년대 까지 간다. 학생때 퍼펙트 월드 보고 엄청 울었는데 그때도 이미 60대였구나. 밀리언 달러 베이비 만들었을 때도 엄청 할아버지였는데 아직 영화를 만들고 있다니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다음 영화가 나오면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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