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의 조각들, 동상들을 좋아한다. 빌니우스 구시가에 특히나 조형물들이 많아서 으례 익숙해진 것인지 어딜 가도 늘 몇 개는 지나치게 되는 그런 것들이 사람들에게 추억의 좌표처럼 남는 것이 좀 감동적이라고 해야 할까. 간혹 이념 문제로 없어지고 옮겨지고 하는 것들도 종종 있지만 그 주위를 지나치고 약속을 잡고 걸터앉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책을 읽던 누군가의 기억은 강제로 끌어내 박멸하기 힘든 것들이다.
바르샤바에서 지냈던 숙소 근처에 코페르니쿠스 동상이 있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쇼팽과 함께 바르샤바의 슈퍼스타였다. 바르샤바에서 아침에 집을 나설때도 온종일 신나게 걷다가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갈 때에도 며칠간 매일 마주쳤던 코페르니쿠스. 건물에 비친 뒷모습에서 오히려 더 생동감이 느껴진다. 근데 처음엔 코페르니쿠스가 맞나 했다. 왜냐하면 동상을 지나치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검색을 해보기 전까진 코페르니쿠스가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왠지 코페르니쿠스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총애한 제자였을 것만 같이 젊고 (실상은 갈릴레오보다 1세기 연상) 브뤼겔의 풍속화에서 술 마시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인 것처럼 구수해 보이는데 그는 폴란드에서 태어나서 폴란드에서 뼈를 묻은 학자였다. 비록 초상화 속의 풋풋한 얼굴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고전적이고 학구적이고 신화적 이미지여서 멈칫했지만 아마 동상 옆 바닥에 앉아서 키득키득거리던 금요일 밤의 술 취한 연인들의 모습 때문일까. 두시에 분수대 옆에서 만나자며 절규하던 펄프의 노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코페르니쿠스를 검색했을 때 나오던 그의 모습이 집 앞의 24시간 바르샤바 주류 백화점 근처의 무알콜 맥주 광고 속에도 있었다. 이 광고를 본 이후부터는 어딜 가도 그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마치 바르샤바 여행은 코페르니쿠스 얼굴을 알고 난 후와 전으로 나뉘는 것처럼. 폴란드도 내가 좋아하는 여느 나라들처럼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돈을 안 쓰게 할까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나라이다. 어디에나 코페르니쿠스와 쇼팽의 얼굴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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