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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12월의 극장


만약 이곳이 뉴욕 브로드웨이의 어느 극장이거나 파리의 바스티유 극장이거나 하면 이 장면은 뉴요커나 파리지앵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그런대로 설득력 있는 풍경일까. 왠지 그건 아닌 것 같다. 내가 그곳이 아닌 이곳에 살고 있어서 이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들 앞에 굳이 지정학적 수사를 붙인 후 마치 내가 아는 사람인 것처럼 감정이입 하는 것이 의외로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에 놀라곤 한다. 나에게 이런 장면은 명백히 올가 혹은 옐레나, 아그네, 그레타 같은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바르샤바의 쇼팽 연주회에서 마주르카를 연주하던 피아니스트도 그렇다. 이들 모두를 가둬 버리는 아주 깊고 넓고 차가운 호수가 있다. 파리에서의 1년에 대한 향수를 호소하며 꿈에 젖던 하얼빈의 러시아어 시간 강사 갈리나도 두툼한 목욕 가운을 입고 유럽 도시의 못난이 마그넷이 가득 붙여진 냉장고를 열던 모스크바의 숙소 주인 갈리나 아줌마도 차례대로 눈앞에 겹쳐진다.

이들은 손토시든 머플러든 조끼든 직접 뜨개질한 뭔가를 하나 정도는 몸에 지니고 있고 물 반 갈린 원두 반의 타르 커피에 대해 자신의 어머니만큼 열광하진 않지만 자신의 딸보다는 충분히 관대하다. 비소츠키에도 빅토르 초이에도 공감할 수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이 모든 유산들에 개의치 않는 다는 듯이 또박또박 정성 들인 영어를 구사할 수 있고 비슷한 커리어의 서유럽 여성들과 비교해서 좀 더 단출한 생활을 해야 할진 모르지만 커틀러리의 위치나 성경 속 어느 한 장면에 대해 열띠게 논쟁할 수 있다. 숄 하나를 두르고 우르르 몰려나가 새끼손가락을 세우고 흡연하는 것에 위로받을 만큼 시시콜콜하지만 대개 어떤 남자의 러시아어 농담으로 완결되는 길고 장황한 대화 속에서도 웬만해선 평정심을 잃지 않을 만큼 충분히 이성적이고 지적이다.



극장 문을 열고 들어섰을때 매표소 근처에 앉아서 입장을 기다리던 여성이 극장의 아주 공허한 홀 한가운데에 당당하게 혼자 앉아서 마티니 잔에 담긴 디저트를 먹는 순간에도 러시아 소설 그리고 영화 속의 많은 여성들의 이미지가 머릿속으로 지나친다. 그들은 결코 평균 이상의 즐거움을 내비치지 않았다. 다른 듯 비슷한 이유로 고통받지만 슬픔에 잡아먹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연료로 아주 느린 한 발자국을 디디며 앞으로 나아갔고 부둥켜안고 오열하지 않지만 속속들이 채워진 부조리 위에서 조용히 연대하며 악에 순응했던 사람들.


주중 화요일의 연극은 주말 저녁의 연극과는 그 분위기도 관객 구성에 있어서도 확연히 다르다. 대부분은 일을 끝내고 바로 극장으로 오는 여성들이다. 두세명씩 떼를 지어 와서 연극 시작 전과 중간의 쉬는 시간을 총동원하여 수다꽃을 피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혼자 오는 사람들도 많다. 일은 끝났고 이미 옷도 맡겼으니 몸은 가벼워졌고 그저 공연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절대적으로 무위한 시간, 술잔을 들고 혼자 서있지만 누군가가 와서 말 걸어주길 기다리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스스로에게 온전하게 할애하는 3시간의 축제에 앞서 결코 누구도 구석으로 비켜나거나 위축되지 않는다.


그래서 12월에 바냐 삼촌을 보고왔다. 감찰관이면 더 재밌었을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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