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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Poland 15_바르샤바 지브롤터 오브 마인드

 

 
바르샤바 가기 전에 카페 검색 했을 때 이름 때문에 기억에 남았던 유일한 카페였는데 공교롭게도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 카페여서 두 번을 갔다. Stor라는 이 카페는 아마 스톨리치나야 보드카 때문에 혹은 저장의 어감 때문에 혹은 뚱뚱하다는 리투아니아 형용사 Storas의 느낌이 혼존하여 뭔가 동글동글 귀엽게 취한 듯한 인상이 있었다. 실제 카페는 여러모로 익숙했다. 빌니우스였어도 베를린이었어도 서울이었어도 자연스러웠을거다. 방문객들은 저마다의 바지통 넓이로 경쟁하고 쉬프트 알트 한 방으로 언어 변환을 하듯 이 언어에서 저 언어로 정신없이 옮겨 다녔다. 주말이여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이 카페에는 보통의 마키아또나 코르타도가 적혀 있어야 할 자리에 지브롤터라는 메뉴가 뾰족한 바위산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잔의 크기로 보면 에스프레소 더블샷과 두세 스푼의 스팀밀크 정도의 분량이다. 스팀밀크를 넣는 에스프레소는 역시 락글라스가 좋다. 이런 100밀리 언저리의 커피를 적당한 잔이 없다고 일반 카푸치노 잔 같은 데 넣어주면 재앙이다. 그 얼마 되지도 않는 커피가 깊은 잔을 타고 내려오다가 창백하게 다 식는 느낌이다. 떠나는 날 아침의 허함을 채우려 했었는지 우유 들어간 커피 두 잔을 시키는 알고도 눈감는 오류를 범했다. 
 
바르샤바와 지브롤터 조합은 이질적이다. 창밖을 지나는 차들과 커다란 배달 가방을 짊어지고 열심히 페달을 밟아 오르는 라이더들에서 바르샤바는 숨 가쁜 도시이고 싶지만, 화면에 잡히지 않은 리스본 이발소와 음반 가게, 니콘 카메라 수리소가 뒤섞인 바르샤바는 톨게이트의 이쪽이 아닌 저쪽에 있을 뿐인 정체된 도시의 인상을 주었다. 그럼에도 왜인지 이 장면에서는 뉴욕을 위한 가장 도전적이자 헌정적인 트랙인 제이지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가 들렸다. 콘크리트 정글까지는 아니지만 욕망이 집결하는 도시의 속사정이 대체로 유사하다면 바르샤바도 누군가에게는 무한한 영감을 주고 누군가의 꿈으로 가득한 누군가를 위한 모든 새로움의 원천인 도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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