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getarian Cannibal>
일부러 찾아서 본 영화라던가 잘 알려진 영화들이 아니고선 영화를 보고 나면 무슨 내용이었는지 줄곧 까먹는다.
가끔가다 예전에 적어 놓은 영화에 대한 글들을 읽고 있자면 내가 정말 이렇게 느꼈나 싶어 웃길때가 있고
남이 써놓은 글을 읽을때처럼 낯설때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영화의 줄거리와 장면들이 희미해지는것처럼 나의 감정과 느낌도 흐릿해진다.
만약에 같은 영화를 다시 본다면 줄거리는 선명해지겠지만 나는 절대 처음과 똑같은 느낌을 받지 못할것이다.
오늘 사물을 보는 관점과 내일의 세상을 대하는 자세는 어제의 그것에서 대략 일 밀리미터 정도 떨어진 먼 곳에 있으니 말이다.
나의 바뀐 시선과 관점으로 똑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면서 새로운 느낌을 기대하는것에 내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쓰기에는
새로운 영화를 보고자하는 욕망은 너무 강렬하다.
다행스럽게도 영화속에서 표현 하고자 하는것들은 다른 듯 비슷한 인류 공통의 주제이고
나는 나이가 들어가고 있으니 좀 더 진실하고 견고한 이해가 가능한 상태로 내 마음이 쑥쑥 자라주길 바랄뿐이다.
주말 동안 네 다섯편의 영화라도 연달아 보고나면 내가 정말 대다수의 영화를 일회용품처럼 소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중고등학교때는 영화를 보고 나면 바로 제목과 감독 이름과 출연 배우들을 수첩속에 한줄에 걸쳐 기록하고는 했고
그만큼 영화를 보려면 비디오 대여점에 한편에 오백원 내지 천원을 지불해야했는데
영화를 보는것이 훨씬 수월해진 지금 본 만큼 잊혀지는 영화도 많다는것은 역설적이다.
그나마 보자마자 대충이라도 이곳에 흔적을 남겨놓겠다는 계획은 게으름에 무너지고
삭제되지 못한 채 제 차례를 기다리는 영화들만 폴더 속에 켜켜이 쌓여간다.
배경 도시 이름을 자막에 넣어 주거나 멀리서 에펠탑을 비춘다던가 그 나라 말이 적힌 간판을 보여주는 친절한 영화들도 있지만
영화가 중반을 넘어설때까지 이 영화가 어느나라 영화일까 궁금해하며 보게되는 영화들이 종종있다.
처음 <Vegetarian Cannibal> 이라는 제목을 보고 이런 저런 생각.
젊은 감독이 만든 실험적인 독립영화인가? 나름 돈 들인 제 3세계 영화인가? 왠지 <성스러운 피> 같은 컬트 영화일것 같다.
극도로 정제된 차가운 하얀 빛깔의 병원에서 카메라는 과도한 움직임으로 꼼수로 가득찬 얼굴의 주인공을 따라다닌다.
화가 난 듯 퉁명스럽고 날카롭게 오고가는 대화 속 언어는 러시아어에 가깝게 들렸지만 완전한 러시아어는 아니었다.
에스토니아 같은 발트 국가의 언어도 아니다.
우크라이나 혹은 벨라루시, 옛 유고 연방에서 분리된 어느 한 나라일거라 짐작하며 모든 배경과 단어들에 집중하고 있을때
유럽 연합 국기 옆에 나란히 걸려있는 크로아티아의 국기가 보였다.
크로아티아 국기를 그리라면 그려낼 수 없겠지만 국기 정중앙의 체크 무늬 크로아티아 문장은 낯이 익었다.
언젠가 크로아티아가 월드컵 3위를 했을때 가브리엘 번을 닮았던 수케르가 입고 날뛰던 빨강과 하얀 체크무늬 유니폼과
<꽃보다 누나> 에서 자그레브 첫 날 작은 교회를 방문하는 장면에서 그 문장을 보았다.
이 영화는 내가 한번도 본 적 없는 크로아티아 영화였고 Rene Bitorajak 이라는 주인공은 검색을 해보니
아주 오래전에 인상 깊게 본 영화 <노 맨스 랜드>에 나온 배우였다.
보스니아 내전 속 암울한 대치 상황에서 한밤 중 보초를 서며 두명의 군인의 나눴던 냉소적인 대화.
" 낙천주의자와 비관주의자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비관주의자고
지금보다 나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낙관주의자이지"
뭐 이 비슷한.
그는 그 두명의 군인 중 한명을 연기했었을까?
많은 전쟁 영화들이 있지만 유고 내전을 다뤘던 영화는 분위기 자체가 많이 다르다.
<비포 더 레인>이나 데니스 퀘이드가 나왔던 <savior> 같은 영화는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보고 싶다.
<꽃보다 누나>를 보니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크로아티아 정부에서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발트해 연안국들의 올드 타운이 세계 문화 유산이라는 온실 속의 화초 같다는 생각이 간혹 들때가 있는데
그도 그럴것이 올드 타운과 올드 타운 근처의 강변을 낀 신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여전히 구소련 시대의 흔적을 떨쳐버리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낙후된 풍경들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관광업에 종사하는 주민의 비율이 크진 않지만 우선 올드타운 만이라도 잘 보존해서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인데 위치상 정서상 서유럽에 훨씬 가까운 크로아티아는 말할 것도 없어보였다.
다만 이 영화속에서도 그렇고 프로그램 속에서도 그렇고 일종의 문화 정체라고 해야하나 몇몇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출연진들이 시장에서 채소와 과일을 둘러보는데 신기함에 약간 만지작 거리니깐 가게 주인이 버럭 화를 내는 장면.
굳이 비닐이 필요없는 볼펜까지 비닐에 담아주며 거스름 돈을 거의 던지다시피 하던 중국의 마트 직원이나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되물었더니 화를 내며 문을 닫아버리던 러시아 매표원 까지는 아니었지만
손님에게 조금이라도 더 친절을 베풀며 최대한 많은 이익을 창출하려는 노력을
서비스 정신이라고 생각 할 만한 상식과 여유가 아직은 없는 주민들이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동유럽의 나라들.
영화속에서 근심에 가득찬 임산부가 병원을 찾아 오지만 진료시간이 지났으니 내일 오라며 매몰차게 대하고
부검을 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불법 낙태를 일삼고 근무 시간에 투견장을 향하고 나이트 클럽에서 마약을 복용하는 의사.
유럽 연합 국기 옆에서 자랑스럽게 펄럭이는 크로아티아 국기를 보여주지만
전반적인 국가 내부의 매커니즘과 행동거지는 공산주의 시대의 사고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급격하게 변하는 사회에서 사회 지도층이 얼마나 도덕적으로 타락할 수 있는지에 냉소한다.
채식주의자인 바빅을 친구들은 비웃지만 그는 불법 낙태에 대한 죄책감으로 채식주의자인 척 하는지도 모른다.
내전 종식 이후의 서유럽 사회에 편입하고자 하는 크로아티아의 과도기는 투견장과 다를바 없음을 얘기하려 했던것일까?
그곳에서 바빅은 철저하게 생존 본능에 충실한 투견장에 몰린 투견일뿐인지도.
낙태 행위 자체에 대한 비판 보다는 서로를 물고 뜯으며 생존하는 인간의 모습이 더 강렬하게 그려졌다.
하지만 치부를 가리고 미화하는데 누가 얼마나 더 능숙하냐의 차이일 뿐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쩔 수 없이 어디나 다 똑같을 거라는 생각에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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