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지 않은 여행을 떠났었고 좋은 사람을 만났고 그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시작됐던 새로운 생활.
하얼빈에서의 일년 반. 2006년. 그 해 대학 신입생 환영회의 플래카드속에 적혀있던 '화양연화'라는 성어처럼
2006년은 내 인생에서 정말 행복했고 아름다웠던 시기중 하나로 남았다.
모든것이 새로웠고 낯설었지만 그 생경함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감으로 충만했던 때.
모두가 잠든 새벽에 기숙사 일층에서 길어 온 펄펄 끓는 온수에 철관음과 커피를 타 마시며 새던 밤.
피곤도 잊은채 새벽의 강추위를 뚫고 국수와 만두를 먹으러 시장을 향하던 아침.
그 어떤때보다 그리움에 절절했지만 결과적으로 하얼빈 생활은 그 그리움으로 인해 더욱 활기찼었다.
오랜만에 따끈따끈한 중국영화를 보고 내가 잊은 줄 조차 모르는 하얼빈에 관한 기억이 있을까 싶어 곰곰히 생각해본다.
목도리를 칭칭 감고 있는 하얀 얼굴의 계륜미가 기차에 앉아 멍한 눈으로 내뿜는 차디 찬 입김.
촬영지가 정확히 어느 도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눈이 많이 오고 꽁꽁 얼어있는 느낌이라면
모르긴해도 동북지방의 어딘가, 어쩌면 흑룡강성 어디쯤 일수도.
영화 속 풍경은 하얼빈에서 내가 보냈던 두번의 겨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동일해서 불편했다.
왜냐하면 그 풍경속에 내가 조금이라도 더 담으려 애썼던 희열과 두근거림들을 영화속에서는 찾을 수 없었기때문이다.
몹시도 당연한 이치. 풍경과 장소가 같더라도 우리들 각자가 채워가는 감성과 기억은 너무도 다르다는것.
영화속의 그들은 포기하고 싶지만 쉽게 놔버릴 수 없는, 형체는 유지하고 있지만 이미 숨이 멎어버린듯한 하루하루를 산다.
마치 얇은 빙판속에 얼어붙은 성냥이나 껌종이처럼 봄까지 참고 기다리면 만져질듯한 실체이지만
이미 오래전 어느 순간에 멈춰서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인생. 혹은 되찾더라도 이미 쓸모없어진 인생.
상실에 꽁꽁 묶여있어 되찾을 수 있는 존재들에 감각을 잃어가는 인생.
누군가는 언제쯤 이 인생에서 이겨보냐고 묻는다. 또 다른 누군가는 아직도 그 인생을 이기려드냐고 말한다.
벌건 대낮에 쏘아올리는 폭죽처럼 항상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 인생.
결국 다 같은 모습으로 타 들어갈 검은 석탄 같은것.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절대 이길 수 없는 놈.
절망으로 살아가는 누군가, 내가 행복했던 어떤 장소와 시간에서 누군가를 에워싸고 있을 그 그림자가 몹시 무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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