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식을 드디어 만들어 먹었다 오래전부터 만들어 먹겠다고 벼르던 약식이지만 역시 단순히 먹고 싶다고 해서 만들어 먹을만큼 부지런하지 않은가보다. 결국 아이의 백일이라는 동기부여로 몇조각 만들어 먹는데에 성공했지만 결국은 나를 위한 음식. 뭔가 허전해서 설탕 파우더로 날짜를 뿌렸는데 약식이 아직 식지 않은 관계로 뿌리자마자 녹기 시작해서 당황했다.
약 이년전에 식당 식재료 구입때 덤으로 끼워서 한봉지 구입해놓은 타일랜드 스위트 라이스. 역시 유통기한 만기에 임박해서 드디어 개봉했다. 혹시 망칠지 몰라서 1/5정도만 사용했다. 약식은 나에게 떡중의 떡, 완전 소중한 떡이다. 한번 만들어 먹어 보니 외국인 친구들에게도 소개하기 좋은 매우 고급스러운 한국식 디저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많은 종류의 떡이 있지만 약식이나 콩찰떡처럼 쫀득하고 달짝찌근한 떡들이 맛있다. 인절미나 백설기 시루떡 같은 떡들은 정말 떡 자체를 진심 사랑해야 먹을 수 있는 어른들의 떡같고 꿀떡이나 바람떡이나 무지개떡 같은것들은 뭔가 떡이 되다 만듯한 유치한 느낌이 있다. 그래도 약식은 떡을 항상 즐기지 않는 나같은 사람들도 가끔 떠올릴 수 있는 엣지있는 떡이 아닌가? 물론 전부 내 개인적인 생각들.
약식을 만들어 먹겠다고 하니 엄마는 찹쌀을 쪄야할텐데 찜기 같은것이 있느냐고 했다. 찜기라니 당연히 그런것은 없다. 만두를 찌는 구멍이 뚫린 삼발이 같은것이 있지만 그 위에 쌀을 올려 약식을 만들어야한다니 너무 고생스러워 다 집어치워야겠다 느껴지던 찰나에 간단하게 밥솥을 이용해서 약식을 만드는 방법이 역시나 너무나 자세하게 인터넷에 올라와있었다. 항상 느끼지만 세상엔 부지런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참 많다. 우리집 밥솥은 현재 한국에서 널리 사용하는 밥 다됐다고 말해주는 멀티 기능 밥솥과는 거리가 멀다. 작년에 새로 구입한 취사 버튼 하나뿐인 매우 우직한 밥통이다. 중요한것은 이런 옛날 밥솥으로도 약식을 만드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것.
한국의 약식에 일반적으로 대추와 밤을 넣지만 리투아니아에서는 구하기 힘든 관계로 약간의 재료의 변주가 필요했다. 이 대추 야자는 그 어떤 식재료로도 대체 불가능한 막강한 놈이다. 한국의 대추가 백포대 있더라도 난 이 대추 야자를 넣겠어 라고 뻐길 수 있을 정도의 매력이다. 중동에서 건너온 이 놈, 얼핏 지나가다 잘못보면 심히 징그럽게 생겼지만 이 대추 야자의 당도와 식감은 이 빠진 늙은 임금 영조에게 특별 배송됐을지도 모를 정도로 잘 익은 특등급 곶감과 비슷한데 그것보다 훨씬 무르다. 입에 넣고 몇번 우물우물 거리면 씨가 저절로 발려진다. 칼로 썰다보면 칼에 거의 묻어나는 정도라서 밥솥에 넣으면 비명횡사 할것이 분명해 잘게 썰어서 완성된 밥에 섞었다. 검색을 해보니 중동의 부호 만수르가 즐겨먹는 스태미너 디저트라고 나와 있던데 그냥 만수르가 만성 변비를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것이 훨씬 인간적이고 현실적이다. 건자두와 함께 변비에 직빵이라고 여겨지는 대표적인 군것질이기때문.
리투아니아 마트 한 곳에서 몇차례 밤을 팔기도 했지만 가격도 엄청 비싸고 마치 썩은듯 내부가 텅텅 비어있는적이 많았다. 실한 밤을 만져본 적 없는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샀겠지만. 밤 대신에 견과류중에서 가장 부드럽고 고소한 캐슈넛을 넣었다. 캐슈넛이 단물과 함께 밥솥에서 졸여지는것이 어떨까 상상이 안되 겁이나 역시 조금만 넣었다. 건포도는 검은 건포도 보다 부드러운 골든 건포도를 넣었다. 여행 다닐때 이 건포도를 사서 제일 싼 플레인 요구르트에 넣어 먹곤 했었다. 그리고 호두와 잣을 넣는다. 물 두컵에 흑설탕 반컵과 계피가루 반술, 간장 두 스푼을 넣고 끓여서 식힌 후 준비된 부재료들과 섞어 불린 쌀이 담긴 밥솥에 부었다. 식힌 단물을 잔뜩 머금은 밥솥은 평소대로 15분후 보온에 불이 켜졌다. 삼십분 정도후에 밥솥을 여는데 약간 긴장이 되었다. 모양을 잡히지 않을 정도로 진 밥이 되어있으면 어쩌지. 섞여지지 않을 정도로 된밥이 되어 있으면 어쩌지. 걱정은 기우였고 그날 나는 약식을 먹으며 몹시 행복했다. 다른 부재료도 다음번에는 아낌없이 넣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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