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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huania

[리투아니아생활] 외국인 시어머니 댁 속의 한국 풍경



시어머니는 빌니우스에서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리는 파네베지라는 도시에 살고 계신다. 인구수로 따지면 리투아니아에서 다섯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한국이라는 좁고도 큰 나라,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자란 나에게는 빌니우스도 한 나라의 수도라기 보다는 지방의 소도시처럼 느껴지고 지방의 소도시 파네베지는 한적한 시골처럼 느껴지는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리투아니아의 진짜 시골에 가면 파네베지도 빌니우스도 얼마나 도시스러운지 모른다. 아기를 낳기 두달 전을 마지막으로 장장 7개월간 방문하지 않았던 시어머니댁에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처음으로 아기와 버스를 타고 방문했다. 내가 빌니우스를 여행할때 맸던 배낭속에 아기 기저귀를 넣고 셋이 되어 파네베지를 향하는 마음은 뭔가 감격스러웠다. 여행을 중단하고 리투아니아에 머물던 세달여의 기간중에 3주 남짓한 시간을 머물었던 그 곳, 비록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함께 음식도 만들고 집수리도 하며 시어머니의 손 때 묻은 부엌 찬장 속에서 거실의 서랍속에서 책장속에서 리투아니아어 수업에서 배운 단어들을 눈으로 보고 귀로 익히는 즐거움을 느꼈던 그 때, 집수리를 거쳐 모습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지금도 파네베지에 가면 여전히 그 해 여름 경험했던 풋풋함과 신선함이 떠오른다. 그런데 집의 구조나 가구의 배치 말고도 10년전과 달라진 풍경이 있다면 바로 집 곳곳에 놓여 있는 한국에서 온 물건들이다. 대부분은 결혼식 참석차 한국에 오셨을때 직접 구입하신 것들. 그 중에는 실제 한국인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해서 만든 물건들도 있는데 파네베지에 머무르는 동안 그 물건들을 찾아 보았다.



탈 수집이 취미이신 시어머니. 좋아하는 물건이 뚜렷한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선물하기가 수월해서 우리도 여행을 하며 선물을 사야할때 그 나라의 전통 탈이 있는지 항상 눈 여겨보게 된다. 인사동을 걷다가 탈을 발견하시고는 눈이 반짝반짝 해지셨던 시어머니. 당시에는 두 탈 중에서 고민하시다가 결국 나무로 된 양반탈만 구입하셨는데 먼저 리투아니아로 가신 시어머니께서 아직 한국에 머무르고 있던 지금의 남편에게 전화를 하셨다. '나 그 빨간 탈 꼭 사야지 안되겠다...돈줄께. 사오렴.' 그래서 빨간 탈 사러 총총총. 안동 하회탈은 한국인인 내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친근한 나머지 장식품이나 소품처럼 느껴지는데 검은 천이 박혀 있던 양주 별산대 놀이의 완보탈은 지금 봐도 뭔가 사실적이고 개성이 있다. 뭐랄까 신나게 춤추고 나서 탈을 벗는 놀이꾼의 얼굴에서 송글송글 맺힌 땀이 떨어질것 같은 느낌이다. 화려하다고 할 수 없는 묵직하고 장난스러운 생김새가 벽속의 많은 탈 들 사이에서도 단연 카리스마가 넘친다.


안동 하회탈 위의 탈은 우리나라의 탈처럼 보이지는 않고 어느 나라 탈인지 검색에 실패했다. 4년전에 남편과 한국에 갔을때 동묘의 골동품 시장에서 구입해서 선물했다. 몹시 무거웠다. 이 탈은 화려함과 위압감에 있어서라면 벽속의 탈들 사이에서 단연 일등인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래의 양반탈이 그로 인해 더 돋보이는 느낌이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현지인의 집에서 머무는것에 대해 상상해봤을것이다. 내 경우는 모스크바를 여행했을때 일주일간 머물었던 '갈리나의 집'이 최초의 현지인 집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카우치 서핑이었거나 내가 갈리나 아줌마와 친구가 되어서 묵었던 것이 아니라 이 다분히 개인적이고도 비밀스러운 갈리나 하우스는 신기하게도 론니 플래닛의 모스크바 숙박편에 가장 첫 줄에 적혀 있었다. (http://www.galinasflat.hostel.com/) 집을 못찾아서 두번을 헛걸음을 하고 세번째 전화를 해서 꽁꽁 언 발로 찾아간 갈리나 하우스는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닌 영어에 능숙하고 고양이와 예술을 사랑하는 색다른 느낌의 러시아 중년 여성이었는데 시어머니의 냉장고를 볼때마다 그 갈리나 아줌마의 냉장고도 덩달아 생각난다. 시어머니께서 모든 자석의 나라들을 전부 방문하신것은 아니다. 여행을 다닌 지인들이 기념품으로 사오기도하고 우리도 여행을 가면 선물로 마그넷을 꼭 사다드린다. 그리고 냉장고 한 쪽 구석에 우리가 선물한 한국의 자석들이 보인다.




위로부터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구입한 안동 하회탈 자석과 양양의 오산리 선사 유적 박물관에서 구입한 빗살무늬토기 마그넷 그리고 인사동에서 구입한 왕과 왕비 마그넷이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마그넷이라고 혼자 그냥 생각한다. 왜냐하면 소헌왕후의 본관이 내 본관이고 소헌왕후의 엄마의 본관이 공교롭게도 우리 엄마의 본관이므로. 근데 내 남편의 성은 이씨가 아니고 느낌상 폴란드쪽인것 같다. 하핫. 그리고 아래로 하회탈들이 줄줄줄 어디로 놀러가는 중.



좋은 마그넷은 확실히 자석의 접착력이 남다르다. 국립 중앙 박물관의 하회탈은 재질이 마음에 들어 하나에 무려 5천원이나 주고 구입했었던듯. 여행지에서의 마그넷 구입의 선택폭은 생각보다 넓다. 고민을 줄이려 가능하면 나무나 플라스틱 재질말고 메탈 재질을 사려고 하는데 그러다보면 선택의 폭이 몹시 좁아진다.



거실 창가에 놓여 있는 이 많은 물건들 사이에서 한국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사과 유리 장식 아래에 놓여있는 컵받침이다.



인사동에서 구입하신 십장생이 표현된 컵받침이다. 예쁘다. 외국인이 관심을 가지고 예쁘고 신기하다고 생각하는것들을 보면 내가 도리어 신기해지는 경우가 많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스쳐 보내던 풍경들과 물건들이 누군가에게는 참 색다를 수 있고 반대로 나에게 아름답고 이국적이라고 느껴지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촌스럽고 다분히 일상적일 수 있다는것을 알게되는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다. 빌니우스에도 서울의 인사동과 같은 거리가 있는데 그래서 지날때마다 관광객의 마음으로 매번 유심히 보게 된다.



한국을 떠나기 전 날, 이마트 구경에 나서신 시어머니. 애연가이신 시어머니께 목에 좋을거라며 추천해드렸던 기억이 난다. 부엌 찬장에서 꺼내서 열어보니 목캔디 대신 들어있던 것은



작년에 베플라이라는 작은 시골에 갔을때 잡초 사이에서 함께 뜯은 타임 (thyme), 검색해보니 백리향이라고도 불린단다. 서양에서는 널리 쓰이는 허브이고 리투아니아에서도 채소를 식초나 소금물에 저장할때 넣고 차로 끓여 먹기도 한다. 녹색 목캔디속에 담겨있는 것은 민트이다. 설탕을 듬뿍넣고 식혀서 차갑게 해서 먹으면 정말 맛있는 민트차이다.



부엌으로 가는 통로 사이에 놓여 있는 그릇장 위의 사각 나무 쟁반들. 밥을 먹고 우리 엄마가 항상 과일을 챙겨오시는 광경을 보고 몹시 신기해 하셨던 시어머니. 이것도 양주 별산대 놀이 탈과 마찬가지로 미련을 못 버리시고 꼭 사다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래서 남대문 시장에 갔는데 요즘 잘 만들지 않는 물건이라며 구하기가 의외로 어려웠다. 서울 우리집에선 보통 부엌 찬장속에 들어있어서 필요할때 엄마가 꺼내시곤 했는데 시어머니는 그릇장 위에 가지런히 늘어 놓으신다.



때로는 물건을 늘어 놓는것은 장식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정물화의 개념 같다. 과일 그리기를 즐겼던 세잔을 떠올려보면 그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급하게 사과며 주전자를 테이블 위에 부랴부랴 얹었을거라고 생각하면 왠지 모양이 안난다. 그는 그냥 오며 가며 무심코 베어 먹던 사과가 아름답게 느껴져서 사과를 그리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주변에 놓여 있는 모든 자질구레한 물건들은 그 본연의 기능과는 상관없는 풍경속의 오브제로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릇장 위의 사각 소반에 시어머니는 첫번째에는 항상 과일을 두번째에는 호두통을 놓으신다. 저 호두들은 아주 천천히 사라지며 일년도 이년도 넘게 저 자리에 오롯이 놓여있다. 마치 밤이 되면 저 나무통속에서 고개를 빼꼼이 내밀고 주변의 사물들과 얘기라도 할것같은 느낌이다. 정물. still life. 뭔가 역설적인 단어이다. 나는 오며가며 사과를 닦아 먹고 그리시니의 먼지를 털어 깨물어 먹는다.



자라나는 아기가 할머니 댁에서 조금이나마 한국의 정서를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떤 물건이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역사를 얘기해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침대 옆의 램프 곁에 놓여져 있던 장독. 내가 집에서 후추 통으로 사용하려고 이마트에서 살때 하나 더 사서 선물해 드렸다. 종가집 마당에 수두룩하게 놓여있는 거대한 장독들을 봤을때 어떤 인상을 받으실까.



거실에 놓여 있는 보석함은 리투아니아에서 한식당을 운영하셨던 분이 한국을 떠나시며 남겨주시고 간것인데 우리집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것 같아서 시어머니께 드렸는데 역시 잘 드린것 같다.



그네놀이가 그려진 부채.




지인분들께 선물하면 좋을것 같다고 인사동에서 여러개 구입하신 립스틱 보관함. 도장 보관함으로도 어울릴것 같지만 이런 형태의 도장을 잘 사용하지 않는 외국인들을 위해 아마 립스틱 보관함으로 만든것 같다.



우리의 전통 혼례때 우리 부모님을 포함해서 모두가 한복을 대여했지만 시어머니의 조끼만큼은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구입 해야했다. 이 조끼에 대해서 잊고 있었는데 '한국 관련 물건 다 사진 찍어보면 재밌을것 같아요' 했더니 장롱으로 달려 가더니 꺼내 오셨다. 그리고는 아기에게 입혀보셨다.




이것 역시 마트 탐험중에 발견한 술. 술은 물론 집에 오는 손님에게 마다 한잔식 따라 주셨으므로 빈 병이다. 냉장고 위의 미니 트리 장식과 함께 놓여있었다.




리투아니아에 초콜릿은 무궁무진하고 카카오 함유량이 80프로도 넘는 다크 초콜릿도 엄청 많지만 이런 플라스틱 통속에 담겨 있는것이 재밌다며 사셨던 기억이 난다. 열어보니 절반도 넘게 남아있다.



이것도 지인 선물용으로 사신 젓가락이다. 여기저기 선물하시고도 아직 이렇게 많이 남아있다. 젓가락질이 서툰 외국인들을 위해서 인사동에는 나무 재질의 아래로 갈 수록 뾰족해지는 젓가락을 많이 판매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젓가락 얘기가 나오면 실제 한국인들은 무거운 금속 재질의 숟가락 젓가락을 사용한다고 서울에서 보신 그대로 열띤 설명을 하신다. 빌니우스로 돌아가는 날 버스에서 먹어야 한다며 남편은 주먹밥을 만들었다. 속에 뭔가 맛있는게 들었을까 은근히 기대했는데 오이뿐이었지만 배가 고프니 그것도 맛있었다.



참기름을 발라 구운 김을 너무 좋아하는 남편과 시어머니. 우리집에도 없는 진짜 한국 참기름을 가지고 계시다니. 물론 유통기한은 진작에 끝났지만. 파네베지에 갈때마다 김을 한통씩 구워드리곤 한다. 싹싹히 주걱은 리투아니아 국기와 색상 배합이 똑같다.



이것도 마트에 갔을때 예쁘다며 구입하셨다.



한국에서 써보시고 너무 좋다며 반하셨던 목욕타월. 목욕타월이 신기하다고 하시는 시어머니가 신기하셨던 우리 엄마가 세개나 사드렸다. 리투아니아에는 한국의 목욕타월처럼 시원하게 문지를 수 있는 까칠한 재질의 타월보다는 부드러운 천 재질의 타월이 많다. 거품이 잘나게 망으로 된 타월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길어서 혼자서 등을 문지를 수 있는 타월은 나도 못본 듯. 시어머니께 한국에 방문 할 기회가 또 생기길 바란다. 두번째 세번째 방문에서는 어떤 물건들과 풍경들이 그의 머릿속에 남게 될까. 심지어 이미 나에게도 외국처럼 느껴지는 그 곳. 어떤 새로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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