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템포러리 아트 센터 Šiuolaikinio meno centras-
10여년 전, 빌니우스를 여행자의 발걸음으로 누빌 수 있는 시간은 결코 길지 않았다. 예정된 일정은 2박3일. 리가에서 빌니우스에 도착하자마자 망설임없이 다음 예정지인 바르샤바행 버스표를 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우연과 필연으로 엮인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헌 짚신짝 버리듯 내팽개치고,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다음 도착지의 티켓을 미리 구입 한다는것. 내가 몹시 상상이 결여된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고 있던 인생에 대해서야 더 말할것 없었다. 그나마 티켓을 버릴 한 조각 용기가 있었던것은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에겐 빌니우스에 조금 더 머물고 싶은 동기가 생겼고 내친김에 리투아니아어를 배워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리 어렵지 않게 빌니우스 대학교의 어학당 강사를 소개 받았다. 수업시간은 강사의 본 수업이 시작되기 전인 아침 7시. 청신한 5월의 새벽에 걷는 텅 빈 도시, 낯선 여행지에서 선물받은 예상치 못한 일상이었다. 수업을 들으러 집에서 빌니우스 대학을 향하던 그 길목에 컨템포러리 아트 센터가 있었다. 그리고 하늘 아래 그 건물 한 켠에 저 글귀가 적혀져 있었다.
'모든 사람이 예술가이다. 그러나 예술가만이 그것을 안다.'
나에게 예정된 과외일수는 대략 20일, 20시간. 새벽에 집을 나서며 센터의 모퉁이를 돌았지만 일부러라도 사전도 찾아보지 않았다. 과연 몇번의 리투아니아어 수업만에 저 글귀의 뜻을 알게 될까 사뭇 궁금해진 탓이다. 그리고 스스로 그 뜻을 알게 됐을때의 벅참은 단지 그만큼 발전한 리투아니아어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시회를 열지 않아도 연주회를 열지 않아도 나 역시 예술가가 될 수 있는것일까. 어쩌면 그게 사실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르자 머리가 띵해졌다.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은 작품 채점 시간이 되면 온 교실에 모두를 삥 둘러 세우곤 했다. 그리고 덜덜 떨며 스케치북을 가슴팍에 끌어 당긴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다가와서는 너는 A, 너는 C 라고 말하곤 아무런 이유도 설명도 없이 교실을 나갔다. 이 글귀를 지나칠때면 항상 고등학교 미술시간이 생각난다. 빌니우스의 아트 센터에 적힌 이 글귀는 예술가의 정의 일 수도있고 예술을 바라보는 자세에 대한 정의 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최소한 자기 자신만은 조건없이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나라는 자아를 통해 뿜어져 나와 생명력을 가지는 모든것에 무한한 자신감을 가지며 오만한 나르시시스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태어난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어쩐일인지 저 글귀의 의미를 알고 나서부터는 나를 스치는 모든이들이 예술가처럼 느껴졌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영감을 준 도시이자 내 아이의 고향이 된 이 도시에서 나도 내 인생의 예술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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