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시상식이 좋은 영화를 고르는 절대적인 기준은 분명 아니지만 1월이 되면 2월의 수상 결과를 예측하며 습관적으로 후보작들을 찾아 보게 된다. 물론 인터넷을 통해 고작 다운로드를 해서 보는것이지만. 우선은 <레버넌트>와 <브릿지 오브 스파이>와 <시카리오>를 봤고 <마션>은 리들리 스콧트의 영화이니깐 진작에 찾아 보았는데 후보에 올라있다. <레버넌트>는 다분히 오스카를 겨낭해서 만든 전략적인 영화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작년 감독상 작품상 수상자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2회 연속 감독상 수상이라는 그럴듯한 타이틀에 혹해 메가폰을 잡고 이제는 그저 헐리우드가 키운 온실속의 화초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작년에 큰 이슈가 되었던 <매드맥스>의 톰 하디가 출연하는것 만으로도 뭐랄까 로버트 알트만의 <플레이어>속에서 묘사되는 그렇고 그런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 과정의 이면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차라리 20년전에 <토탈 이클립스>의 랭보나 <길버트 그레이프>의 어니 같은 역할로 연기상을 수상했더라면 그의 연기 인생은 전혀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 당시의 그의 광기는 오히려 배우가 인생에서 한번 정도 제대로 미칠 수 있었을 때 나오는 연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당시 그런 배우는 많지 않았으니깐. 하지만 배우가 미치는것은 한번으로 족하다. 매번 미치면 다음번에는 더 미쳐야하는데 그 부작용의 가장 좋은 예가 디카프리오이다. 해가 지날수록 디카프리오가 출연하는 영화들을 보고 있자면 연기를 위한 연기적인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흑 아니면 백, 항상 극단을 달리는 캐릭터는 얼마간은 동경을 일으키곤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선명하고 자기 파괴적인 캐릭터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면 디카프리오식으로 정형화된 캐릭터가 되었다. 그러니 갑자기 급선회해서 아내와 아들을 잃은 비탄에 잠긴 남성을 연기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레버넌트>에서 그가 연기하는 부성애는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때때로 등장하는 아내의 신비롭고 초자연적인 장면이 그나마 아빠 디카프리오에 몰입이라도 해 볼 여지를 준다. 여러모로 난 캐스팅 때문에라도 나름 나쁘지 않은 이 영화에 제대로 몰입 할 수 없었다. 크리스챤 베일이 이 역할을 했다면 오히려 잘 어울렸을것이다. 그나마 <어바웃타임>의 어리숙했던 돔놀 글리슨이 이 영화를 통해 연기 스펙트럼을 넓힌것 같다. 특히나 죽어서 꽁꽁 얼어붙은 인디언 아들에게 기어가서 흐느끼며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섬세하고 가슴 시린 장면에서 얼굴에 흘러내린 앞머리 한가닥을 머리를 흔들어 넘기는 디카프리오의 모습에서 박장대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입으로 바람을 불어 머리카락을 넘길 작태였다. 이냐리투는 어떻게 이런 장면을 편집도 없이 그냥 내보낸것일까. 초반의 인디언과의 총격씬은 쫄깃했고 감탄할만했다. 하지만 복수에 불타오르며 끈질기게 살아 남는 그의 모습에서 람보를 보았고 캐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를 보았을뿐이다.
전도연과 공유가 출연한 <남과 여>가 보고 싶다. 공유는 왠지 <김종욱 찾기>에서 인도를 여행하던 공유로 돌아왔을것 같고 전도연은 언제나 그랫듯이 The 전도연일것이다. 감독의 전작인 <멋진 하루>와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도 인상깊게 보았었다. 주인공들은 항상 예민했는데 그 연장선상에 있는 비슷한 인물들이 핀란드의 깊은 겨울속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주하고 깊은 숨을 내쉬고 있는 장면들을 상상해본다. 나에게 헬싱키의 겨울은 한없이 예민했었으니. <만추>에서 탕웨이가 버스에서 내려 현빈을 기다리며 혼자 들이키는 커피도 떠올랐다. 이윤기 감독의 영화에 탕웨이도 왠지 잘 어울릴것 같다. 함께이기에 오히려 결코 채워지지 않는 성근 인간관계의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다보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정말 생각 다운 생각,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말 다운 말을 건낼 수 있는 흔치 않은 시간인데 생각나는 모든것들을 기억하는것이 쉽지 않고 따로 기록을 하기에도 여의치 않다. 장갑을 벗으면 손이 너무 시렵고 머릿속에서 끄젹여댄 생각들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최선의 방책으로 셔터를 눌러보지만 '나중에 사진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해서 왜 사진을 찍었는지 기억이 날거야' 라는 생각은 적절하지 않았음을 사진을 보며 깨닫는다. 기억은 녹아내리고 생각은 변주된다.
끈기 부족과 산만함탓에 한 권의 책을 진득하게 읽지 못하고 읽더라도 자리 기억하지 못한다. 그럴바에 여러권의 책을 동시에 점차적으로 읽어가는게 낫다는 생각에 항상 두세권의 책을 함께 읽게 된다. 그렇게 해서 일년에 세권의 책이라도 제대로 읽을 수 있으면 성공이다. 리투아니아에 올 때 사온 죽음의 집의 기록을 다시 집어 들었고 헨리 밀러의 마루시의 거상과 노인과 바다를 펴서 야심차게 겹쳐 놓았다. 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좋다. 왜냐하면 내가 절대로 죽어도 이해하지 못 할 작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계속 읽던곳을 읽고 또 읽고 언젠가 감탄 했었음을 망각하고 또 같은 부분에서 마치 처음 읽는듯 감탄해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 책장에 단 한 작가의 작품만 남겨야 한다면 그의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결혼 후 리투아니아에 올 때 공항에서 무게 초과로 많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책들을 인천공항에 기증(?)을 해야했다. 다음에 가면 꼭 새로 사서 모셔오고 싶다.
난 게임의 게자는 물론 기역자도 G자도 모르지만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른채 모름을 당연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 남편과 게임을 해보기로 했다. 5년전 지스타에 갔을때 이 게임의 부스를 본 기억이 있어서 이미 한물 간 게임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유럽과 북미 서버는 며칠전에야 개통이 된 엔씨소프트의 블레이드 앤 소울. 남편은 세상의 모든 게임에서 배울것이 있고 게임속에서 세상을 여행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먼 훗날 아기가 소년이 되었을때 아빠와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생각하니 나도 기본적인 단축키 정도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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