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여인> 홍상수
우연찮게 비슷한 시기에 데뷔작을 내고 나름 다작을 하고 마치 경쟁하듯 국제영화제에 드나들던 홍상수와 김기덕.
다른 방식이지만 어쨌든 보고나면 찝찝한 기분 들게 만드는 그런 영화를 만드는 대표주자들이다.
김기덕의 영화가 보는내내 불편하고 아슬아슬한 느낌을 준다면 홍상수의 영화는 볼때는 우선 산뜻하다.
배경이 워낙에 심플하니 배우들의 세세한 움직임에 집중해서 관찰할 수 있는 재미가 있고,
봐도봐도 상투적이지만 결코 누구도 저거 우리 얘기네 하고 시인 하기 힘든 술마시는 장면이 항상 있다.
그리고 보고나면 좀 찝찝하다.
자기자신에게는 유난히 관대해지는 우리들의 이야기.
그래서 오랜만에 홍상수의 영화를 봤는데 변한게 아무것도 없어서 놀랐더랬다.
시나리오 작업중인 영화 감독 중래.
후배로 추정되는 김태우에게 서해안으로의 여행을 갑작스레 제안하고,
여자친구와의 선약이 있던 김태우는 거절을 제안해보려 하지만 결국 거절하지 못하고
여자친구인 고현정도 함께 가는걸로 합의를 본다.
그래서 남자 둘 여자 한명이 여행을 떠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술을 마시고 중래와 문숙은 김태우모르게 하룻밤을 보내고,
하루만에 돌변한 중래의 행동에 문숙은 열이 받아 괜히 김태우에게 살가워지고
중래는 또다시 문숙이 아쉬워 진다.
다시 바다로 돌아온 중래는 시나리오 작업에 필요한 인터뷰를 핑계로
문숙과 닮았다는 선희를 만나고 호텔에 들어간다.
중래와 선희가 묶는 호텔방앞으로 술취한 문숙이 돌아온다.
중래와 선희는 호텔방 베란다를 통해 밖으로 나오고,
중래는 마치 방에 없었던 사람처럼 호텔로 돌아와 문숙을 데리고 같은 방으로 들어간다.
여기서부터 문숙의 집요한 질문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너 그 여자와잤지 라는 질문이다.
문숙의 끈질긴 추궁에 중래가 내놓는 저 이론은 문숙이 얘기했듯이 정말 훌륭한것 같다.
'나 요새 정말 있는 정신을 다해서 싸우고 있거든. 이거 내가 예전에 깨달은건데 한번 들어봐.'
이론이란것이 대충 이렇다.
인간은 실체를 뒤로하고 남들이 심어놓은 이미지를 무한 반복하고 있다.
하나의 포인트에 계속 시선이 가면 하나의 이미지가 생기는데,
중래가 예를드는 포인트들이 대충 이렇다.
자기는 이미지와 싸우고 있다면서도 극중 중래인 김승우가 찌질하게 예로 드는것들이란.
문숙이 외국남자와 잔 것.
문숙의 신음하는 얼굴과 외국인의 성기, 포르노속의 이상한 체위들이 하나의 포인트를 이뤄 세트가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불결한 이미지와 합치된다는것이다.
(오히려 이런 이론들은 <러브픽션>의 공효진이 하정우에게 역설했으면 더 설득력 있었을 이론이다.)
그래서 그 이미지는 저기 위의 저 삼각형이고,
문숙이 떡볶이를 먹고 행복해하고,
아픈 친구를 생각하며 걱정하고,
똥을 누울때의 이미지를 연결하면 삼각형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큰 아래의 도형이 나온다.
그리고 그 도형이라는것이 삼각형처럼 상투적이고 일반적이진 않지만 무한굴곡의 실체에는 훨씬 가깝다는것이다.
그래서 계속 노력하다보면 상투적이고 사악한 삼각형의 이미지를 깨뜨릴 수 있게 되어야한다.
그러므로 다른 포인트들을 함께 볼 수 있게끔 노력해야한다는것이
바로 중래의 이론.
문숙의 입장은 그렇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는 이해가 안되는것.
술을 마시고 돌아와서 하는 질문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어서
'너네, 그러니까 방을 나와서 나를 넘어서 나갔지?'
라는것. 어차피 문숙의 이런 질문은 이미 듣고자 하는 답이 정해진 질문인데
요는 굳이 그것을 남의 입을 통해서 듣겠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믿지 않을것이고, 남자는 그걸 아니깐 그렇지 않다는 부정조차 하지 않는다.
여기에게 넘어갔다 넘어가지 않았다 라는 실체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의 제목이 해변의 여인이 아닌 '중래의 이론' 같은 거였더라도 괜찮았겠다 싶다.
이론이라는것이 늘상,
한번에 딱 이해가 되는 그런 이론들도 있지만,
계속 두고두고 생각하다가 어느순간 갑자기 '클리어'(이건 영화속에서 중래가 한 두번 사용하는 민망한 단어들 중 하나)
해지는것들이 있고,그러다가도 다시 미궁속으로 빠져들어서 '겁이 나' 라고 말하게끔 하는 그런것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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