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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커피와 물 3



외대 후문에서 경희대 후문으로 향하는 경사진 언덕에 자리잡은 이 카페에서 날이 추워지기 전 어떤 날, 바깥에 앉아서 카푸치노를 마신 적이 있다. 좁은 카페는 커피를 준비하는곳과 테이블이 놓인 곳으로  길다랗게 나뉘어져 있다. 손님이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항상 완전하다는 느낌을 주는곳들이 있다.  사실 폐소공포증을 유발할 수 있는 곳들이기도 하다. 옆사람의 커피 홀짝 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것은 불편함이라기보다는 은밀한 공유에 가깝다. 커피를 들고 이층으로 삼층으로 올라가야하는  넓은 카페를 메운 대화 소리는 둑에서 터져 흘러 나오는듯한 정제되지 않은 주제의 자극적인 소음인 경우가 많지만 밀도 높은 카페속에서 사람들이 한톤 낮춰 조심스럽게 속삭이는 대화는 가볍게 끄적여진 수필같은 느낌에 가깝다. 검은 접이식 칠판에 형광색 펜으로 메뉴를 적어 놓거나 자잘한 피규어나 식물들을 가져다 놓는 동네 카페 특유의 노력도 생략된채였다. 회색톤의 한기가 지배적이었던곳,  은근한 자존감과 냉소가 감도는곳들의 커피는 더 따뜻하고 더 맛있어야하는 의무 같은것을 지니게 되는것도 같다.




서울에는 규모가 큰 카페가 많다 보니 카페 안에서 커피를 마셔도 으례 일회용 용기에  담아주는 경향이 있는것 같다.  그래서 안에서 마실거냐는 질문이 나오기전에 미리 잔에 담아 달라고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물론 에스프레소는 굳이 잔 얘기를 꺼내지 않아도 어디에서든 항상 고고한 자태로 담겨져 나온다.  그것은 아마 카페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짧고 달콤 쌉싸름한 사치에 관한 예우 같은것일지도 모르겠다.  커피와 함께 가져다준 얼음물은 의외로 탄산수였다.  커피를 두잔이나 마실동안 얼음이 다 녹지 않은것이 신기했다. 커피로 쏟아넣는 설탕은  탄산수의 기포처럼 순식간에 터지며 사라지기 마련인데 이 커피의 크레마는 너무 농밀하고 두터운 나머지 마치 뒤집어지며 가라앉는 배처럼  커피잔 귀퉁이에  쏟아부어진 그대로 수초간 머무르다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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