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 있는 동안 날씨가 좋았다. 나는 내가 낯선 곳에 도착했을때 방금 막 비가 내린 상태의 축축함이나 공기중에 아지랑이처럼 묻어나는 흙냄새를 느낀다면 가장 이상적인 여행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 지나간 어떤 여행들이 그런 모습이었고 그 모든 여행들이 좋았기에 그런것같다. 하긴 여행이 싫었던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베를린에서는 매우 짧고도 인상적인 비가 딱 한번 내렸다. 내가 비를 맞은 횡단보도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을 지경이다. 밤이되면 친구의 어플속에서 새어나오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었다. 그것이 베를린에서 나에게 할당된 빗방울의 전부였다. 그외의 순간들은 모두 해가 쨍쨍났다. 도착한 다음날부터는 32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었다. 다소 덥다 싶은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스카프를 두르고 다녔지만 카페에 가만히 앉아있을때나 공원 벤치따위에 몸을 뉘였을때 나를 배반하지 않는 착한 바람들이 불어왔다. 이탈리아 도시들의 폐쇄적이고 공격적인 형태의 블라인드나 파라솔들은 아니었지만 베를린의 주택가에도 햇살을 이겨내기 위한 울긋불긋한 파라솔들이 곳곳에 눈에 띄였다. 그것은 태양에 저항한다기보다는 인사를 건네는, 태양에 달궈진 붉은 하늘이 반사된 색안경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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