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6일은 리투아니아의 국경일이다. 정식명칭은 karaliaus mindaugo karunavimo diena. 1253년 7월 6일은 리투아니아 공국을 세운 리투아니아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국왕인 mindaugas 국왕의 즉위일이다. 국경일 명칭에 mindaugo 라고 쓰이는 이유는 이름이 소유격처럼 쓰이므로 Mindaugas 에서 Mindaugo 로 변형된 것. 사실 그러고보면 리투아니아에는 Mindaugas 민다우가스라는 이름이 정말 많다. 우리때만해도 학생이 그렇게 많았어도 사실 같은 학교에서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던것 같은데, 반면 리투아니아에는 이름이 거기서 거기인 대신 성을 외우기가 무척 힘들다. 친구들중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이들이 많기때문에 보통은 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일을 하다보면 전화상으로 내 이름을 알려줘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때마다 애를 먹는다. 잘 알아듣기 힘든 명칭을 받아적게 할 때 리투아니아인들은 보통 사람이름을 이용한다. 예를 들어 korea 라는 단어를 알려줘야 할 상황이라면, karolis K, ona O. renata R. emilija E. agne A. 지금 적은 단어들은 전부 리투아니아 이름들이다. 이런식으로 아무 이름이나 알아들을 만한 이름을 예로 들어서 첫 철자를 적게 하는것이다. 물론 알파벳 명칭인 케이,오,알,이,에이 이런식으로 리투아니아 알파벳도 저마다의 명칭이 있지만, 알아듣기 힘든 명칭은 그렇게 말해도 알아듣기 힘든 경우가 많아서 이름을 예로 들면 훨씬 받아적기가 쉬워진다. 금요일인 국경일을 맞이하여 목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4일간의 연휴가 시작되었다. 코발트 색 페인트칠을 하고 친구의 친구가 불러내서 오후 10시반경에 집을 나섰다. 매년 여름 이맘때쯤 빌니우스의 컨템포러리 아트 센터 뒷마당에서는 'kinas po zvaigzdemis'라는 부제를 걸고 영화를 상영한다. 직역하면 '별 아래에서의 영화'. 오픈씨어터이고 상영하는 영화도 주로 상업영화가 아닌 예술영화나 독립영화이다. 티켓가격은 10리타스, 대충 오천원이 안되고 공짜로 커피도 주고 원한다면 맥주도 사서 들어갈 수 있는것 같다. 달려드는 모기가 두렵지 않다면 잔디에 누울 수도 있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앉아 멀리 벽에 기대어 담배를 피울 수도 있다. 약간 늦어서 오프닝부터 보진 못했고 얼핏 난니 모레티라는 이름이 스쳐지나간다. 검색해보니 우리가 본 영화는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였다. 난니모레티가 <타인의 취향>을 만든 감독이었나.
처음에 좀 놀랐다. 그냥 영화 볼래 해서 나온건데, 종교 영화였다면 나오지 않았을것 같다. 바티칸 얘기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근데 교황이 즉위식 당일에 울렁증을 일으키고 결론적으로는 즉위를 포기하게 되는 그런 내용이다. 우리가 금욕을 요구하고 성스럽길 요구하는 종교인들도 결국은 똑같은 사람일뿐. 감독 난니 모레티가 정신과 의사로 나온다.
하지가 지난지 3주가 다 되어가지만 오후 11시가 되어감에도 밝다. 리투아니아에 백야는 없지만 긴 여름 밤은 충분히 매력있다. 교황의 즉위식에 앞서 바티칸에 모여 교황이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리는 시민들이다.
교황이 아니다. 교황은 발코니 문턱을 넘지도 못하고 울렁증을 일으키고 만다.
교황 아저씨.
영화 끝나고 간 곳. 보헤마라는 레스토랑인데 여름이라서 일시적으로 꾸며진 섬머테라스이다. 여기가 원래 도서관 앞뜰이다. 굉장히 조용하고 시끄럽게 술 마실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그런 곳에 위치해있다.
나오기전에 스프를 먹었어서 우리는 배가 별로 안고팠지만 일행이 음식을 시켰다, 3가지 맛의 타뻬나드이다. 나는 샴페인 한잔 마셨다.
우워와 저 샐러드 너무 맛있어 보인다. 초콜렛 시럽같은 감촉의 드레싱.
새벽 두시반 쯤 되었다. 밤에 걷기에 딱 적당한 날씨이다. 덥지도 춥지도 부담스러운 바람이 안부는 그런 날씨.
페인트칠을 다 했다는 만족감.
한적한 데 큰 거리에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트립'이라는 이름의 술집인데 20대초반 혹은 십대 후반 위주의 인테리어이다. 밖은 벌써 대낮이다. 오전 4시가 좀 넘은 시각. 저 전등이 예쁘다. 우리 친구의 친구가 테이블 축구하는 작은 클럽을 운영하는데 테이블 축구와 관련된 사업을 하는 모양이다. 그 축구 테이블이 놓여진 거래처들을 순회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클럽에서도 테이블 축구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아무데나 널부러져 있는 아이들. 저런 푹신한 소파가 집에 있어도 좋겠다. 큰 모래자루 같은걸로 된 그런 소파들.
바나나와 초콜렛 시럽이 섞인 무슨 칵테일을 마셨다.
난 절대 싱크대밑에 커튼을 달고 싶지는 않다.
오후 10시 이후에 상점에서 주류판매가 금지되있으므로 술집에서 술을 마셔도 오후 10시 이후에는 술을 밖으로 가져나가는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있다. 이 클럽에는 문앞에서 사람이 지키고 서서 담배피우러 나가는 사람들이 술잔을 들고 나가는것을 제지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모래자루위에 앉아있는 상황이다. 사람들은 그냥 막 지나다닌다. 널부터져서 자는 이들도 있고.
이곳은 오전 5시경에 찾아간 play 라는 클럽이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축구 테이블이 놓여져 있다.
거의 문을 닫는 분위기이다.
적당히 아름다운 램프.
지금 무엇을 가르키고 있냐면 아마 클럽 마떼라는 무알콜 카페인 음료이다.
이거. 맛있는 음료이다. 남미에서 주로 마시는 마떼라는 차인데 카페인이 있다.
우리집 부엌이 이런 분위기여도 난 좋을것 같다. 항상 마시자는 분위기로 가겠지만.
인테리어 블로그에 단골로 등장하는 빨간색 스멕 냉장고. 이런 클럽에 서있으니 오히려 더 잘 어울린다.
천장색이 어두워도 좋은건 여기가 클럽이기 때문일까.
저 쇼파에 눕기 위해서는 취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거의 아는 사람만 남은 상황에서 알바생이 자기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춤을 추고 있다.
의자 올리고 청소하는 시간.
주변 주민들은 정말 별로겠다. 실내 흡연이 금지되어 있으니 담배를 피우려면 죄다 클럽 밖으로 나가고
사람들이 많으니 자기 말소리가 안들려서 더 큰 소리로 얘기하다보면 클럽 밖은 내부만큼이나 시끄러워진다.
어느덧 아침 7시가 넘었다. 별다른 계획도 없었는데 나름대로 유쾌한 적당한 장소들을 거쳐 좁은 빌니우스 이리저리에서 수다를 떨고 그래도 나름 또렷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참으로 오랜만에 짐 자무쉬의 <영원한 휴가>의 앨리가 된 기분이다. '어디 갔다 왔어?' '어 밤새도록 걸어다녔어' '한 잠도 못잔 얼굴이 아닌데?' 그 대사가 머리를 스쳤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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