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고 까불고 밀고 당기는 주인공들로 채워진 알록달록한 영화 포스터들 사이에서 텅빈 기찻길을 배경으로한 <파수꾼>의 포스터는 주의를 끌기 충분하다. 이런 영화는 지독하게 감성적인 영화이거나 처절하게 리얼한 영화이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어쩌면 처절하게 리얼한 영화만큼 지독한 감성을 끌어낼 수 있는 영화는 없을 수도 있겠다. 영화 <미스틱 리버>의 포스터가 바로 그랬다. 새벽 어스름 강에 내비친 친구 3명의 그림자. 어떤 버전의 포스터보다 훨씬 더 우회적으로 표현되어서 불안한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상상하게끔 했던 영화. 다 자란 어른들의 성장 영화. 어쩌면 조금도 더 성장하지 못한 어른들의 영화.
안개가 짙게 드리워진 텅빈 기찻길에 앉아있는 두 고등학생. 영화의 영어 제목인 bleak night 도 어쩌면 이 영화를 편안한 마음만으로는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예감을 준다. 요근래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불안했던적이 있었나 싶다. 극단적으로 클로즈업된 주인공들의 얼굴과 심하게 흔들리는 카메라. 서투른 표현에서 비롯된 서로에 대한 오해와 상처로 영화는 결국 비극적으로 끝난다.
누구에게나 그렇다. 아무도 모르는 우리들만의 공간이 있었고 그곳에서 오갔던 우리들만의 얘기가 있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에게서 느꼈던 불안을 동반한 안도감과 영원할 것 같았던 그 막막함에 의기소침했던 시간들.
거의 딱 10여년전쯤에도 비슷한 영화를 보고 오래도록 우울했던적 있다. 물론 친구사이의 우정보다는 조직폭력배에 대한 환상을 가진 설익은 감정의 고등학생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라는 차이점이 있지만 그만큼 리얼하고 그래서 더 가슴 아프고 자꾸 생각나는 두 영화 <파수꾼>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제훈의 얼굴과 표정에서 과거 류승범의 얼굴이 보이는데. 류승범이 당시 비슷한 연령의 주인공을 연기했던것과 달리 이제훈은 자기보다 한참 어린 주인공을 아무 문제없이 연기했다. 오히려 함께 연기한 다른 배우들 보다도 나이가 많음에도 친구역으로 전혀 의심할 여지 없었던 그의 연기.
뒤늦게 프로필을 찾아보고 나이를 알게됐는데 그럼 <건축한 개론>에서도 사실 알고보면 거의 열살이나 차이가 나는 수지와 첫사랑 동갑연기를 했던거였구나.자기 연령보다 어린 인물의 연기를 할 수 있는것은 어쩌면 행운이겠지만 이 배우가 좀처럼 늙지 않는 얼굴을 계속 가지게 된다면 그것도 배우로써는 마이너스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제훈뿐만 아니라 영화에 등장한 모든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훌륭했다. 그냥 변두리의 남자 고등학교 하나를 섭외해서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듯 금새 촬영해낸듯한 웰메이드 독립영화.
자르지 않은 덥수룩한 머리로 학교를 찾아오는 누군가의 아버지와 또래들의 이야기 그리고 집단폭행씬이 교차편집된다.
시종일관 각기 다른시점에서 비연속적인 장면들이 복잡하게 보여지고 누군가가 죽긴 죽었구나 라는 결론을 내리고, 동시에 단지 누군가의 뻔한 희생에 대한 서사를 위해 이정도의 긴장감 조성이 필요할까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멋있다. 만든이의 재능에 매순간 탄복하게 되는 영화. 카메라기법과 편집기법하나로 단순한 성장영화로 그치지 않고 서스펜스까지 추가할 수 있다니. 그리고 죽었을거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현재시점에서 등장하는것을 보니, 어쩌면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영화가 흘러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가해자라고 말하기 힘든 영화 속 상황에서 기태에게 가장 큰 힘을 실어줄 수 있었던 인물이 그의 아빠였다는 점에서 자식을 잃은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운 연민보다는 야속한 마음이 더든다.
이해가 안가서 한 3번정도를 돌려보았던 장면이다. 그리고 이 장면을 시작으로 영화속 긴장감에 가속이 붙는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 싸움은 가해자는 없이 피해자만 가득한 미묘한 감정싸움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장 압권이었던것은 수다에는 전혀 집중하지 않은채 어떤 찰나의 순간을 기다리며 의미없이 계속해서 책장을 넘기던 희준의 모습.
엄마 꽃집에서 시급 이천원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재호의 얘기를 들으면서 계속 알 수 없는 눈짓을 주고 받고,
그들의 얘기에 어설프게 관여하면서 급히 화제를 돌려 자기얘기를 시작하는 기태는 얘기도중에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부랴부랴 자리를 뜬다. 이 일련의 장면들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돌려서 다시보니 그 순간의 그 느낌은 당사자만이 눈치챌 수 있을만큼 미묘하더라. 그리고 그 미묘함은 뻣속까지 시리게 하는 세찬 바람처럼 가혹하다.
화장실로 따라온 재호에게 그 눈빛의 의미가 무엇인지 기태가 묻는다. 부모님이나 집안얘기가 나오면 항상 급히 화제를 돌린다는 사실을 알게됐고 실제로 기태가 그렇게 하자 봤지 내말이 맞지 라는 식으로 눈빛을 주고 받았던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친구를 좋아한다는것에 받은 여린 상처. 친구가 항상 자기를 부하처럼 대한다는데서 오는 열등감으로 결국은 일부러 남의 열등감을 건드려 상처를 준다. 어쩌면 그 시기의 우리는 자신의 상처를 그냥 묵묵히 삭혀버리고 관계를 지켜나가려는 노력을 하기에는 덜 성숙한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고 다 자랐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에 급급한게 인간이니깐.
기태와 희준의 팽팽한 신경전 사이에서 왠지 그들의 관계를 잘 조율할 수 있을것처럼만 보였던 동윤. 하지만 자신의 여자친구에 대한 험담으로 결국 그 역시도 상처를 입고 모두의 관계는 뒤틀어져 버린다. 동윤의 여자친구인 세정이 '낙인'에 관한 얘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세정은 우리로써는 진실인지 소문일지 알 수 없는 이야기에 손목을 긋는다. 학창시절에 국한시킬 필요도 없이 우리는 타인의 몇가지 모습만보고 그의 성격과 역할을 단정지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런 독단적인 결론은 아직 채 덜 성장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더 커다란 낙인이 되어버리고 마는 거겠지. 그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하고 아무런 관심과 기대도 받지 못할때는 반대로 더 크게 좌절한다.
자잘한 오해를 풀지 못하고 서로 넘겨짚듯 상처입고 상처주기를 반복하면서 그들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변해버린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라고 진심어린 질문에 대답해줄 수 있는 이도 없다. 기태는 어긋난 방식으로 멀어진 친구들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노력했고 다른 친구들은 무관심과 냉대로 그를 벌하기 시작한다. 나 너랑 화해하고 싶어라는 마음과 노력은 전혀 다른 모습의 행동으로 분출된다. 그 진심을 진심으로 표현했을때는 안타깝게도 모든게 너무 늦어 버렸다.
대부분의 우리는 우리들의 거침과 투박함을 비난과 상처없이 눈감고 흡수해줘야 하는 존재의 부재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는것 같다. 더럽히기 힘든 절대적인 순수함이나 아름다움 같은것은 오히려 교과서적인 간지러운 이야기처럼 다가오고
쉬는 시간 말뚝박기나 의미없는 수다처럼 순간적이고 가벼운 농담만이 진실을 지배해버리던 시절. 누군가에게는 그 시절이 극단적인 비극으로 끝나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사뭇 씁슬하다. 익숙해지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들에 우리는 익숙해져버린지 이미 오래이다. 학교폭력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마치 물가인상이나 선거얘기만큼 습관적으로들려온다. 누군가가 왕따를 시켰고 왕따를 당한 아이들은 죽어간다. 누군가가 심하게 맞았고 맞은 아이들은 상처받는다. 이만큼 인과관계가 뚜렷한 이야기들은 아마 없어보인다. 하지만 정말 그들의 이야기를 그렇게 명명백백 간단하게 결론지을 수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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