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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내 아내의 모든것> 민규동 (2012)



꼭 요리를 주제로 한 영화가 아니더라도 이런 영화는 왠지 음식영화라는 장르로 분류해두고 싶다. 음식 셋팅에서부터 식기며 요리도구, 부엌 인테리어까지 구석구석 신경써서 촬영한게 티나는 그런 영화들말이다. 음식을 대하는 주인공들의 자세는 또 얼마나 야무지고 아기자기한지. 너무 금새스쳐지나가서 몇번이고 정지시켜놓고 천천히 살펴보고 싶었던 장면들이 많이 있었다. 요리장면이나 식사장면이 더 많았더라면 좋았겠다. 극의 흐름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걸까.깡마른 몸에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정인은 그래도 요리를 할때만큼은 행복해보인다. 그렇게 완벽을 추구하고 까다로운 그이기에 그가 만드는 음식도 상대적으로 맛있어 보였던것은 아닐까. 하지만 정인의 인생은 매우 권태롭고 위태로워 보인다. 함께사는 삶의 내용은 변화무쌍한 것인데 그 변화를 감지한 사람들은 권태를 느낀다. 하지만 권태를 불행이라는 단어와 동일시할 수 있을까.


아내를 유혹해 줄 전설의 카사노바를 고용한다는것은 지극히 극적인 발상이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나름 현실적이다. 물론 웃자고 한 얘기들이었겠지만 몇몇 토크쇼에서 이선균 스스로 불평하듯 털어놓은 그의 결혼생활을 상기시키니 그가 연기한 캐릭터에 좀 더 쉽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솔직하게 자기 인생을 얘기할 수 있는것도 생각해보면 배우에게는 하나의 전략이 될 수도 있겠구나. 왠지 결혼이나 출산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소녀 같은 임수정이기에 정인의 캐릭터도 납득히 간다. 이 영화와 사랑한다,사랑하지 않는다 로 임수정은 당당히 어른 배우의 반열에 들어선것 같다. 그가 나오미 왓츠나 샤를롯 갱스부르 같은 느낌의 배우로 늙어갔으면 좋겠다.

달콤하고 자유분방한 연애끝에 결혼에 골인. 저기 서울 외곽의 신도시 어디쯤일까? 별로 한국 같아 보이지 않는 동네에 알록달록 예쁘게 줄지어선 집들 사이로. '7년 후'라는 자막이 뜬다. 솔깃하지만 좀 불편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결혼 후 별다른 직업없이 괜찮은 집에서 괜찮은 옷입고 그럭저럭 괜찮게 살아가는 여자. 하기 싫은거 많아보이고 고집있어 보이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욕구 불만에 약간의 피해의식에 열등감마저 보인다. '우리 다시 아기를 가져보도록 해볼까?'라는 정인의 메세지는 임신과 출산이 이 두 사람에게 어쩌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뉘앙스를 주지만 결혼을 해서 7년동안 아이없이 둘이서 살면 저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것도 당연하다라고 살짝 공감을 하려고보니 그 서사는 좀 불편하다.


참 볕이 잘 드는 집이다. 남자는 처음 봤을때의 여자 모습을 항상 기억하며 여자가 항상 처음과 같기를 바라고 여자는 남자가 처음처럼 만족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에 항상 변화를 꾀한다고 누가 그러더라.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라는 책이라도 읽어야 할 것 같다
.


코발트색 타일에 개나리색 부엌가구. 아침볕이 저렇게 잘드는 예쁜 공간에 정말 완전 모르는 사이처럼 남겨진 두 사람이다. 백만 광년은 되어보이는 둘 사이의 거리를 가득 메운 것은 진공청소기 소리와 담배 연기 뿐. 정인을 생각하면 우울하다. 이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려면 어느정도로 상대를 싫어야할까. 어느 정도의 실수와 잘못이 용인될 수 없는걸까. 변하는 상대보다 더 낯설은 것은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상대가 싫어지는 자신이 아닐까. 살아서 단 한 순간이라도 이 사람을 증오해야 할 순간이 있을것이라고 언제 상상이라도 했었을까. 나없이 한번 살면서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실감해봐 라는 저주 같은건가.


이 두 사람의 욕망은 확실한 불일치다. 여자는 여전히 요리로만 소통하려하고 남자는 이미 음식으로 그녀를 이해하는 방법을 까먹었다. 정인의 얼굴에서 영화 <삼공일 삼공이>의 방은진이 보인다.


남편이 출근하고 혼자 남겨진 여자. 설거지는 항상 자기만 하는것 같고 그걸 누구한테 떠넘기기엔 명분이 없다. 똑같은 일상의 반복. 집에 볕도 잘들겠다 뭔가 자기를 위한 삶을 살 여력도 되는데 힘들다. 아이를 낳아 키우고 일하고 남편 뒷바라지하고 그 후에 여자들이 느끼는 공허감. 가장으로써 항상 일만하고 나중에 뒤돌아서서 내 인생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남편이 느끼는 공허감. 어떻게 살아도 인간 자체가 그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것이니
아이만 키우다가 자신을 잃었다느니 아이라도 없으면 삶은 무의미하다느니 아무튼 이런식으로 본질을 피해가려 하지 말자.


참으로 유쾌했던 배우 류승룡의 캐릭터. 왠지 이런 캐릭터에 수긍하면 새로운 인생을 선물 받을 것 같은 환상을 준다. 하지만 쉽게 사랑에 빠지지는 말자.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정인의 삶은 어떻게 끝났을까. 비포 시리즈의 컨셉으로 후속편이 나온다면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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