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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줄리 앤 줄리아 Julie and Julia> 노라 애프런 (2009)



영화를 볼때 내가 줄거리와 관계없이 가장 집중해서 보는것은 주인공이 먹는 음식이나 마시는 음료나 듣는 음악이나 주인공이 머무는 부엌의 모습 등이다. 하물며 이렇게 음식에 죽고 못사는 사람들의 치열한 이야기는 하루하루 무엇을 먹을지를 고민하고 무거운 식재료와 함께 힘들게 귀가해서 맛있게 먹어 줄 사람의 행복한 표정을 머릿속에 그리며 묵묵히 저녁을 준비하고 눈 깜짝 할 사이에 싱크대로 직행하는 빈 접시와 마주할 때 까지의 그 일련의 과정들이 단지 먹고 살기 위한 원초적 행위는 아니지 않겠느냐는데에 위안을 준다.


나름 전용 루프탑 레스토랑도 지닌 좋은 건물이지만 브룩클린이라는 지역은 아무도 살고 싶어 하지 않는 구역인가보다. 이삿짐을 바리바리 채워서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오는 줄리 부부. 줄리는 그저 이 새로운 집이 못마땅하다. 직장에서도 시달리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열등감에 시달리는 아내를 인내심과 확신을 가지고 토닥이는 남편. 줄리 남편과 줄리아 남편으로 조금만 시점을 바꿔서도 영화 한편은 만들 수 있겠다. 상대적인 결핍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들이 좋다. 그런 사람들만이 주변을 행복하게 만들수 있고 고민하고 방황하는 이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는것 같다. 가만 생각해보면 남보다 잘 살고 싶은 마음은 오히려 그 동기가 순수하다. 오히려 뒷목을 잡아땡기는 생각은 최소한 남들 사는 만큼만 살아야겠다는 강박인지도 모른다.


메릴 스트립은 마가릿 대처와 보그 편집장도 그렇고 실존인물을 연기하는데 재미를 붙였나보다. 실존 인물이 아무리 매력적이고 영향력있는 인물이라고해도 배우가 그 사람을 똑같이 연기해 내는데에서는 별 매력을 못느끼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 실제 줄리아 차일드라는 여자가 저랬나보다 하고 애써 집중을 하려고는 했지만 뭔가 불편하다.개인적으로 메릴 스트립 최고의 영화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와 <리버 와일드>가 아닌가 싶다.다시 보고 싶다 리버와일드. 섹시한 케빈베이컨과 젊고 강했던 메릴 스트립.


맛있는 음식을 하려면 정말 재료를 아끼지 말아야하고 특히 기름 버터 이런거 아끼면 안되는것 같다. 도대체 이렇게 기름진 브루스케타를 만들려면 기름을 얼마나 부어야 하는거지? 일년 365일동안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에 등장하는 레시피를 전부 시도해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블로그를 시작하는 줄리.


하루 종일 직장에서 상사에게 치이고 고객에게 치이고 온 세상에 치이는듯한 줄리.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그저 불확실하기 만한 하루하루. '너 내가 왜 요리를 좋아하는지 알아? 달걀 노른자와 초콜릿 설탕과 우유를 넣으면 그게 걸쭉 해진다는걸 알고 있다는게 좋아'. 어쩌면 그것이 신께서 음식에 부여한 의무일지도 모르겠다. 하루 두세번 죽을때까지 꼬박꼬박 먹어야 하는 음식인데 매일매일 감자와 양파를 자르고 볶고 지지면서 마치 시험을 보듯 입에 담지도 못할 맛없는 음식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어야한다고 생각해봐라. 인간이라면 최소한 요리를 하고 음식을 먹을때만큼은 아무 조건없이 행복 할 권리가 있다.


요리를 하고 블로그를 작성하면서 시행착오를 겪는 줄리.어떤면에서 줄리는 줄리아보다 훨씬 똑똑하고 목표지향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줄리아의 욕망은 줄리의 그것보다 훨씬 더 맹목적이었고 순수했었던것 같다.


구운 생선은 나도 정말 좋아하는데 냉동 생선을 해동 시켜놨으니 레시피는 모르지만 비슷한 생김새로라도 구워봐야겠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에 나온 음식중에 가장 맛있어 보였다. 어쩌면 그들이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맛본 이 생선 한마리가 줄리아의 요리 본능을 자극했었는지도.


실제 줄리아 차일드가 쓴 이 책을 지난번에 서점에서 봤는데 두권으로 나뉘어져있는데 다른 한권은 연초록색 커버였던것 같다. 이 책은 나에겐 너무 시시콜콜하게 기술적으로 많이 써있어서 별로였다. 어쩜 그래서 정말 요리를 정석으로 배울려면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내가 그 날 서점갔을때 산 요리책인데 좋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마트의 갖가지 채소들을 어떤식으로 요리해 먹을지를 몰라서 장만했다. 한국이 아니니깐 달래 냉이 씀바귀 이런 채소들을 먹을 일이 없으니 여기서 파는 채소들을 먹어야 하는데 리투아니아 사람들도 양배추를 절이거나 오이나 토마토를 샐러드로 먹는게 아니면 채소를 잘 먹지 않는것 같다. 마트에는 리투아니아 사람들도 잘 안먹는 채소들이 넘쳐나고 게다가 이탈리안 레시피니 더더욱 땡긴다. 눈감고 딱 펴지는 페이지를 하나씩 섭렵해 가고 있는데 괜찮은 시금치 요리들을 알게되서 우선 책을 산 보람이 있다.예를 들면,


각종 치즈와 섞는 이런 시금치 키쉬라던가.


삶은 감자에 베사멜 소스와 치즈를 붓고 삶은 시금치를 섞는 이런 요리도 굿이다. 한국식 시금치 볶음을 해먹기엔 뭔가 적합하지 않아보이는 시금치들이라서 이런 메뉴 너무 좋다. 주말마다 이 요리책을 펴보고 다음주에 해 먹을 음식 두세가지 정도를 정해서 식당에 식자재 주문하면서 추가적으로 집에 필요한 채소를 주문하는데 쏠쏠한 재미가 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인데 잘 차려입은 웨이터가 가져와서 따주는 병속의 와인보다 이렇게 작은 유리병에 담겨져 나오는 와인이 좋더라. 비싼 안주말고 몇 조각씩 수수하게 짤려져 나오는 치즈들도 그렇고. 내가 부엌에 가서 앉아 있지 않으면 와이프 얼굴 보기도 힘들다고 요리에 미친 아내를 향해 농담석인 핀잔을 던지지만 줄리아가 결국 생각해내지 못한 음식에 관한 단어를 마치 사전을 펼쳐 보여주듯 자연스럽게 내뱉는 폴. 상대의 취미와 열정을 인정하고 말 없이 따라가 주는 이런 사람은 우리가 꿈꿔야 할 배우자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우리 자신이 누군가에게 되어주야 할 모습이 아닌가 싶어 뜨끔했다.

근데 남편 역할의 스탠리 투치를 보면서 자꾸 <러블리 본즈 Lovely bones>의 변태아저씨가 생각나서 몰입에 방해가 되었다. 하지만 이 배우는 내가 십년도 더 전에 시사회에서 본 빅나이트의 그 이탈리아 식당 주인이 아니었던가? 처음으로 리조또라는 음식을 알게해준 그 영화.


영화를 보면서 사실 내 아내의 모든 것 이 계속 생각나서 웃겼다. '줄리아 긍정씨'라고 불려도 손색없을정도로 모두에게 밝음과 경쾌한 기운을 주는 줄리아와 불만과 독설과 짜증으로 일관하는 정인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맛있는 음식에 목숨을 건다는 공통점이 있다. 줄리아 차일드는 남편 폴 차일드가 죽고나서도 혼자 십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결국 줄리의 블로그는 인기 블로그로 자리매김하고 그녀의 이야기는 책으로 만들어지고 그 책은 또 이렇게 영화화되었다.


줄리아 차일드는 결국 자기 이름을 내세운 요리 책을 만든다. 그리고 남편은 저렇게 옆에서 진심으로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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