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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사이드웨이 sideways> 알렉산더 페인 (2004)

 

 

<사이드웨이 sideways>

 

세상에는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와인을 좋아하려는 사람이 많은게 확실하다.

와인이라는 녀석 자체가 그런 느낌을 준다.

마치 이유없이 그냥 친해지고 싶은 그런 친구. '나 걔랑 되게 친해'라고 자랑하고 싶어지는 친구. 

입어서 예쁜 옷도 아니고 먹어서 맛있는 음식도 아니지만

맛있게 마실 줄 알고 녀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 할 수 있을때 우리의 존재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믿게 하는 녀석.

특별히 와인을 좋아하는것은 아니지만 와인을 마실 기회는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비싼 돈 주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와인들이 분명히 있고 세일기간이라도 겹치면 비싸다 싶던 와인도 맛 볼 기회가 있다.

차이는 모르겠다. 정말 비싼 와인을 마셔본 적이 없으니

 마셔보고 '정말 차원이 다른 맛이군'이라고 실감하지 않는 이상

오래된 와인이 항상 비싸고 맛있다는데에 선뜻 동의할 수가 없다.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에서 다이앤 레인이 코르토나에 오래된 빌라를 사고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장면이 있는데,

창고에서 라벨이 전혀 붙여져 있지 않은 먼지 쌓인 수십병의 빈 와인병을 발견하는 장면이 있다.

그냥 뭐랄까 비싼 와인에 목매고 코르크 마개를 훈장처럼 수집하는 모습들에 코웃음치게 하는 장면이랄까.

2006년산 와인이 우연히 눈에 띄어서 한 병 샀는데 와인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2006년 산 와인을 사보기로 했다.

어쩌면 우리 두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있는 해일지도 모르니깐.

시간이 흐를 수록 우리의 2006년산 와인은 구하기도 힘들어질거고 비싸질거다.

모르긴해도 나도 언젠가는 부쩍 비싸진 2006년산 와인을 돈아까운줄 모르고 사려고 들지 모른다.

오래되고 비싼 와인이 맛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내 추억과 동갑내기 녀석이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와인병에 새겨진 네자리숫자에 시선이 꽂힌 사람들은 마트 한구석에서 자신의 옛추억을 떠올리는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라면 오래된 와인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해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

이 2006년산 와인을 쳐다보고 있으니  문득 다시보고 싶어진 영화가 있다.

알렌산더 페인의 <sideways>

 

 

내가 산드라 오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영화인

<투스카니의 태양>에도 그녀가 출연했기 때문이다.

연애 상대가 결혼을 앞둔 남자인것을 알고 헬맷으로 코가 부셔질때까지 두들켜 패는 사이드웨이의 스테파니나

동성연인에게 차이고 절망상태에서 임신한 몸을 이끌고 투스카니로 날아오는 패티의 생명력은 뭔가 닮은구석이 있다.

 

계속 저장해놓고 생각날때마다 꺼내보고 싶은 웰메이드 영화이다.

와인을 좋아하고 좋아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가이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영화일테고

그들이 쏟아내는 찬사와 온갖 메타포들이 비단 와인에만 국한된것이 아니기에 또 의미있다.

이것은 우리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와인잔속에서 부딪쳐 흘러내리며 수만가지의 색다른 질감과 빛깔을 뿜어내는 와인들처럼

인생에는 때가 되면 잊어야하는 슬픈 감정이 있고 한번도 느껴본적없는 희열의 순간이 있고 분노도 있고 실망과 절망도 있다. 

태어나고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고 다시 사라지는 그런 별 같은 우리의 감정말이다.

 

 

와인의 맛에도 남성적인 맛이있고 여성적인 맛이있단다.

커피에도 시큼하고 달고 쓰고 탄맛이 공존하는것처럼.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전투적인 포도들이 있고 아무데서나 막 자라지 않고 낯을 가리는 포도들도 있댄다.

이혼을 한 남자와 결혼을 하려는 남자가 있고

원하는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아는 짐승같은 남자가 있고 알면서도 모르는척 하는 능글맞은 남자가 있다.

결혼을 앞 둔 한남자의 머릿속은 여자들과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차있고

소설가라는 이상과 중학교 영어교사라는 현실사이에서 절망하는 이혼남은 

전부인의 결혼소식과 출판될지 않을지 모를 자신의 소설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지경.

한가득의 와인과 한상자의 원고를 싣고 두 남자는 부랴부랴 여행을 떠난다.

 마일즈의 엄마집에서 두 남자는 마치 숙성이 덜 된 신생와인처럼 덜 자라서 미숙한 소년의 행동을 보여준다.

여자와 자는데에만 혈안이 된 폴의 망할 욕정은 사람들이 시음 후에 쏟아부어버리는 항아리 속 와인같다.

'나는 영화배우고 난 내 육감과 기분에 따라서 행동해.도대체 넌 왜 나한테 그 육감을 모른채하라는거야.!'

넌 와인이랑 책을 그렇게 잘 알면서 도대체 왜 내 욕정은 이해하려 들지 않는거냐!'

출판이 무산된 사실을 안 무기력한 마일즈는 그 와인을 항아리채 들이켜마신다.

'난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휴지에 묻은 똥자국같은 존재라고!'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존재의 이유로 직시하고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폴과

진정 원하는것과 현실사이의 괴리감을 감추고 와인에만 몰두하는 마일즈는 너무 다른 두 사람이다,

스테파니와 마야가 다른것처럼. 피노와 카베르네가 다른것처럼.

 

 

 

'이룬게 하나도 없어'

실패한 결혼과 무산된 출판. 과거에 대한 미련으로 새롭게 다가오는 사랑의 감정에도 솔직해 질 수 없는 마일즈.

그냥 와인 저장고에 가지런히 놓인 와인들처럼 쌓여가는 먼지와 함께 조용히 늙어가면 안되는것일까.

하긴 포도송이도 와인으로 탄생되어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데

좀더 쓸모있는 존재로 남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헛된것이라고 말하는것도 몹쓸짓이다.

 

와인에 대해 마일즈와 마야가 대화를 나누는 이 장면은 아마 많은 이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피노 와인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기술적으로 술술 서술해내는 마일즈와

와인을 재배하고 세상을 떠나간 옛 사람들과 그 해의 햇살과 흘러내린 비의 역사를 고이 간직한 와인의 생명력과

숙성되고 변하고 사라지는 와인의 진화를 서정적으로 찬미하는 마야.

마치 세상의 와인들이 수천가지의 다른 방식과 이론으로 수십만의 다른 사람들에 의해 길러지듯

마일즈와 마야는 상대의 사고방식과 인생관에 조금씩 매료된다. 

 

 

 

나와 함께 있었을때 행복하지 않았던 사람의 행복을 바라봐야하는것처럼 가슴아픈것이 있을까.

폴의 결혼식이 끝나고 전부인의 임신사실까지 알아버린 위.기.의 마일즈는 피로연에도 가지 않고 집으로 부랴부랴 달려와

결혼 10주년을 기다리며 고이 모셔둔 61년산 와인을 망설임없이 꺼내든다.

거의 톰이 갈라진 벽틈으로 숨어들어간 제리를 찾을때의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마치 차속에서 와인병을 꺼내들고 산기슭을 달리며 분노의 와인을 들이킬때처럼, 항아리째 와인을 퍼부울때처럼

절망의 순간에서 들이키는 와인은 우아하게 음미하고 찬미하는 와인보다는 훨씬 덜 가식적이다.

가장 솔직할때도 가장 솔직하지 않을때도 공교롭게도 마일즈는 와인을 마신다.

 

 

결국은 햄버거가게에서 콜라잔에 몰래몰래 부어 61년산 와인을 전부 마셔버리는 마일즈.

실패한 결혼과 과거에 대한 미련처럼 특별한 날과 특별한 사람을 위한 의미부여와 함께

창고에 틀어박혀 있던 와인은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다른 의미로 사라진다.

  와인 병마개를 따는 그 날이 바로 의미있는 날이 될거라는 마야의 말처럼.

집으로 돌아온 마일즈는 자동응답기를 통해 마야의 목소리를 듣는다.

 

 

마일즈가 마야가 있는 솔방을 향하는 길로 우회전을 하는것으로 영화는 우리에게 행복한 결말을 상상하라는 주문을 내린다.

하지만 아무렴 어때. 우리는 결과에 초연해져야 하는것이 아닐까.

 

영화 <봄날은 간다>의 대사가 생각났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그것은 마일즈의 생각이고 스테파니의 생각이다.

 

마야가 예찬한 와인의 생명력을 우리를 둘러싼 수만가지 감정의 생명력에 견주어 본다면

우리는 변하는 사랑과 사람과 인생관과 끊임없이 화해할 필요가 있는것 같다.

와인은 어찌보면 코르크마개에 막혀 썩어가는것이 아닐까.

곰팡이 핀 치즈처럼 공기중의 수분과 열과 시간의 흐름속에서 그들은 부패해간다.

우리가 변해버린 그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듯 슬픔도 좌절도 그져 감내해야하는것이 인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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