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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스윙걸즈> 시노부 야구치 (2004)

 

 

<스윙걸즈>

 

내 생각에는 재즈도 와인이랑 비슷한 녀석인것 같다.

어떤것을 재즈라 부를 수 있는지 어떤 와인이 좋은 와인인지에 대한 명확한 해석과 함께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는 놈들.

'재즈입문'이라는 책이라도 사보지 않으면 왠지 잘못된 재즈의 길에라도 들어설것 같은 걱정을 하게 만들고

그렇게 청운의 꿈을 안고 입문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애드립, 임프로비제이션이라는 놈에 발목을 잡힌다.

'그건 배운다고 되는게 아니야'라는 가장 절망적이고 무서운 충고와 함께.

흔히들 재즈는 정해진 악보에 따라 연주하는 클래식과는 다르다고들 한다.

하지만 클래식을 연주하는데 있어서도 즉흥적인 창의력은 요구되는 법.

예를 들면 코엔형제의 <그 남자 거기 없었다>의 애드 크레인 (빌리 밥 손튼).

'항상 마지막 열쇠를 돌리지 않아서 내 인생이 이모양 이꼴인건가' 라고 자조하며

결국은 아내의 정부를 살해하고마는 꼬일대로 꼬여가는 그의 인생에 유일한 안식처로 자리잡는 스칼렛 요한슨의 피아노 연주.  

그녀의 재능을 숨겨둘 수 없다는 판단에 음악학교인지 피아노 레슨실인가로 데려가는데

선생님으로부터 '이 여자아이는 피아노를 그냥 '틱 탁'하고 두드릴줄 만 아네요' 라는 혹평을 듣는다.

한마디로 '이 아이는 아무런 예술적 재능도 창의력도 없이 그냥 악보만 볼 줄 아네요.'라는 소린데.

그렇다면 애드 크레인이 얻은 영감과 평안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걸까.

평범한 연주에 감동받은 애드 크레인의 음악적 식견과 취향을 탓해야하는건가.

그럼 뭐 <북촌방향>에서 유준상이 연주하는 쇼팽의 녹턴은 쓰레기인가?

클래식은 클래식대로 재즈는 재즈대로 우리는 느끼는 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는것같다.

느끼는 대로 연주하라지만 어떤식으로 느껴야하는지도 동시에 강요하는것은 자가당착이란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너무나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는 나는 어쩌면 2015 년 바르샤바의 쇼팽콩쿠르에 가서 도시락 폭탄이라도 던져야 할지 모르겠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해. 스윙을 연주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자' 

스윙뿐만이 아니다. 하나의 현상을 이해하는데에는 항상 두 종류의 서로 다른 사람이 있다.

발굴되는 재능과 육성되는 인재.

스스로 원하는 자와 원하라고 강요받는 자.

꿈꾸는 자와 이미 모든것을 가진 자.

잘나지 못하다고 느끼는 자와 잘났다고 느끼는 자.

그것은 무엇이 더 좋고 나쁜지 판단할 수 있는 종류는 아니다.

자신이 어디에 속해있는지 아는 사람은 행복하고 그렇지 않은 자는 한없이 무료해진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때 정말 모든 학생들이 싫어하고 사이코라고 여기는 그런 선생님이 있었는데.

한번은 그 선생님이 내 옆자리로 오더니 내 다이어리 표지였던 '빅 레보우스키'의 장면을 따라했던적이 있다.

블랙앤 화이트로 쫙 빼입고 군무를 추는 여자들이 다리를 벌리고 투명의자 자세로 엉거주춤 서있는 그 우스운 장면 말이다.

난 왠지 그 선생님이 알고보면 굉장히 멋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항상 했었다.

이제와서 생각하지만 그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당신은 누구세요' 라는 질문에 가장 목마른 존재가 선생님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선생님들 자신도 수업시간에 자신의 얘기를 하는것에 인색한것 같다.

 단 한명의 관람객이 있어도 희열을 느끼며 연기를 한다는 연극배우들 처럼.

떠들고 도시락 까먹고 엎드려 자고 전화기 만지작 거리는 학생들 사이에서 자기 얘기를 경청해 줄 한명의 학생과 함께

자신의 꿈을 얘기하는 그런 선생님이 나의 학창시절엔 한명도 없었다.

 

푹푹 찌는 더위에 나머지 공부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수학 보충 수업을 하는 이 선생님도 정말 쓸쓸하게 수업을 한다.

'나도 수학을 미친듯이 좋아하는것은 아니야. 얘들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너희들은 관심이나 있니. 나도 덥다 얘들아.'

선생님도 수업을 하는게 아니다. 칠판에 상대로 넋두리를 하는거지.

반면 밴드반 여자 선생님은 하와이만 꿈꾼다.

살다보면 주변에는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사람들로 수두룩하다. 

반면에 내가 지금 하고 있는일이 누군가가 꿈꾸는 일이라는것을 깨닫는것은 쉽지 않다. 

 

 

상한 도시락을 먹고 식중독에 걸린 밴드부원들을 대신해서 우연히 급조되는 빅밴드.

합주를 통해 생각지도 못한 곳에 흥미를 느끼게 되고 자신은 물론 서로의 색다른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왠지 이미 정해진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게 사실인데

가끔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해서 어쩔 수 없이 전혀 다른 고민과 환경속에서 살아가는 상상을 하곤한다.

당신은 당신이 잘할 수 있는것을 정말 다 해보았는가?

나는?

 

 

와 이 우에노 주리라는 어린배우는 표정도 그렇고 능청스럽게 연기를 참 잘한다 했는데.

이 영화가 벌써 거의 8년전 영화란것을 알게되었다.

노다메 칸타빌레도 본적이 없는데 대표작인것도 이제 알았고.

아무튼 빨리 조제 호랑이 그 영화를 찾아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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