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뽕에 온 한국이 휘청거릴무렵 보란듯이 국제영화제빨을 세우며 나타난 영화. 비록 굳이 그때 바이러스가 세상을 휘저어놓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조명을 못받아 안타깝군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 오히려 그래서 너무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망작이라고 말하고 싶다가도 또 되려 미안하고 안타깝고 복잡한 마음이 드는 아쉬운 영화이다.
마치 혜성처럼 나타나서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선수가 다음 올림픽 예선 1차전에서 탈락할때의 느낌처럼 허무했다. 그 금메달은 역시 우연이었어 라고 말하는 무심한 사람들에게 분명 무슨 사정이 있을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은 기분이다.
감독의 전작인 파수꾼 (https://ashland11.com/69) 은 정말 멋진 영화였는데. 1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흘러 영화 속에서 교복을 입고 있던 소년들이 수트를 입고 있는 영화제 풍경을 봤을땐 뭔가 기특한 기분도 들었다. 당시의 배우들은 유명해졌다. 그들 대부분이 모여 다시 영화를 찍는다고 했을때엔 감독의 마이너 감성이 잘 살아난 파수꾼의 뒤를 이을 영화가 만들어졌기를 기대했다. 김기덕의 악어와 류승완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양익준의 똥파리를 보고 그들의 다음 작품을 기대했던 것처럼.
이 영화의 제작 내막에 대해서는 모른다. 하지만 재능있던 감독이 원했던건 왠지 이런게 아니었을거란 느낌이 들었다. 마치 꿀떨어지는 눈빛으로 감독만 바라보던 제작사가 중간에 부도가 나서 급히 새 제작사를 찾은 것처럼. 마치 뭘 잘 모르는 투자자들이 감내놔라 배내놔라 했던것처럼. 공각기동대처럼 약간 어둡고 절망적인 시대로 가요. 황해같은 분위기도 좀 집어넣어야 하지 않을까요. 친구들 이야기니깐 친구 오마쥬하는셈치고 이번 기회에 진짜 주인공을 하와이로 보내버립시다. 마치 지난 10년간의 한국의 모든 조폭 범죄 영화들의 결정판을 만들어보자라는 포부를 바탕으로 한 갖가지 생각들을 식당 주인이 곧 들이닥칠 손님들을 생각하며 부랴부랴 다 때려넣고 끓인 부대찌개처럼. 이것이 과연 파수꾼을 만든 감독의 의도대로 그의 역량으로 만들어 진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파수꾼이 뿜어내던 그 기분 나쁜 긴장감은 이 영화에서도 여전했다. 청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갈피를 못잡고 방황하는 그 때 그 소년들의 삶을 지켜보는 것은 또 괴로울 정도로 먹먹했다. 이것은 어쩌면 파수꾼에서 기태를 지켜주지 못한 그의 친구들과 그의 아버지가 뒤늦게나마 한없이 무심했고 성숙하지 못했던 그들이 잃었던 것을 기억해내고 기태에게 용서를 빌고 그를 살려내고자 했던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역설적으로 결국 기태만이 홀로 남는다. 제일 강한 척 했지만 남모를 결핍 속에서 외롭게 죽어갔던 그를 이번엔 홀로 남겨두지 않는다. 어처구니없이 인위적이고 농담같았던 하와이씬은 이미 죽고 없는 기태가 결국 천국에서 제 모든 친구들을 기다렸다는 느낌으로 그냥 받아들였다. 결국 파수꾼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하면 이런 영화를 만들어 준것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국 이 영화도 기억할거다.
특히 10년이 지나서도 그대로인듯한 이제훈과 박정민의 얼굴과 표정을 보고 있자니 이제 꽤 그럴듯한 상업영화를 찍는 그들이 어릴 적 온 마음을 담아 찍어냈던 독립 영화를 마음껏 추억하며 연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더 아련했다. 특히 백희와 의뭉스런 눈빛을 주고받다 기태에게 끌려갔던 배제기라는 배우도 참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에도 박정민에게 빨리 튀라는 의미있는 눈짓을 하며 짧게 등장해서 반가웠다. 이 배우는 킹덤에서도 진짜 리얼하게 사람을 뜯어먹는 좀비 연기를 보여줬는데 시간이 좀 더 지나서 지명도가 더 높아지면 아마 파수꾼은 대배우들이 소싯적에 출연한 희귀작으로 남겠지. 물론 순전히 그랬으면 하는 내 생각.
영화의 엔딩곡으로 쓰여진 론이라는 가수가 부른 프라이머리의 '스쳐가'. 3월부터 6월까지 내 유튜브 조회수를 뽑아본다면 아마 톱을 차지할 노래. 그냥 우연히 듣게 된거라도 이 노래를 이만큼 좋아할 수 있었을까. 이 영화의 엔딩을 매우 여러번 보았다. 아 이 영화는 정말 이렇게 끝나는 건가 아쉽고 쓸쓸한 마음으로 올라가는 크레딧을 쳐다보는 와중에 바로 이어지는 이 노래이 시작이 너무 좋았기때문이다. 특정 앨범을 듣고 또 들어 본 사람들이라면 알거다. 어떤 노래가 너무 좋으면 그냥 그 노래를 바로 재생시켜서 들을수도 있지만 그 이전 수록곡이 끝난 후 귓속에 흐르는 정적과 그 노래가 시작되는 그 찰나의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이미 가슴을 후벼파고드는 오묘한 감동을 말이다. 그 인트로에 그 소년들이 살아낸 짧고 어둡고 갑갑했던 삶이 전부 녹아있다. 이곡이 영화를 살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래를 들을때마다 여전히 그들의 이야기와 표정이 휙휙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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