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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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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01 목적지를 정하고 머릿속으로 나만의 여행을 상상하기 시작하면서 여행은 이미 시작된다. 집에서 식당까지 가는 동안에는 크고작은 대여섯개의 횡단보도가 있는데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멈춰서있는 짧은 시간들이나 마트 계산대 앞, 지루한 표정으로 하얀 센트를 세는 사람들 틈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 (리투아니아의 1센트 열개를 세면 40원정도로 그다지 화폐가치가 없는 이 센트를 보통은 '하얀색'이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등등등의 짧고 짧은 시간들은 상상을 위한 최적화된 시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잡생각말고는 그다지 생산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짜투리시간에서도 쪼개지고 또 쪼개지고 남은 이 찰나의 순간들을 여행이라는 어느 미래의 한 순간에 투자할 수 있다는것은 즐거운 일이다. 지나고보면 여행을 준비하면서 들었던 음..
4월의 빌니우스 하루하루 비슷하게 굴러가는 듯한 일상이지만 항상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진다. 굉장히 놀랍거나 전혀 새로운 일이라고는 할 수 없는것들 이지만 일주일이나 한 달 전에 내가 주로 어떤 생각들을 하고 지냈는지를 생각하고 그때 나름 예측하고 계획했던 현재와 실제로 진행되고있는 현재를 비교해보면 일주일 후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을 생각과 감상들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뭔가 정신없던 삼사월이었다. 새롭고도 갑작스럽게 형성된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 형태의 인간 관계와 예절과 법칙들. 잠시 내버려 둔 이곳엔 이상한 광고글 들이 잡초처럼 자라나 있고 말이다. 요즘의 광고성 댓글은 심지어 서정적이기까지 하던데 지우지 말고 남겨둘까 하다가 자꾸 까먹고 다시 읽게 되어서 시간을 내서 다 지워버렸다. 집 근처에 식당용 그릇..
Italy 06_코르토나의 종소리 La Campanella 매번 여행을 가기 전에 결론이 뻔한 고민에 휩싸인다. '카메라를 챙겨야 할까?' 나는 조금은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여행이 좋다. 솔직하게 말하면 여행예산과 각종 기회비용을 따지다보면 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런 여행을 하게 되는것이다. 예를 들어서 픽업을 나오는 호텔을 예약하거나 시내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경우가 적으니 보통 제발로 숙소를 찾아다니거나 왠만한 거리는 걸어다닐때가 많고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기면 추가비용을 내야하니 기차시간까지 짐을 지닌채로 남은 시간 도시를 둘러본다거나 하니 여행동안 짐과 함께 하는 시간은 택시 할증처럼 늘어난다. 그렇다고 다리미며 클럽용 구두까지 챙겨넣어 마치 등에 냉장고를 업은듯한 모습으로 여행하던 유럽아이들처럼 짐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것도 아니다. 그래서 카메라 같..
Italy 05_코르토나의 길 Via di cortona 코르토나로 가는 길. La strada per cortona. La strada는 아시다시피 펠리니의 영화 '길'의 원제에서 얍삽 인용하였고 문장을 넣고 검색 해본 결과 코르토나'로' 가기 위한 전치사는 per 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 strada 가 고속도로나 길처럼 특정 방향을 가리켜 삶에 대한 목적의식을 불러일으키며 동적이고 광활한 느낌을 준다면 우리가 두시간여에 걸쳐 밟고 올라온 콘크리트 언덕은 분명 strada 였던것 같다. 그리고 코르토나 입성을 목전에 둔 우리를 초로에 접어든 성당으로, 끈적한 압착 올리브 향으로 가득한 식당으로, 피아자의 벼룩시장으로 인도해 줄 꼬불꼬불한 골목길은 via. 이탈리아어에는 독특한 생동감과 운율이 있고 적당한 강약을 넣어 발음해보면 노래를 부르는것 같다. 제목..
Italy 04_코르토나로 가는 길 La strada per Cortona 이탈리아 여행의 여정을 돌이켜본다. 피사(pisa)와 루카(lucca)까지는 피렌체(firenze)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왔고 피렌체를 떠나 아레쪼(arezzo)와 코르토나를 방문했지만 결국 다시 피렌체로 돌아와 베네치아행 기차를 탔었던듯 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다고 하지만 에트루리아인이 기반을 두었던 중부 이탈리아에서 그러니깐 투스카니의 모든길은 피렌체로 통하는듯 했다. 투스카니(tuscany)는 이탈리아어 토스카나(toscana)의 영어명칭이고 피렌체도 영어명칭은 플로렌스(florence)인데 토스카나는 무슨 가죽의류명칭 느낌이 살짝들고 플로렌스는 왠지 프랑스 지명같은데 아마 프로방스때문인가? 영어로 투스카니 발음을 들으면 항상 에서 산드라 오가 외치던 그 '터스까니'가 떠오른다. 다이앤레인이 여행..
<투스카니의 태양 Under the tuscan sun> 오드리 웰스 (2003) 언제나처럼 나는 주제와는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들로 이 기나긴 일기를 시작하려한다. 블로그의 유입로그를 들춰보면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는 날들이 가끔씩 있다. 지난 주말 같은 경우에는 유입 키워드의 대부분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였다. 알고보니 작가 김영하가 공중파 토크쇼에 출연한 것. 전세계 20여개국중 리투아니아어로도 번역된 그의 소설이 있으니 하루키같은 글로벌 작가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농후한 한국의 작가는 정말 김영하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인상적이었던것은 키보드에 손을 올리면 마치 뇌가 손가락 끝에 달린것처럼 글이 술술 써진다는 그의 말이었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판타지와 현실로부터 얻은 영감들을 논리적으로 연결해서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
나의 카페 06_일요일 아침의 카푸치노 목요일 저녁은 내일이 금요일이니깐 기분이 좋고 금요일 저녁은 다음 날 늦잠을 잘 수 있으니깐 좋은것.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을 기다리게 하는 것 중 또 다른 하나가 바로 카푸치노이다. 출근 전의 뜨거운 음료는 일상이지만 보통은 알갱이 커피에 물을 붓거나 홍차를 끓여 우유를 부어먹는 정도. 그다지 시간에 쫓기는 아침도 아니건만 편리함을 길들여진 무언의 정신적 긴장감같은게 있다. 잔뜩 게으름을 피우며 12시가 넘어서 느릿느릿 일어나면서도 침대까지 커피를 배달해 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싶다. 그렇게 침대에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좀 읽다가 다시 잠들 수 있다면 12시가 아니라 아침 8시에도 일어날 수 있을텐데. 지난번에 펠리니커피에 딸려 들어온 1인용 모카포트덕을 톡톡이 보고 있다. 모카포트를 자주 사용하는것 ..
Italy 03_Cortona, 이탈리아인의 모카포트 나이가 들면 정말 코르토나같은 도시에서 한적하게 살고싶다. 워낙에 경사가 심해서 그 지형에 익숙하지 않은 외지인이 살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만 내 정서에 맞는 도시를 하나 꼽으라면 베네치아도 피렌체도 아닌 코르토나를 선택할것 같다. 코르토나의 밤길을 걸으면서 까치발을 들고 훔쳐보았던 어떤 부엌. 인테리어 자료나 영화 속 주방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모카포트를 보고 있으면 왠지 사용하지 말고 깨끗하게 진열해놔야하는 장식품처럼 느껴져서 스스로 사용을 하면서도 가끔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중적인 느낌을 받곤 했는데 익숙한 창살사이 꽃무늬 커튼이 쳐진 실제 누군가의 부엌 한켠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모카포트들을 보고있으니 이들도 수많은 부엌살림중의 하나일 뿐인데하며 아차 했다. 2인용 4인용 6인용쯤 되려나? 나에게도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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