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2012. 12. 6. 06:59

 

 

<내 아내의 모든것>

 

꼭 요리를 주제로 한 영화가 아니더라도 이런 영화는 왠지 음식영화라는 장르로 분류해두고 싶다.

음식 셋팅에서부터 식기며 요리도구, 부엌 인테리어까지 구석구석 신경써서 촬영한게 티나는 그런 영화들말이다.

음식을 대하는 주인공들의 자세는 또 얼마나 야무지고 아기자기한지.  

 너무 금새스쳐지나가서  몇번이고 정지시켜놓고 천천히 살펴보고  싶었던 장면들이 많이 있었다.

어쩌면 요리장면이나 식사장면을 더 많이 첨가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극의 흐름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의도적으로 배재한것은 아닐까.

깡마른 몸에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정인은 그래도 요리를 할때만큼은 행복해보인다.

그렇게 완벽을 추구하고 까다로운 그이기에 그가 만드는 음식도 상대적으로 맛있어 보였던것은 아닐까.

하지만 정인의 인생은 매우 권태롭고 위태로워 보인다.

행복의 본질은 변한다.

그 변화를 감지한 사람들은 권태를 느낀다.

하지만 권태를 불행이라는 단어와 동일시할 수 있을까.

 

 

아내를 유혹해 줄 전설의 카사노바를 고용한다는것은 지극히 극적인 발상이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나름 현실적이다.

물론 웃자고 한 얘기들이었겠지만 몇몇 토크쇼에서 이선균 스스로 불평하듯 털어놓은 그의 결혼생활을 상기시키니

영화속의 그가 연기한 캐릭터에 좀 더 쉽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솔직하게 자기 인생을 얘기할 수 있는것도 생각해보면 배우에게는 하나의 전략이 될 수도 있겠구나.

왠지 결혼이나 출산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임수정이기에 정인의 캐릭터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이 영화와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로 임수정은 당당히 서른배우의 반열에 들어선것 같다.

그가 나오미 왓츠나 샤를롯 갱스부르 같은 느낌의 배우로 늙어갔으면 좋겠다. 

 

달콤하고 자유분방한 연애끝에 결혼에 골인. 저기 서울 외곽의 신도시 어디쯤일까?

별로 한국 같아 보이지 않는 동네에 알록달록 예쁘게 줄지어선 집들 사이로.

'7년 후'라는 자막이 뜬다,

아. 너무나 불편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결혼 후 별다른 직업없이 건축하는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괜찮은 집에서 괜찮은 옷입고 그럭저럭 괜찮게 살아가는 여자.

하기싫은거 많아보이고 고집있어 보이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욕구불만에 약간의 피해의식에 열등감마저 보인다.

'우리 다시 아기를 가져보도록 해볼까?'라는 정인의 메세지는

임신과 출산이 이 두사람에게 어쩌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뉘앙스를 주지만.

솔직하게 까놓고 얘기해서 결혼을 해서 7년동안 아이없이 둘이서 살면

저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것은 필연적이라는 암묵적인 결론에는 동의할 수 없기때문에 불편하다.

 불행을 합리화시키고 일반화시키는데있어서 인간은 선수다.

 

 

저렇게 볕이 잘드는집인데 아침부터 전등은 뭐하러 켜놓은거냐.

남자는 처음 봤을때의 여자 모습을 항상 기억하며 여자가 항상 처음과 같기를 바라고

여자는 남자가 처음처럼 만족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에 항상 변화를 꾀한다고 누가 그러더라.

뭐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라는 책이라도 읽어야 될것같은 분위기다.

 

 

코발트색 타일에 개나리색 부엌가구.

아침볕이 저렇게 잘드는 예쁜 공간에 정말 완전 모르는 사이처럼 남겨진 두사람.

둘사이 백만광년사이의 거리를 가득메운것은 진공청소기 소리와 담배연기뿐.

우울하다.

이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려면 어느정도로 상대가 싫어야할까.

어느 정도의 실수와 잘못이 용인될 수 없는걸까.

변하는 상대보다 더 낯설은것은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상대가 싫어지는 자신이 아닐까.

살아서 단 한 순간이라도 이 사람을 증오해야할 순간이 있을것이라고 언제 상상이라도 했었을까.

나없이 한번 살면서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실감해봐 라는 저주 같은건가.

 

 

이 두사람의 욕망은 확실한 불일치다.

여자는 여전히 요리로만 소통하려하고 

남자는 이미 음식으로 그녀를 이해하는 방법을 까먹었다.

정인의 얼굴에서 영화 <삼공일 삼공이>의 방은진이 보인다.

 

 

남편이 출근하고 혼자 남겨진 여자.

설거지는 항상 자기만 하는것 같고 그걸 누구한테 떠넘기기엔 명분이 없다.

똑같은 일상의 반복. 집에 볕도 잘들겠다 뭔가 자기를 위한 삶을 살 여력도 되는데 더이상  불평하지 말자.

아이를 낳아 키우고 일하고 남편 뒷바라지하고 그 후에 여자들이 느끼는 공허감.

가장으로써 항상 일만하고 나중에 뒤돌아서서 내 인생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남편이 느끼는 공허감.

인간 자체가 그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것이니,

아이만 키우다가 자신을 잃었다느니

아이라도 없으면 삶은 무의미하다느니  

아무튼 이런식으로 본질을 피해가려 하지 말자.

 

 

감히 단 한번도 존재해본적 없는 캐릭터라고 해도 좋을만한 류승룡 캐릭터.

왜냐하면 이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때문이다.

이것은 정말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로망일뿐이고 누군가의 뮤즈일뿐이다.

 뮤즈는 매력적이다. 왠지 다 주고 나면 새로운 인생을 선물받을것 같은 환상을 준다. 

하지만 사랑에는 빠지지 말자.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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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12. 12. 5. 05:39

 

 

<양과자점 코안도르>

 

<호노카아 보이>를 보고나서 일부러 이 영화를 찾아보았다.

아오이 유우의 생김새는 그냥 예쁘거나 청순하다는 단어로 설명해버리기에는 좀 그렇고 뭐랄까. 그냥 너무 궁금한 얼굴이랄까. 

마치 솜방망이로 달걀흰자를 고르게 발라놓은듯한 맨질맨질한 그녀의 얼굴은 

 그냥 계속 쳐다보면서 관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한다.

이 배우는 몇살이지? 과연 제대로 예쁘게 늙어갈 수 있을까?

부정적인 의미로든 긍정적인 의미로든 과연 어른이 될 수 있기는 한 배우인지 모르겠다.

 

뜬금없이 <주노명 베이커리>란 영화는 어떤 영화였을지 급 궁금해진다.

생각해보니 많은 영화들을 특별한 이유없이 무시하고 흘려보낸것 같다.

 

영화가 재미없으면 눈이라도 즐거울 수 있겠다 싶어 기대했는데 의외의 잔 재미도  없었다.

등장인물 캐릭터도 너무 정형화되어있고

대충 써놓은 시나리오에 여자 배우만 어렵게 캐스팅해놓고 후다닥 찍은 영화랄까.

시작은 번지르하게 했고 재밌어질 계기도 있었는데 굉장히 급하게 끝나버린다.

 

 

파티쉐의 꿈을 안고 시골에서 상경한 나츠메

(정확하게 말하면 먼저 상경한 남자친구를 찾을 목적이다)

남자친구가 취직해 있는 코안도르라는 제과점에 찾아오는데

있어야 할 남자친구는 없고 오갈데없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에 에라 모르겠다 사장한테 우겨서 취직을 한다.

카리스마라고는 없는 이 제과점 사장은 빵 만드는 장면보다는 계산기 두드리는 장면이 훨씬 많다.

<파스타>의 이성민같은 캐릭터가 이선균의 탈을 쓰고 연기하는 식이다.

<심야식당>의 주인아저씨도 이 아주머니만큼 이해타산적이진 않았는데.

뭐 최고의 파티쉐라고해서 항상 깐깐하고 완벽주의자일 필요는 없으나 아무리 그래도 사장님은 너무 생활집착형 캐릭터.

팔이 부러져서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황당하게 두달동안 영업을 하지 않겠다는 어명을 내린다.

자기가 일을 안하면 빵맛이 바뀌어서 나중에 손님이 끊긴다나.

 

 

이렇게 잠자리도 바로 제공되고 커피도 마음대로 내려마실 수 있는 향긋한 빵집에 바로 취직이 되다니

초절정스피드 만화영화급 전개다.

사장님은 여전히 장부 정리중.

 

 

쿠키틀에 버터를 바르지 않아 떨어지지 않는 쿠키들.

우유에 담궈서 부셔서 먹으면 너무 맛있겠다.

그나마 이런 장면들이 아기자기하게 현실성있다.

 

 

코안도르의 뒤뜰인데 연희동의 제니스라는 카페와 분위기가 너무 비슷하다.

 

 

그래 차라리 이런 장면이라도 많았으면 보는 재미라도 있었을텐데.

 

 

저 빗자루는 탐난다.

왠지 그냥 걸려있기만 해야할것 같은 빗자루.

케잌 포장하는 자리에 빗자루는 왜 걸어놓은거냐

 

 

코안도르의 케잌 한조각을 먹어보고는 자신의 실력이 턱없이 부족함을 깨닫고

역시나 다음날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마당부터 쓸기 시작하는 나츠메.

고생고생해서 회심의 케잌을 만들어왔는데 없어지는 식재료 탓이나 하는 투자에 인색한 사장님.

현빈닮은 전설의 파티쉐도 싫고

아무튼 난 이 영화 별로.

 

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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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12. 12. 3. 23:44

 

 

<호노카아 보이>속의 정지된 마을

 

리투아니아에 살면서 눈에 무뎌진지 오래이지만 그래도 첫눈은 항상 누구에게나 상징적인가보다.

'오늘 첫눈이 내렸다'라는 평서문을 머릿속에 담고 시작하는 하루.

반쪽짜리 식빵 네 조각을 펴놓고 땅콩잼 한층 딸기잼 한층 땅콩잼 한층을 발라 우유와 먹었다.

여기엔 내가 좋아하는 땅콩잼과 포도잼이 세로로 길게 섞인 그 스트라이프 잼이 없다.

사실 작년에 한국에 갔을때 그 잼을 사오려했지만 막상 서울에서 한번 먹고나니 너무 시시해보였다.

내가 그 잼을 리투아니아까지 배달해 왔을때 느낄 만족감이 그리 가치있어 보이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그 별것아닌 만족감을 충족시키는것은 어떻게 보면 그 물건을 과대평가하는것은 아닐까.

태어난곳에서 떠나와 다른 세상에 정착해서 살아간다는것.

철저한 계획에 의한 이민으로 해외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을것이고.

우연처럼 흘러들어왔다가 돌아갈 기회를 놓친사람들이 있을것이고. 

중요한것은 인생이란것이 칼로 탁하고 토막을내서 1막2막으로 정리할 수 있는 물건은 결코 아니라는것.

어떤 동기들에 일정량의 우연과 필연이 결합되어 인생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런 인생과 그 속의 일상들을 미니멀하게 최소한의 시나리오로 조용하게 풀어가는 영화들이 좋다.

우스운 습관들을 장난꾸러기처럼 의미없이 나열하고 애정을 가지고 사용하는 자기만의 단어가 있는 주인공들.

혼자있는것에 익숙하고  친구가 필요한것같지 않아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

음악으로 치면 yo la tengo나 slowdive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들.

<천국보다 낯선>의 에바나 <반칙왕>의 임대호같은 친구들.

나에게 있어 영화를 보는 행위는 그런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내어서 더 많은 인생의 동기동창을 만들기위함이다.

 

내년이면 이곳에서의 생활도 5년째로 접어든다.

그래서 유독 외국에서의 생활을 그린 영화들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우리나라 영화속에서 그려지는 해외생활이란 아직까지 그저 너무 로맨틱하고 화려하기만하다.

본질을 보여주는데 서툴다고 해야할까.

(지난번에 홍상수의 밤과낮을 끝까지 보지 않은것은 그래서 너무 후회된다. 그의 눈에 비춰진 파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여행을 다니거나 해외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뭔가 특별한 사람이라거나 으례 여유로운 사람일거라는 편견이나 일종의 피해의식같은게 있는걸까.

영화속에서 자연스러운 일상을 접하기란 쉽지않다.

해외생활을  보여주지만 오히려 그 생활에 대한 암묵적인 로망으로 가득차있다고 할까? 

몇몇 일본영화들에서 아주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것을 본다.

그것을 가능케하는 그들의 경제수준은 둘째치고라도

카피와 응용, 자기화와 토착화에 능한 일본 사람들이니 뭐 당연한걸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타문화를 받아들이는 그들의 감성이 우리의 그것보다 세련된것은 아닐까.

 

 

<카모메 식당>의 헬싱키나 <냉정과 열정사이>의 이탈리아.

북유럽스타일과 '로맨스인 유럽'을 기본 골격으로 했다고는 해도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장면와 내러티브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마치 그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처럼.

그게 혹시 해외에서 오래 살아 본 감독이 찍은 영화와 그렇지 않은 감독이 찍은 영화의 차이라면 더이상 할말은 없다.

어쩌면 감독의 로망을 내 로망인척 감정이입하며 봐야하는 영화가 불편하고 싫은건지도.

 

운좋게 보게된 영화 <호노카아 보이>

한국어로는 <하와이언 레시피>로 번역이 되었다고 한다.

하와이에 머물며 소일하는 일본청년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민하고 불평불만많은 여자친구역으로 짤막하게 아오이유우가 출연한다.

극중 등장인물들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가장 효과적인 등장인물이 아니었나 싶다.

별이 반짝이고 달무지개가 뜨는 보석같은 해변으로 장시간을 날아 하와이까지 여행을 오지만

얼굴이 예쁘다 한들 무슨 소용이랴.

그녀의 마음과 표정은 정말 화산처럼 말라 비틀어진 상태이다.

여행객의 대부분은 지겹도록 똑같은 모토로 여행을 떠난다.

화산같은 일상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를 토대로 떠나오지만 결국은 화산만보고 돌아온다.

그 내면의 일상성을 버리지 못하고 저 아오이 유우처럼 불편함과 단조로움만 불평하다 여행을 망치는것.

산이 큰것도 죄고 길이 하나뿐인데 왜 이렇게 길을 헤매냐고 몰아붙이는것도 바로 여행자의 역설이다.

여행후에 여자친구와 헤어진 레오는 다시 하와이로 돌아와 동네영화관 영사실 보조로 살아간다.

 

 

빌니우스에 살다보면 한 나라의 수도라고 하는 이곳에서 느끼는 이 정적이 과연 정당한것일까 라고 스스로에게 묻게된다.

조금 작은 도시로 가면 빌니우스는 상대적으로 대도시같다.

주말을 여름농장에서 보내고 그 조그만 도시로 돌아온 아주머니는 급 피로감을 느낀다고 한다.

나에게는 시골같은 그 도시가 아주머니에게는 문명으로의 귀환같은것인거다.

고요함이란 그렇게도 상대적인것이다.

그 지독한 정적을 레오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허심탄회하게 서술해 나간다.

 

 

심지어는 어딜가도 누구에게도 나란 존재가 필수불가결한 존재는 아니다.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절대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

낯설은 상황들에 자연스럽게 대처해나가는 레오의 담담한 나레이션은

뭐랄까 비이 할머니가 양배추롤에 끼얹던 말갛고 담백한 스톡같이 들렸다고나 할까?

영화속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정지된 컷들.

사용되지 않은채 그저 싸여있는것만 같은 일련의 물건들.

파도치는 바다.

사람들이 염원하는 달무지개.

많은것이 필요한 삶을 사는것은 피곤한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들은 그냥 물건일뿐 그리고 자연일뿐.

 

 

하지만 그러한 정적속에서도 누군가의 일상은 세상과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더이상 팝콘 기계 옆에 앉아서 낮잠을 잘 수 없게된 할아버지와

안마기를 차고 손님을 기다릴 수 없게 된 매표원의 일상이란것이 존재하고 있더라.

 

 

우연히 밀가루 배달을 왔다가 비이 할머니에게서 점심을 대접받는 레오.

매일 인스턴트 라면을 먹는다는 레오의 말에 적적하게 사는 할머니는 매일 점심을 먹으러 오라는 호의를 배푼다.

매일매일 정성스레 차려진 할머니의 점심을 먹고  사진 한장씩을 남기는 레오.

그래도 인스턴트 라면으로 가득한 소포를 받는 기쁨은 그것과는 또 다른 가치이다.

이 폴라로이드 사진들은 너무 슬프게 보인다.

폴라로이드와 비디오카메라는 왠지 다시는 반복할 수 없는 일을 굳이 잡아두려는 미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듯 보여서 싫더라.

 

 

 유일하게 요리과정을 발랄하게 보여주는 이 양배추롤은 리투아니아식 양배추 롤과도 기본적인 레시피는 똑같은것 같다.

어떤 양배추 잎사귀는 마치 배추잎처럼 보이더라.

양배추가 무척 얖고 크고 초록빛이 나는게 훨씬 더 싶게 롤을 만들 수 있게 보인다는것.

근데 마요네즈에 크림까지 끼얹는것은 좀 많이 느끼할것 같고

리투아니아에서는 마요네즈대신 케찹을 넣어서 빨간 국물로 만들어 내는 때도 있다.

사실 일본의 여러음식들이 그렇지만 특히 카레나 돈카츠, 고로케 같은 요리들은 전부 기존의 외국요리를 응용해서 만든것인데

그래서 일본인들에게는 일종의 카레 컴플렉스 같은게 있는것같다.

영화 <텐텐>에서도 그렇지만 항상 카레에 망고잼이나 망고 처트니 같은것을 첨가해야한다는것을 강조한단 말이지.

잼이나 처트니 같은것은 또 얼마나 아시아적이지 않은것인데 말이다.

 

 

하와이에 정착한 일본 이민자들의 고요하지만 외롭고 적적하나 달달한 삶을 보여주는 영화.

평생을 사는 사람들도 한번 볼까말까한 달무지개를 보겠다고 태평양을 건너 오는 사람들.

페넬로페 크루즈에 안달하고 자신의 성적 판타지에 관대한 어느 할아버지의

병상에 누운 부인을 바라보고 앉은 뒷모습에서도

댓가없이 매일매일 진수성찬을 차리지만 질투에 불타 땅콩을 다지는 할머니에게서도

얻어지는 결론은 사람은 결국 다 똑같다는것.

단지 우리가 개개인에게 그들이 그들답기를 항상 강요하는것일뿐.

하지만 그들다워야 한다는것의 정의와 그 강요의 기준과 이유는 타당하지 않을때가 많다.

게다가 우리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가치라는것은 때로는 본질과 너무 동떨어져있지 않은가.

 

 

 

 

 

 

 

 

 

 

 

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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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12. 11. 14. 06:15

 

 

시간도 많은데 <시>라는 제목을 턱하니 써놓고 눈을 감고 추억에 잠겨본다.

마지막 연합고사를 본 세대로써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입학은 대학 입학만큼이나 중요했던 이벤트였나보다.

'38년간'이라는 별로 유용해 보이지 않는 수험서를 남들 다 사니깐 나도 샀고

그래도 남들 다가는 고등학교인데 나도 별 문제없이 가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마음놓고 아무것도 안할만큼 최상위 성적도 아니었으니깐 어느정도의 긴장도 필요했다.

그 당시 명색이 수험생이었던 우리를 흥분시키고 만족시켰던것이라면

비디오 골라보기,피씨통신에서 영화퀴즈풀기따위였던것 같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아무리 회상해보아도 피씨통신 대화방만큼의 기술적인 혁신과 신선함은 경험해보지 못한것 같다.

그렇게 밤새도록 영화퀴즈방에서 영화퀴즈를 내고 풀고

마음에 맞는 사람 몇몇이서 새벽에 수다떨다 다음날에 만나 영화를 보러갔던 영화번개.

그렇게 비가 추적추적오던 어느 겨울 서울극장에서

내가 첫 영화번개를 쳐서 본 영화, 나를 극장에서 처음 울게한 영화가 바로 <초록 물고기>였다.

기나긴 서론은 단지 이 얘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이창동의 첫 영화가 다름아닌 <초록 물고기>이니깐.

 

<박하사탕>과 <오아시스>는 보지 못했다. 작년에<밀양>을 보았고 오늘 <시>를 보았다.

예전에 어느 외국인이 나보고 <시크릿선샤인>을 봤니? 정말 너무 힘든 영화였어 라고 물어봐서

도대체 무슨 영화를 본거야 라고 되물었던 적이있는데.

<밀양>의 영어제목이 시크릿선샤인이었다.

뭐지. 이렇게 한없이 투명하고 예쁘고, 한 치의 미세먼지도 허용할것 같지 않은 이 정제된 영화제목들은?

게다가 <시>라는 영화제목은 마치 그 단어들이 뛰쳐나온 이창동의 사전같은 느낌을 준다.

그토록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어하고 시상을 찾아 헤매고 시의 의미를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더 할 나위없이 아름다운 시적 영감을 줄것같은 그런 단어들로 가득찬 사전.

그런데 감독은 오히려 이 아름다운 명사들을 있는 힘껏 비틀고 쥐어 짜서

우리가 한번도 들어본적도 사용해본적도 없는 전혀 다른 명사로 바꿔버리는것 같다.

우리가 동정하고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보았던 우리의 인생은

신애(전도연)의 얼굴처럼 그리고 미자(윤정희)의 얼굴처럼

눈물도 마르고 미소도 가신채 푸석푸석하기만하다.

난 이창동이 매우 잔인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네 문화센터의 시쓰기 강좌에서 강사로 나오는 시인이 그런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번도 사과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고.

첫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혹시라도 시상이라는것이 떠오를까 부엌 구석구석을 살피는 미자.

한참동안 사과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그런다.

아무리 그래도 사과는 보는것보다 깍아 먹는게 최고지.

 

 

 돌봐주는 이 하나 없이 생활 보호 대상자로 살아가면서 오히려 돌봐야 할 사람이 둘이나 있는 할머니.

중학생 손자 뒷바라지에 중풍에 걸린 회장님 간병인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혼한 딸한테는 나쁜 소식 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치매 진단을 받지만 마치 그 사실 마저도 잊어버린듯.

주변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새초롬한 자기단장에 어딜가든 누굴 만나든 스스럼없이 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강에 뛰어들어 죽은 여학생에 고통스러워한다.

딸의 이혼도 손자의 탈선도 소녀의죽음도 그러나 그녀 탓은 아니다.

 

 

글쎄. 나는 이런것들은 전부 다 거짓같다.

누군가가 경험한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은 진실이겠지만 우린 도대체 그것을 통해서 뭘 공감할 수 있는걸까.

그것을 공감한다고 말하는것은 거짓같다.

마치 한무더기의 연예인들이 나와서 질질짜면서 자신이 감내해야했던 고통을 풀어놓고

이제는 죽을때까지 아무런 실수도 고통도 닥치지 않을것처럼 자위하는것.

그것을 보면서 마치 이해하는 척 용서하는 척 구원이라도 해줄것처럼 구는 우리들.

사물을 새로이 보려는 노력, 시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보려는 노력은 모두 가식같다.

마치 하느님께서 나를 용서해주셨다고, 신앙을 통해 죄를 씻었다고 말하던 <밀양>의 살인범처럼.

세상이 아름답고 좋은곳이라면

도대체 우리는 왜 사과를 백만번 천만번 들여다보여 그가 가진 다른 이면을 발견하려 애써야 하는것일까.

 

 

아무튼 난 이 영화를 보고 될대로 삐뚤어졌다.

 

 

우리 엄마도 이렇게 곱게 늙으셨으면 좋겠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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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12. 11. 12. 03:47

 

 

영화 <오! 수정>을 다시 보았다.

영화가 개봉했을때 보고 다시 본게 처음이니 거의 12년만이네.

영화보는 틈틈이 홍상수의 또 다른 영화인 <북촌방향>을 떠올렸다.

거의 십년이라는 터울을 두고 만들어진 두 영화이지만

두 영화를 잘 편집해서 하나의 영화로 합쳐놓아도 보는데는 별로 지장이 없을것 같다.

잠시 한 눈을 팔고 있으면 모르는 영화 두 세편을 새로이 필모그래피에 올려 놓는 감독.

그의 개봉작을 때맞춰 못봐도 별로 조바심 안나는 이유는 그의 영화가 그만큼 세월을 타지 않기때문이다.

지금은 없어졌겠지만 끝자락에 앉은 사람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다 들리는

코아아트홀에서도 가장 작은 관에서나 봐야 돈 아깝다는 생각 안드는 영화가

홍상수 영화라는 의견에 누가 뭐 반대할것 같지는 않다.

중요한것은 어떤 이들은 그런 영화들을 두번이고 세번이고 즐겨 본다는것.

  워낙에 다작을 하는 감독이라서 그런지 관객의 입장에서도 목숨걸고 관객을 기대하는 감독같지 않아서 부담이 적다.

흥행하는 영화를 볼땐 결과적으로 그 영화가 나한테 재미있는 영화인가와는 상관없이

남이 보는 영화를 나도 본다는것에 대해 우선 만족하려는 심리가 있는게 사실이다.

만드는 영화마다 계속 실패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만드는 영화를 볼땐 관객들도 그들만큼 불안한 법이고.

개인적으로 홍상수나 김기덕의 영화는 감독컷으로 캐스팅비화나 촬영비화같은것을 곁들여서 한정판으로 내면 좋을것 같은데.

특히 이 <오! 수정>이라는 영화는 더욱 그랬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이은주는 스무살 꽃다운 나이였구나.

홍상수의 영화를 아무리 더봐도 이 영화만큼 노골적이고 응큼했었던 영화는 없었던것 같다.

스크린 데뷔작에서 이만큼의 노출을 감행할 수 있었을땐 이은주라는 배우도 나름의 고집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싶다.

아니면 너무 어려서 그냥 제작사에서 하라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던가.

하지만 <은교>의 김고은도 그렇고 그런 연기를 하라고 해도 제대로 할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을것 같다.

뭐 그런연기를 했을때 신인상을 가져가는것도 불문율 같고.

아무튼 이은주에게서는 또래 배우들이 가진 발랄함이나 상큼함보다 항상 새침함과 우울함이 강조되었던것도 같고

그래서 신인 여자 배우로써는 약간 다른 길을 가게 되었던것도 같다.

위 장면은 정보석의 외제차를 타고 가면서 천장 창문을 열어주자

'나 어렸을때 엄마아빠랑 김포공항 다니면서 저 위로 얼굴내밀고 막 그랬거든요. 그땐 우리가 잘 살았었나봐요'

 라고 말하는 장면인데.

드라마 불새에서 갑자기 가난해져서 다른 삶을 살아가야했던 그녀와 오버랩되면서

무척이나 그럴듯한 장면이 되어버렸다.

 어찌보면 이은주가 연기했던 양수정이라는 캐릭터로부터 홍상수의 여자 캐릭터는 정립된것처럼 보인다.

송선미든 고현정이든 김보경이든 코트를 입든 야상점퍼를 입든 무용을 하든 작곡을 하든

그녀들의 취한 얼굴, 방바닥을 손으로 짚고 취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는 그런 모습들.

애타는 사람을 전화기 저편에 세워놓고 무심하게 배드민턴 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뻔뻔한 수정의 아우라를 벗어날 수 없는것 같다.

상대가 무엇을 의도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모두들 각자가 원하는것이 있고 그것이 상대의 목적과 부합할때 사람들은 행복해진다.

자기 본능에 충실한 영리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홍상수의 영화를 보는동안 누군가는 뜨끔하고 불편한 기분을 느낀다.

 

 

영화속에서의 시간은 얽히고 섥혀서 정신차리지 않으면 진짜 복잡해진다.

정확하게 말하면 남산 케이블카가 멈춘 시점부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수정의 시점에서 영화를 보여주는것.

그렇다고해도 장소와 시간의 배열은 그다지 명확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것도 아니다.

편집실에서 수정과 영수는 서로에게 그렇고 그런 호의를 보이고

수정은 저런 얘기를 뭐하러하지 싶은 자신의 성경험까지 솔직하게 풀어놓는데 나중에 정보석이 합류하고.

수정에게 그림을 보러 가자는 영수와 화랑을 나와서 경복궁 참 작다라고 말하는 장면들은 저만치 떨어져있고.

화랑을 나와서 재훈이 운전기사한테 밥먹으라고 돈주는 장면을 보고서는

본능적으로 부유한 재훈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재훈은 영수에게 수정의 이름을 물어보고, 수정은 재훈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한것을 의도적으로 확대해석하고

재훈은 수정이 자신의 장갑을 찾은 우연이 필연같기만 하고 기억력을 자랑하기 시작하고 혈액형 물어보기 시작하고.

이제부터 그것들이 일사천리로 그 누구의 밤과 낮도 아닌 불특정다수의 습관들로 쭉쭉 나열된다.

 

 

누군가는 항상 안절부절해한다.

누군가는 항상 그걸 모르는척 한다.

그 누군가는 또 모르는척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절부절해한다.

누구도 지지 않는 경기.

우이동에 좋은 호텔을 알아요 라고 말해도

어머 이 남자가 나랑 말고도 호텔을 많이 다녀봤나봐 라며 섭섭한 뉘앙스를 풍길 여자가 여기엔 없다.

 

 

-활짝 웃어봐요

-뭐요? 제가 뭔데요?

 

화면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저 막걸리는 왠지 너무 달콤할것 같다.

벼름박에 한가득 적혀진 낙서와 낮은 천장.

언젠가 우리도 머물렀던곳같은 흑백화면속 고갈비집.

살아서 흑백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던 배우는 나름 행운이었겠다 싶다.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수정이 탄 남산 케이블카가 공중에 매달려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공중에 붕 뜬 모두의 감정들처럼.

케이블카가 작동되면서 뜨는 자막

'짝만 찾으면 만사 형통'

티비 프로그램 <짝>의 '둘은 통했다' 라는 나레이션이 귓전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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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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