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니우스'에 해당되는 글 47건

  1. 2015.10.16 Vilnius Sculpture 01_로맹 개리 조각상
  2. 2015.06.08 Vilnius 13_우주피스 (Užupis)
  3. 2013.11.06 20131105 (2)
  4. 2012.12.16 Vilnius 09_빌니우스의 겨울
  5. 2012.11.07 밤과 낮
Vilnius Chronicle2015.10.16 18:38


이제 겨울 코트를 꺼내 입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날씨가 되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 둔탁해지고 밤은 조금 더 깊어지겠지. 이제 곧 썸머타임도 해제되니 한 시간을 앞당겨야 한다. 물론 모두가 만능 전화기를 들고 다니는 요즘 같은 세상에는 시간도 알아서 자동으로 바뀐다. '시계바늘 돌리는것을 깜빡해서 지각했어요' 같은 소리는 창피해서라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된것이다. 이런식으로 많은 아날로그적 실수들은 조금씩 설 자리를 잃고 행복은 점점 디지털화 되어간다. 지난 토요일 아침, 텅빈 거리를 걸으며 느꼈던 감정은 최근 경험한 감정 중 가장 시적이고 정적이었다. 아무도 없는 거리의 정적만큼 아날로그적인것이 또 있을까. 잠든 가족을 남겨두고 정해진 시간에 빠뜨리지 않고 수행해야 할 미션들을 두번이고 세번이고 되내이며 헐레벌떡 집을 뛰쳐나왔지만 마치 꿈속에서 다리가 딱딱하게 굳어 잘 움직여지지 않는것처럼 누군가가 등뒤에서 코트 자락을 잡아 당기는듯 주변의 모든 풍경들이 바쁘겠지만 서두르지 말라고 말했다.




가을은 완연했다는 칭찬을 해줄 기회조차 주지 않고 아주 금세 끝날 낌새를 보인다. 모든 움직이는것들의 무심한 발자국에 싱싱한 낙엽들이 하나둘 짓이겨지기 전에 예쁜 낙엽 몇장 주울 수 있다면 좋을텐데. 세상에 낙엽만큼 결백한것들은 없을테니. 여행을 가면 밤기차를 타는것이 항상 설레었었다. 오르고 내리는 승객들로 등언저리는 시린 찬바람에 항상 무방비상태였지만 그런 불편함 마져도 익숙해져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갈때쯤 기차는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르곤 했다. 피골이 상접해져서 걷는 텅빈 도시의 아침은 그럼에도 또 얼마나 매력적이었던지. 그리고 이렇게 제자리에서 살면서도 그 기분을 느낄 수 있다니. 우리는 항상 어떤 조건을 갖추었음에 감사함을 느끼지만 때로는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그 능력 자체에 감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언젠가 여름이 되어 밤이 짧아지면 새벽에 나가자 보채는 아이를 데리고 걷게 될지 모를 이 거리들. 언제나 구석구석 들여다보게 되는 빌니우스의 거리들. 



일방통행 도로 한켠의 노란 페인트 자국이 벌레먹은 은행잎처럼 낡았다. 이 거리의 이 지점에 서서 저 끝의 앙상해진 나뭇가지를 마주할때 언제까지나 내 인생의 하나뿐이었던 그 10월의 토요일 아침을 기억할 수 있기를.

 




빌니우스 구시가지 곳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많은 조각들. 약속 장소를 잡을때, 혹은 전화 통화중에 어디 어디쯤이라고 얘기할때 조각들의 이름을 얘기할 수 있는것은 나에겐 퍽이나 낭만적이다. 낭만은 현실속에서 숨쉬어야 한다. 낭만은 온갖 노력을 다해서 무슨 행사처럼 일시적으로 끄집어 낼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니깐. 우리가 기억하고자 하는 아름다운 감정을 매일 매일 되새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우리 모두는 이미 낭만주의자이다.





 

바사나비치어스 J.Basanavičiaus 거리와  민다우고 Mindaugo 거리의 교차로에는 양손에 고무신을 꼭 쥔채 어딘가를 응시하는 소년의 동상이 있다. 그의 꼭 쥔 두손에는 사계절 꽃이 끊이질 않는다. 거리의 낙엽이든 시든 꽃다발이든 꺽인 나뭇가지이든 그는 항상 꽃과 함께이다. 짝사랑하는 여자아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고무신을 뜯어 먹었다는 일화의 주인공, 바로 프랑스 공쿠르 문학상을 두번이나 수상한 소설가 로맹 개리의 어린 시절의 일화를 형상화한 조각이다. 일부 자료에선 로맹 개리의 출생지가 러시아로 표기되어있지만  실제 로맹 개리는 리투아니아계 유태인 홀어머니와 함께 빌니우스에서 태어나 이 동상이 세워진 거리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프랑스로 이주한것으로 알려져있다. 외교관이자 극작가, 영화 감독, 소설가까지 다재다능했던 그. 절대로 같은 작가에게 두번 시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로맹 개리는 공쿠르 문학상을 두번이나 받았다. 한번의 공쿠르상 수상 이후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을 사용했던것. 그리고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개리였다는 사실은 그의 유서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물론 그가 그 잘난 문학상을 타려고 이름을 바꿔 집필을 시작한것은 아닐것이다. 고다르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의 말끔하게 아름다웠던 진 세버그의 연인이었고 그녀의 죽음 이후 권총 자살을 하지만 유서에는 내 죽음이 진 세버그의 죽음과는 상관없다고 언급한다. 그의 많은 작품 중 단 두권의 소설을 읽었을뿐이지만 그 특유의 유머의 기저에는 진한 우울이 깔려 있다. 이 동상을 지날때마다 그래서 슬픈 감정을 느낀다. 





소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고무신을 뜯어 먹었다는 일화는 <새벽의 약속>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그가 언급했다고 한다. 전자책 사이트에 많은 로맹 개리의 작품이 있지만 아쉽게도 이 작품은 찾을 수가 없다. 이 소년의 사연을 아는 이라면 예쁜 꽃다발을 준비해서 좀처럼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여인과 소년의 발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어떨까. 아 어쩌면 소년이 지니고 있는 꽃다발들은 그 숱한 사랑 고백을 거절당한 이들이 남기고간 씁쓸한 증거물일지도 모르겠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떠올리다보면 로자 아줌마의 아파트에서 다른 창녀의 아이들과 길러지는 엄마 없는 모모의 형상이 이 동상에 겹쳐지기도 한다. 사람들의 관심이 고파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고도 도망가지 않고 서있던 모모. 엄마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부러 여자가 주인인 상점을 드나들던 모모. 사람이 사랑없이도 살 수 있냐고 천진하게 묻던 어린 모모. 어쩌면 많은 여인들을 사랑했던 로맹 개리가 사는 동안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던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죽음은 사랑없이도 살 수 있는 자신에 대한 배신감때문이었을지도. 









Posted by 영원한 휴가
Vilnius Chronicle2015.06.08 20:02




지금은 빌니우스의 몽마르뜨로 불리우기도 하는 예술가들, 보헤미안들의 동네 '우주피스 (Užupis)' 이지만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그럴듯한 명성을 가진것은 아니다.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의 구역이라는 낭만적인 이력을 품고 한껏 멋스러워지고 화려하게 소비되는 세상의 많은 구역들이 그렇듯이, 한때는 갱들의 구역이기도 했던 샌프란시스코의 소살리토나 젊은 예술가들이 모이던 뉴욕의 소호처럼 그리고 서울의 합정동이나 연남동, 심지어 신사동 가로수길 같은 공간들이 그렇듯이

빌니우스의 우주피스 역시 비싼 임대료를 피해 그나마 접근성이 좋은 곳에 터를 잡고 젊은이들이 자유를 누리며 교류하던 공간이었다. 지금은 그 모든 지역들이 역설적이게도 돈없는 보헤미안들이 터를 잡기에는 턱없이 비싼 임대료의 핫플레이스로 변해버렸다.  빈궁한 빌니우스의 보헤미안들은 펍이나 레스토랑에 들어가는 대신 좁은 폭의 강에 삼삼오오 모여 병맥주나 싼 보드카를 들이켰다.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지금도 역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광경이며 우리 역시도 여럿의 친구들과 모일때면 노천 카페나 식당 대신 야외에 머물기를 즐긴다. 공공장소에서 알콜 음용이 불법인 현재 대놓고 맥주를 병째 들이키거나 할 수 없지만, 가끔씩 경찰이나 혹은 근처 식당에 고용된 경비들의 제재를 받기도 하지만

그것이 빌니우스 젊은이들의 포기하고 싶지 않은 권리임에는 틀림없다. 빌니우스의 여름은 너무 짧고 한여름밤은 너무 기니깐.  빌니우스 구시가지 한켠의 길고 긴 언덕을 끼고 이어지는 우주피스 역시 한때는 빌니우스 구시가지에서도 가장 싼 땅값의 지역이었다. 관광객이 모이는 동네들이 늘상 그렇듯 요즘의 우주피스는 예쁜 빵집과 레스토랑이 가득하지만

좀 더 깊은곳을 파고 들어가면 많은 버려진 건물들과 지금은 기능을 상실한 소비에트 시대의 대규모 공장 부지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미 건축 허가를 받아 접근 금지 구역으로 폐쇄되어 포크레인으로 곳곳이 깊게 패어진 장소들이 있으며

뻥뚫린 창문에 불에 탄 흔적만 지닌채 유령처럼 서있는 주인없는 건물들이 있다. 그리고 얼마후 그런 자리들에 멋스럽게 디자인된 가정집들이 들어서리란것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건축업자와 부동산업자들에겐 더할나위없이 매력적인 구역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9년전에 여행와서 머물렀던 호스텔 주변의 풍경이 계속 바뀌는것 같아 아쉽다. 그 변화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아마도 그곳의 사진을 남기는것 뿐일것이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Coffee2013.11.06 05:49



올드타운내의 베이커리에서는  확실히 마트빵의 획일성을 탈피한 창의적이고 풍성한 맛의 케익과 파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새 빵집 점수를 매기는 척도로 여기는 양귀비 씨앗과 연유가 잔뜩 들어간 묵직한 중량감의 이 파이.

적당한 당도와 절묘한 물컹함으로 검은 밥알사이에 야무지게 들어찬 대추로 가득한 우리나라 약식과 흡사하다.

겨울이 가까워지고 밤이 길어지는 만큼 상점들이 어둑한 거리에서 내뿜는 빛은 훨씬 절묘해진다. 

이전에 모르고 지나치던 혹은 항상 너무 일찍 문을 닫는듯한 인상을 주던 올망졸망한 가게들은 

사실 일찍 문을 닫았다기보다는 그만큼 이른 시간에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내가 들려야 할 곳이 너무 많았던 여름이었단 소리일지도. 



파이나 케익같은 적당히 단 음식을 곁들였을때 설탕을 넣지 않은 차도 텁텁하지 않게 맛있게 마실 수 있다.

사실 티백으로 된 차를 잘 마시진 않지만 손님이 왔을때 티백만한게 없다는것을 얼마전에 깨닫고 떨어지지않게 채워넣는 중.

맛있는 차에 대한 기준은 생각보다 너무 달라서 매번 찻잎의 양이나 설탕의 갯수를 묻는것은 여간 번거로운것이 아니기때문에.

   게다가 트와이닝 시리즈는 감히 립톤이 넘볼 수 없는 고고함 같은게 있다.



오늘 두번째 들른 이 빵집도 그렇고

요즈음 빌니우스 올드타운에는 럭셔리한 타파스 가게부터 저렴한 펍, 베이커리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있다.

바닥을 친 리투아니아 경제가 기지개를 펴고 있는것인지 또 다른 경제 위기의 전초전인지는 알 수 없다.

빌니우스에서 가장 핫한 올드타운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빌니우스 거리에도

새로 생겨나는 음식점이나 카페들이 일년반을 못넘기고 문을 닫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인 올드타운만큼은 쓰레기로 만들지 않겠다는 빌니우스 시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간판부터 옥외광고설치까지 규제로 가득하며 임대료는 결코 예쁘지 않으며

조금 과장하자면 주차공간을 찾으려면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산타모자 쓴 월리를 찾을 마음가짐 정도는 가져야하는,

 거주민들에게조차 무료주차공간확보가 쉽지 않은 공간적 협소함까지.

이탈리안 레스토랑부터 피자 체인까지 업종을 갈아타며 영광을 꾀하려했던 자리들.

최종허가를 얻지못해 점포주인만 좋은 일 시키고 시멘트 먼지와 함께 남겨지는 딱봐도 그냥 흐지부지된 누군가의 사업들.

문닫은 은행이 한달후에 샐러드바로 탈바꿈하고 삼년동안 비어있던 점포가 꽤 매력있는사과사이더(cider)바가 되어 나타나는

최근 반년새에 일어난 변화가 구심점을 잃은 빌니우스 거리에 식도락거리라는 정체성을 안겨줄런지 의문.

어쩌면 이 분주한 움직임은 그냥 닥치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는 모두를 향한 모두의 달콤한 유혹일지도 모른다.



의식적인 책상 정리나 냉장고 정리따위는 하지 않는편인데 

가령 곰팡이 생긴 음식이 보여도 그냥 그날 먹고싶은 음식을 꺼내먹으며 썩어가는 그들에게 조금 더 부패할 여지를 주고싶고 

어차피 버려질 운명에 처한 필요없는 서류들도 자신의 순서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도록 강하게 훈련시키는 편이다.

그런 과정속에서 신기하게도 버려지지 않는 이들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썩은 음식에서 생겨난 수분 때문에 냉장고 청소할 기회도 생기는 법이니깐.

마치 우울의 정점을 찍고 그 첨탑 끝에서 일부러 내려오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듯한 내 감정은 내가 어찌 할 수 없다고 해도

최소한 내 주변의 사물들에게만이라도 좀 더 말랑말랑한 시선을 가져야 하는게 아닐까. 

각종 거래명세서와 고지서, 뜯어보기 두려운 기관의 편지들로 가득한 롱 위크엔드후에 만나는 책상.  

오늘은 월요일 같은 화요일이었고 자질구레한일부터 하나씩 처리하며 말끔해지는 책상을 보며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일했다.

내일 사야 할 램프 갯수 체크하기. 새 직원 메디씬카드 만들기. 두 거래처사이에서 고기가격 100원때문에 줄다리기하기.

모두를 위한 커피를 내리기. 거절을 필요로하는 수많은 전화들 사이에서 내게 필요한 제안들에 진심으로 행복해하기. 

내가 하는 일들은 뭐랄까 내가 보기엔 좀 귀여운 일들이다. 

가끔은 잔뜩 어질러진 하지만 나만의 시스템으로 나름 체계적인 내 장난감 방을 헤집고 들어와 

각종 수납 박스를 내밀며 '파란블럭은 파란블럭대로 노란블럭은 노란블럭대로 분류해서 넣으세요'라고 말하는

기관직원들이 들이닥치기도하지만 나를 방문하는 그들에게도 그들의 일은 결과적으로 귀여운일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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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Vilnius Chronicle2012.12.16 07:05

 

 

 

    


 빌니우스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 고개를 치켜들면 벌써부터 무시무시한 고드름이 달려있다. 자주 지나다니는 길들이 일방통행인곳이 많아서 보도블럭보다 차도로 걸어다니는게 더 나을정도이다. 두툼한 털 양말속에 바지를 집어넣고 묵직한 등산화를 신어야 그나마 녹아서 질퍽해진 눈 사이를 걸어갈 수 있을 정도인데 혹한과 폭설에 길들여진 유전자들이라 높은 겨울 부츠를 신고도 별 문제없이 잘 걸어다니는것 같다.  곳곳이 진흙탕 물인 거리를 마구 뛰어다녀도 종아리에 꾸정물 하나 안묻히던 인도인들의 유전자처럼 말이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Daily 2012.11.07 05:03

 

 




이 사진을 보고 있으니 얼마전에 보다 만 홍상수의 <밤 과 낮>이 떠오른다. 집이 도로옆이라서 창문을 열어놓으면 확실히 소음이 심하다. 그래도 난 시끄러운 도시속에서 느끼는 상대적인 고요함이 시골의 적막함보다는 좋다. 게다가 빌니우스같은곳에 살다보면 심지어 이곳이 시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집앞의 호텔은 성업중이다. 덕분에 거리에 생기가 도는것같다. 침실이 서향인데 가끔 오전에도 호텔 창문에 햇빛이 반사되어 들어온다. 가끔 아주 조용할때는 신호등의 신호음도 들려온다.  그나저나 <밤과낮>을 어디서 찾아서 끝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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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