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프 자리에는 사전이나 여기저기서 주워 온 리투아니아 잡지 같은 것들을 그냥 세워두는 편인데 오랜만에 존재감 뿜는 책들로 채워보았다. 이들은 빌니우스로 여행을 오셨던 소중한 블로그 이웃님 Liontamer 님께서 선물로 주신 책들인데 일부는 두고두고 읽으면 괜찮을 것 같아 내가 고른 것들이고 일부는 좋아하는 작품들을 손수 추천해 주셨다. 감사하는 마음과 행복감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모든 작품들이 묘하게 러시아에 수렴되는 와중에 헤밍웨이의 수필 속에서도 러시아 문학에 대한 짧은 언급이 있는데 동시대 동료 작가들에 대한 적나라한 언급과 비교하면 만나본 적 없는 선배 작가들에 대해선 그래도 예의와 존경 모드를 유지해주셨다. 근데 결국 그것도 러시아 소설은 읽어 본 적 없고 프랑스 소설이나 읽으라는 비평가 친구에 대한 은근한 험담이 첨가된 에피소드였다 생각해보니. 나는 사실 이곳으로 떠나오기 전까지 많은 책을 읽지 못했고 그 사실이 조금은 아쉽고 떠나오고 나니 가장 그리워지는 것은 한글로 된 책이다. 하지만 한글 책을 읽는 것은 크나큰 비효율을 감당해야 하니 보통은 이미 읽은 좋아하는 책들을 한국에 갈 때마다 몇 권씩 사 가지고 오거나 정말 가지고 싶은 책이 있으면 서울 집으로 배송시켜 이따금 한국에서 한두 권씩 받아서 읽곤 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제는 그것도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제는 전자도서로 출간되는 책들이 정말 많아졌고 말끔한 번역에의 강박을 떨쳐버리고 나니 리투아니아어 출판물을 읽는 것도 나름 보람있는 일이라서 그럭저럭 타협이 되어간다. 하지만 종이책들을 영접하니 또 그건 그대로 그저 좋을 뿐이다. 읽어본 적 없는 새 작품들을 손에 쥐고 읽는 사치를 누리려니 감개무량하기도 하고 이 책들을 누군가가 먼 걸음 하여 손에 쥐어줬다 생각하니 좀 드라마틱하기도 하다. 모든 책을 호기심에 조금씩은 전부 훑어보았다. 틈 날 때마다 수시로 꺼내서 읽을 수 있는 책과 시간이 생기면 카페에 가져가서 아끼며 야금야금 읽을 책과 키득거리면서 읽을 수 있는 책, 머리 싸매고 읽을 책 등등으로 구분도 해본다. 마치 날씨와 기분, 위장과 정신 상태에 따라 카페와 커피를 고르는 것처럼.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호강인지. 책을 위한 잡담과 글 속에서 작가는 작가로, 책은 책으로 쉼 없이 가지를 쳐서 요즘 내 머릿 속 도서관은 마치 3년 치 전시가 꽉 찬 미술관 같다. 느릿느릿 한 문단씩 읽어내는 데에 행복감이 있고 문단과 문단 사이를 가득 메우는 것은 어제의 커피와 오늘의 커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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