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초에 팀빌딩으로 1박 2일 하이킹에 다녀왔던 친구가 나름 재밌었다고 비가 오지 않는 주말에 언제든 한번 캠핑을 가자고 제안했었다. 친구와는 당일치기로 짧은 거리의 하이킹을 몇 번 간 적이 있지만 챙길 것 많은 캠핑은 둘 다 늘 망설였다. 여행을 갈 때면 먹을 일이 생길까 봐 약도 안 챙기고 붙일 일이 생길까 봐 밴드 같은 것도 챙기지 않게 된다. 그렇게 짐을 챙기는 것은 물론 무겁게 드는 것도 싫어하는 나로선 캠핑은 늘 모든 귀찮음의 전시장처럼 다가왔지만 고향집에 다 있으니 몸만 오라는 말에 솔깃했다. 나는 최소한의 옷과 아이와 함께 당일 먹을 도시락과 일회용 커피와 차만 넣고 친구의 고향집을 향하는 버스를 탔다. 리투아니아에서의 캠핑은 더울 때마다 수시로 뛰어들 수 있는 호수와 젖은 옷이 저절로 마를 때까지 널브러져 있을 수 있는 햇살이 흥건한 풀밭 그리고 뒤로는 숲이 병풍처럼 펼쳐진 곳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간밤에 화장실로 이용했던 숲의 초입을 지나 버섯과 야생 열매를 따러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곤 했다. 씻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뭔가를 하자고 애타게 찾는 사람도 없다. 사람들은 각자 움직인다. 멍하게 있다가 낚시 장비를 꺼내 한 시간 내내 만지작 거리다가도 밥을 지으러 간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일관적이고 심심한 지형의 이곳에서 내리 꽂히는 폭포나 콸콸 쏟아지는 계곡 물의 경쾌함은 흔치 않다. 호수는 늘 더 이상 흘러갈 곳이 없어 잔잔하고 이곳의 캠핑도 거의 그런 모습이다. 따로 시간을 잡아서 멍을 때릴 만큼 계획적이지도 않다. 아침 일찍 일어나니 새벽까지 수다를 떨던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있었을 장작 근처에 은근히 따뜻한 재들이 남아 있어서 불이 쉽게 붙었다. 그냥 전부 집어넣고 터키식으로 우르르 끓이는 커피. 그래 어쩌면 내 머릿속의 가장 큰 조각의 상상은 바로 이 순간에 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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