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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열혈남아 As tears go by> 왕가위 (1987)

 

 

<열혈남아>

 

<천국보다 낯선>을 보면 뉴욕에 머물던 에바가 숙모가 사는 클리블랜드로 떠나기 위해  짐을 싸는 장면이 있다.

뉴욕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보낸 길지 않은 시간동안 이미 그녀가 익숙해지고 그리워하게 된것들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는데 

바로 체스터필드 한 보루를 트렁크에 집어넣으면서 '이 담배, 딴 도시에 가도 있을까?'라고 윌리에게 묻는 장면이다.

낯선 곳으로 떠날때 우리는 늘 우리가 나중에 그리워하게 될 지 모르는것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한다.

'갑자기 그 음악이 듣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씨디를 굽고

'그래도 머리맡에 놓고 두고두고 읽을 책 한권쯤은 챙겨야지' 하는 생각에 헌책방을 향하고

적응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계산해보고는 삼분카레 세네봉지를 구겨넣는다.

갑자기 보고싶어졌는데 아무곳에서도 다운을 받을 수 없다거나 아마존에서는 몇십달러나 내야 주문이 가능하면 어쩌지? 

 서울을 떠나기전 부랴부랴 주문한 왕가위 영화들은 나에겐 에바의 체스터필드와 비슷한 의미였던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열혈남아>로 번안이 되었지만 영어제목은 As tears go by,  원제의 한자를 그대로 읽으면 <왕각가문>.

왕각가문이란 제목도 광동어로 발음하면 왕각은 '몽콕'으로 침샤추이와 같은 홍콩의 번화가 이름이고

가문은 외국어 발음과 비슷한 병음을 끼워맞추는 중국어의 특성상 '카먼', 고유명사로 '카르멘'을 뜻한다.

사실 엉뚱한것은 원제가 아니라 한국어 번안 제목인 <열혈남아>이지만 <지존무상>이나 <영웅본색>같은 홍콩액션영화가

유행하던 그 당시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몽콕의 카르멘>이라는 원제가 더 뜬금없는 제목이었을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인구밀도의 도시 홍콩을 다시 작은 성냥갑속에 구겨넣은듯한 몽콕의 거리.

빽빽하게 들어찬 상가와 현란하게 깜빡이는 네온싸인만큼이나 번잡하게 움직이는 거대한 인파들.

그들모두 어느정도는 좁고 숨막히는 이곳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구역을 확보하려 신경과민에 시달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온갖 범죄조직이 도시의 뼛속깊이 침투해있는것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첨밀밀>에서처럼 좀 더 나은 일자리를 얻으려 홍콩으로 몰려드는 중국 본토인들과 

<중경삼림>에서의 가난한 주변 아시아 국가들에서 몰려오는 이민자로 가득한 이 좁은 도시에서

유덕화와 장학우 그리고 장만옥이 연기하는 젊은이들도 결코 이곳에 쉽게 섞일 수 없는 이방인이긴 마찬가지.

몽콕의 카르멘. 왕가위는 쉽게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그들이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뜨거운 담배공장에서 담배를 마는 떠돌이 집시여인 카르멘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던것일까? 

 

 

장만옥이 살고 있는 란터우섬은 홍콩의 서쪽에 위치한 홍콩에서 가장 큰 섬이라고 한다.

병 치료차 사촌오빠인 유덕화가 살고있는 홍콩에 잠시 머물지만 그의 불안정한 일상만 잔뜩 구경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잠자고 있는 유덕화가 숙모의 전화를 받을때 짐가방과 함께 배위에 서있는 장만옥을 잠시 보여주는데

이 장면은 에바가 트랜지스터를 들고 걷기 전,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는 장면과 흐름상 크게 다르지 않다.

80년대 뉴욕에 모인 이민자들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고 절제적으로 그려낸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과

80년대말 홍콩의 젊은이들을 통해서 선배 감독에게서 받은 영향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왕가위.  

"Loving movie is enough to make a good movie"

좋은말들은 항상 당연한말이지만 그 당연한 말들의 적합한 예가 되려면 그 loving의 정도는 상상 이상의 것이어야할거다.

타란티노가 자기자신을 염두에 두고 했던 말일 수도 있고 왕가위나 류승완같은 감독들도 동의할 만한 말.

    

 

윌리는 경마나 카드놀이로 소일하며 공장으로 일하러가는 노동자를 보고는 힘들거라고 동정하는 백수 이민자일뿐이고

유덕화는 사촌동생한테 밥사먹으라고 용돈도 줄 수 있는 한때는 잘나갔던 현직 폭력배.

유덕화가 사는 아파트도 윌리가 사는 허름한 아파트보다 두배는 넓어 보인다.

에바는 윌리와 한방에 누워서 날이 새도록 어색하게 티비를 봐야했지만

장만옥은 최소한 자신만의 공간을 보장받고 낯선곳에서의 첫날밤을 보낸다.

 

 

유덕화가 자는 동안 유덕화의 전화를 받는 설정도

 

 

티비디너까지는 아니어도 장만옥이 지어 준 맛있는 밥을 먹는 장면도 <천국보다 낯선>에 대한 철저한 오마쥬인걸까.

 

 

게다가 이 장면은 짐 자무쉬의 데뷔작인 <영원한 휴가>에서 밤새고 방황하다 돌아온 앨리를

여자친구가 침대 매트리스만 달랑 놓여있는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장면과 비슷하다.

사실 이후의 왕가위 영화에서는 이 정도로 절제된 공간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비정전>이나 <중경삼림>같은곳에 등장하는 장국영과 양조위의 방도 정말 산만하기 그지없었으니깐.

집도 직업도 세금 내기도 싫다는 앨리처럼 유덕화도 누군가에게 얽매여서 책임져야하는 삶은 원하지 않는다.

낙태한 여자친구에게 '내가 죄책감을 느낄 것 같아?'라고 말하고 미련없이 사라져줄 뿐. 

 

 

정은임이 진행하던 FM 영화 음악에서 장만옥을 이렇게 표현한적이 있다.

마치 달을 씻어서 쟁반에 얹어 놓은 듯한 얼굴이라고.

25년전의 장만옥의 얼굴을 보고있자니 그때의 표현이 얼마나 적합했는지 싶다.

 

 

성한 유리컵이 하나도 없다며 유리컵을 잔뜩 사놓고 떠나는 장만옥.

'한꺼번에 다 깨버릴까봐 일부는 숨겨놓았으니 못찾을때 전화하면 어디있는지 알려줄게요'

열혈남아 이후로 왕가위의 영화에 큰 변화가 생겼다고들 하지만 왕가위식의 감각적인 대사는 이때부터 어김없이 등장했다.

작고 사소한 사물들을 통해서 인물간의 감정을 교감시키려는 시도.

한 공간에서 온전히 자신들에게만 허용된 순간을 누리는데 서투른 이들은

자신을 기억할 만한 물건 한두개쯤은 슬며시 남겨두고 떠난다.

 

 

사실 홍콩 면적이 그렇게 넓은것도 아니고 구룡에서 란터우섬까지 거리가 먼것도 아닐텐데

영화에서 유덕화와 장만옥이 느끼는 거리감은 거대해 보인다.

더이상 날지 못하고 어항속에 떠있는 모형비행기나 젖어버린 비행기 티켓처럼

실제로 가까운곳에 있지만 서로간의 심리적인 거리감을 줄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물들.

그리고 왕가위는 그 거리감을 마치 숙명인듯 표현해내는데 소질이 있다. 

 

 

광동어 번안곡이긴 하지만 이 장면에서 Take my breath away가 흘러 나오고

영화 속에서 흐르는 신시사이저 사운드 충만한 음악들은 탑건이나 플래쉬 댄스 같은 80년대 영화들을 떠올리게 했다.

왕가위 영화에 사용되는 적합한 음악들을 생각하고 있자니 다음에는 이명세의 영화들을 찾아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배경은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영화를 만든 감독들이 가진 비슷한 정서같은것이 있으니깐.

 

 

유덕화가 장만옥이 있는 란터우로 한걸음에 달려가 공중전화박스에서 키스를 나누는 장면은

여명의 눈동자에서 최재성과 채시라의 철조망 키스만큼이나 애절한데 네명의 배우들이 조금씩 서로를 닮은것도 같다.

사실 장만옥이 초반에 마스크를 끼고 마른기침을 하며 등장할때는 불치병에 걸린 사촌여동생과 사랑에 빠지는

깡패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룬 신파인가 해서 좀 긴장을 했지만

따지고보면 근친상간인데 먼 친척이라고만 나올뿐 구체적인 관계를 보여주지도 않고 영화도 그 부분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들이 짧은 시간 공유하는 그 감정과 그리움을 극대화해서 보여줄 뿐이다.

 

 

어릴때는 홍콩의 액션영화가 그렇게 보기 싫었는데 성우들의 목소리톤때문에 영화들이 다 비슷비슷해보였으니깐.

   강시 영화에 나오는 유한도사 목소리나 부하를 위해 목숨을 잃는 두목의 목소리, 나쁜 악당의 목소리는

전부 정형화되어서는 홍콩 영화 특유의 배경음악과 함께 섞여서 촌스럽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삼합회나 흑사회같은 범죄조직들이 홍콩 영화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주먹세계에서의 의리나 정의를 미화하기위해서 천편일률적으로 쏟아지던 액션 영화들은 필연적이었을지 모르겠다.

 

 

왕가위도 자신의 데뷔작에서 어느정도의 비장한 액션씬은 보여줘야했지만

조직간의 세력다툼이나 배반, 하극상의 거창한 액션은 아니었고 

남의 비위나 건드리면서 대책없이 일을 벌이고 다니는 고향 동생 장학우의 뒤치닥꺼리나 하는 '우리 형'의 액션정도.

하지만 장학우와 함께 죽음직전의 상황에 몰려서는 우는 장학우의 머리를 쓰다듬는 이 장면은

설마 <살인의추억>에서의 '밥은 먹고 다니냐'같은 애드립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말 진심처럼 느껴졌다.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 사고 치고 다니는 동생은 '점쟁이 말로는 서른이 되면 운이 트인데'라고 하지만

14살에 청부살인으로 처음 돈을 만졌다는 형에게 인간의 목숨은 정말 파리 목숨보다 가벼운것.

'정신차려. 너가 서른까지 산다는 보장도 없잖아'

 

 

하지만 우리는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초크묻인 손가락으로 당구공을 밀어내듯 그냥 조금씩 앞으로 밀어내고 있는걸까.

우리가 운명이라고 단정짓는 그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한 평생도 아니고 한 시간만이라도 영웅으로 살고싶다며 절절하게 얘기하는 동생을 더이상 한심하듯 쳐다보지 못하는 형.

몽콕을 떠나 란터우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기 원하는 유덕화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인생에 순응한다.

행동의 본질은 그렇다. 이겨낼 수 있는 슬픔이 아닌 이겨낼 수 없는 슬픔에 맞물려서 흘러가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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