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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Paris 05_파리의 알 파치노



제대로 발음도 못하는 불어 명칭을 이렇게 가끔씩이나마 써내려 가다보면 

지도 속 그 명칭을 읊조리며 걸었던 파리의 구석구석이 떠오른다. 

배우고 싶은 언어가 여럿있지만 교재를 통한 학습이 아닌 반복적인 노출로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싶은 언어가 있다면 불어이다.

우리가 세뇌된 파리의 로맨틱이 매체의 장난이 아닌 보편성이라는것을 확인 하고픈 욕망의 중심엔 불어가 가진 자존감이 있다. 

센강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조르쥬 퐁피두 대로 Voie Georges Pompidou 의 끝과 함께 시작되는 거리 Av de New York.

Palais de Tokyo 를 나와 콩코드 광장 Place de ra Concorde 으로 향하는 그 여정의 끝에는

 그렇게 프랑스와 미국의 우호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뉴욕이라고 명명된 거리가 있었고 그 거리의 끝자락에는

Flame of Liberty 라는 횃불상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횃불상이 세워져 있는 그곳은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알마 다리 Ponte de l'Alma 의 초입이었다.  

그녀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놓고 간 꽃다발과 촛불, 짧은 메세지들로 둘러 싸인 횃불상은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그녀의 사망을 추도하기 위해 세워 놓은 기념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고독할 새 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강 건너편 에펠탑에서 케 브랑리 박물관 Musee du Quai Branly 쪽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알 파치노가 있었다.

어둠이 내린 센 강변에서 방황하던 누군가가 짝사랑하듯 수줍게 뿌려 놓고간 스프레이 자국으로  

지지직거리며 꺼질듯 불안하게 타들어가는 촛불의 그을음처럼 살아남은 알 파치노를 보고 있자니 

방정맞은 소리일지 모르지만 이곳이 알 파치노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자리이거나 한게 아닌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치 강둑을 넘겨 흘러 온 센강의 물결이 남겨놓은 촉촉한 이끼자국처럼 

얼굴의 반을 사선으로 가려봐도 윗부분 이마를 가려봐도 아래의 턱부분을 가려봐도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없는 알 파치노 모습.

요즘의 미셸 파이퍼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젊고 풋풋했던 그녀를 마주하고 있었던 

<스카 페이스>의 토이 몬타나와 <프랭키와 쟈니>의 쟈니가 먼저 떠오른다.

흔한 말로 스크린 속에서 날아다닌다는 죠니 뎁과 숀 펜을 보고 있어도 

언젠가 그들 옆에서 작지만 굵고 진하게 숨쉬고 있던 <도니 브라스코>의 벤자민의 호흡이 들리고

<칼리토>의 칼리토 브리간테가 떠오를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예전의 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며 나이 든 그를 평가절하하는 코멘트들도 결국은 시샘이라 생각될 만큼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이 멋있다는 수식조차도 이미 어울리지 않게 나이가 들어버렸지만 여전히 초라하지 않은 그.

그의 새로운 영화를 볼 때마다 살아있는 그를 볼 수 없게 될 언젠가를 슬프게 떠올려야 하지만

그는 단지 생물학적으로 연소되고 있을 뿐 나에게는 거대한 굴착기로도 드러낼 수 없는 느릎나무의 그루터기 같은 존재이다.

언젠가 그가 세상을 떠났을때 IMDB의 그의 필모그래피 한켠에는 

그를 기억하려는 동료들의 추모사가 적혀질 공간이 마련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혹시 로버트 드 니로가 알 파치노보다 더 오랫동안 우리곁에 남게된다면

 그 공간의 첫줄은 로버트 드 니로를 위해 남겨졌으면 좋겠다.

언젠간 아버지와 아들이었고 한번은 적이 었고 한번은 동료였던 그 둘은 내 마음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영화적 동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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