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nnect>
90년대의 피시 통신 유니텔부터 현재의 카카오 톡까지.
내가 웹상에 남기는 글들과 인터넷과 스마트 폰을 통한 소통에 유난히 관심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현실에서 맺어진 관계를 그대로 사이버 상으로 옮아가는 패턴과
반대로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한 각종 공식을 현실이라는 실험실로 옮겨가는 패턴.
그리고 실생활이면 실생활, 웹이면 웹으로 하나의 공간에 고정 된 인간관계도 있다.
겉뜨기 안뜨기처럼 규칙적으로 짜이던 이전의 인간관계와 달리 요즘의 그것은
뭐랄까 복잡한 패턴의 수편물 같기도 하고 코가 빠져서 헝클어졌거나 벌레 먹어서 구멍 난 스웨터 같기도 하다.
현재의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너무나 많은 대화의 루트를 가지고 있고 필요 이상의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자신이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것들을 아낌없이 쏟아내지만 새로운 수단이 생김과 동시에 보통은 자연 소멸하는 장치들.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초기화 할 수 있으며 마치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것처럼 투명인간이 되는것도 어렵지 않다.
숨죽이고 앉아서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것들을 관조할 수 있지만 관심 없다는 듯 모른척 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알듯 모를듯 한 낯선 배우들 사이에서 스웨덴 배우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를 보았을때는 반가웠다.
키 크고 깡마른 체구에 창백한 얼굴과 흔들리는 눈빛. 차갑고 냉소적이고 의외로 남성적이지만 때로는 한없이 연약하다.
지금와서 생각 해보니 그는 불안함과 신경 과민의 각축장이었던 <멜랑꼴리아>에서
커스틴 던스트와 샤를롯 갱스부르 게다가 그녀들의 어머니를 연기했던 샤를롯 램플링 사이에서도 삐죽하게 솟은듯 튀어올라
그들 보다 훨씬 더 섬세하게 날카로운 심리 상태를 연기했던것 같다.
어린 아들을 잃은 후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멀어진 데릭은 인터넷 도박으로 줄곧 남는 시간을 보낸다.
아내는 비슷한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과 웹상에서 소통하며 현실에서 치유 불가능해 보이는 감정을 다독이는데 몰두한다.
인터넷 도박 결제를 하던 중 누군가가 자신의 계좌를 사용한 흔적을 발견하고
사설 탐정의 도움으로 아내와 함께 범인을 찾아 나서는 데릭.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내가 웹 상에서 낯선 누군가와 주고받던 대화 기록을 접하게 되고
현실 속에서 대화의 단절을 겪으면서 자식을 잃은 상실감에 대항해서 홀로 투쟁하는 서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데릭의 범인 찾기를 도와주는 사설 탐정 마이크는 아내를 잃고 아들과 단 둘이서 살아간다.
엄마 혹은 아내라는 완충지대를 잃은 이 가정에서 누군가는 상대방을 먼저 이해하기 시작 해야 하지만
아내와 엄마의 부재를 동시에 겪고 있는 이 아버지와 아들 누구에게도 그럴 여유는 없다.
제이슨과 마이크가 마주치는 공간도 시종일관 어둡고 침침하며 이들 역시 소통의 단절을 겪는다.
마이크의 아들 제이슨은 친구와 함께 페이스 북에 가짜 여학생 계정을 만들어서 같은 학교 학생 벤과 웹상의 대화를 시작한다.
헬스 클럽 냉장고에 소변을 채워 넣은 음료수 병을 바꿔 놓는 장난과 별 다를것 없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자신에게 성적인 관심까지 표현하는 가상의 소녀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벤은 급기야 선정적인 사진을 보내게 되고
그 사진이 온 학교를 돌아 벤은 결국 자살 시도한다.
늘상 바쁜 변호사 아버지와 가장 대화가 잘 통할 것 같지만 역시나 자기 세계에서 따로 노는 또래 누나.
모두를 식탁 앞으로 불러 모으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지만 가족 구성원 한 가운데서 마치 외딴 섬처럼 둥둥 떠다니는 엄마.
음악 만들기에 심취해 있는 벤은 제이슨과 별 다를것 없는 사춘기 소년으로
겉보기에는 더 할 나위없이 이상적인 가정속에서 역시 혼자 남은 외로움을 느낀다.
벤의 아빠 리치는 아들이 평소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아들이 혼수 상태에 빠져서야 그의 친구를 통해서 듣는 아버지이다.
그렇다고 밖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가장이 되어야하고 집에서도 배려과 관심을 아끼지 않는 아버지가 되어야한다고
무턱대고 그에게서 완벽한 가장의 모습을 탓 할 수 만은 없는 일이다.
촉망받는 리포터 니나는 인터넷 성인 채팅 사이트에서 착취 당하는 미성년자를 취재하게 되는데
미성년자 카일과의 인터넷 채팅 후에 인터뷰를 위해서 만나게 되고
방송이 여론의 포커스가 되면서 카일의 거처를 공개하라는 압력을 받게되는 니나는
실제 카일에게 연민을 느끼기 시작하고 커리어에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된다.
니나는 카일이 보다 나은 올바른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갈 기회를 빼앗겼다고 판단하고 그를 구제하려 하지만
카일은 신디가 보장해 줄 미래는 없다고 판단하며 결국은 그의 보스인 하비곁에 계속 남게된다.
니나는 이상주의자였고 카일 역시 잠시 다른 삶을 꿈 꿨지만 결국은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친다.
데릭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알고보면 모든 등장인물들은 이렇듯 사슬처럼 연결되어있다.
마치 로버트 알트만의 영화 <숏컷>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미국 영화에 보면 둥글게 원을 그리고 앉아서 자신이 겪은 어려움들을 털어놓으며 문제를 해결해가는 식의 모임들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그런 소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털어 놓을 법한 개별적인 스토리들을 긴장감 있고도 짜임새 있게 이어 놓았다.
'너가 나에 대해서 알기나 해?' '네가 아는 내가 내 전부 일 거라고 착각하지마' 같은 류의 대사.
소통의 부재를 겪는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를 가장 통속적이면서도 정확하게 드러내는 드라마 속 대사이다.
밝은 모습 뒤에는 의외로 어두운 면이 있다든가 잘 놀것 같은데 의외로 내성적이라든가
유명인들이 토크 쇼에서 늘어놓는 얘기들도 그렇고 우리가 손바닥 안에 놓고 매일 들락날락하는 숱한 SNS에서도 그렇고
사람들은 스스로를 노출하려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지만
궁지에 몰렸을 때에는 결국 너는 나에 대해서 모른다는 방지벽을 쌓고 그 고립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며
다시 소통의 바다로 뛰어드는 과정을 반복한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그냥 바라만 봐도 다 아는' 최고 레벨의 소통을 꿈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는 이미 원만한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절망을 경험했기 때문일까?
알고보면 모두가 비슷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현실속에서는 공통점을 찾지 못하고 대립한다.
왜냐하면 그 공통점이란것이 보통 취향이나 생김새, 생활방식 따위를 기본으로 설정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대의 취향과 관심에 좋아요 같은 버튼을 누르면서 상대와의 결속력을 표현하는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만
웹의 영향력이 미치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주변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선 무관심 한 경우가 많다.
감정이 이끄는대로 행동한다는 솔직함을 가장한 우리의 욕망이 빚어 낸 수단에 대한 맹신과 현실에 대한 방관.
누나는 혼수 상태에 빠진 동생을 걱정하지만 주변에 앉아 있는 예쁘장한 친구들은 서로의 스마트 폰을 들여다 보고 있을 뿐이고
신디는 인터넷 채팅에서 위안을 얻던 상대를 만나지만 그런 관계들은 실제 현실에선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웹 상에서 맺어지는 인간 관계는 어쩌면 현실에서 보여지는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꿈꾸는 이들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되어서 만들어 가는 전혀 다른 세계인건가?
디스커넥트는 현실에서 단절(Disconnect)을 겪고서 웹상에서의 소통(connect)을 시도하지만
그 엉성한 소통에 배신(disconnect)당하고 결국은 현실에서 또 다시 소통(connect)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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