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ive>
라이언 고슬링은 얼핏 조셉 고든 래빗과 계속 헷갈리다가 이제서야 정확하게 이름과 생김새가 매치되기 시작했다.
둘 중의 하나를 남은 하나와 착각한 적은 없지만 이들은 아무리 주연으로 출연해도 내 인상에는 남지 않는 공통점이 있었다.
배우들이 무게를 잡는 영화를 보면 특히 그것이 남자들의 영화라면 자동적으로 마이클 만의 <히트>를 떠올리게 된다.
역의 비중과는 상관없이 모든 배우들이 존재감 있는 연기를 펼쳤던 <히트>를 보며 항상 감독의 역량에 대해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배우들이 그의 영화속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것은 아닐것이다.
영화를 볼때마다 캐스팅에 대한 과대 망상에 빠져드는 나로써는 오늘도 변함없이 명감독을 위한 캐스팅 목록을 작성한다.
난 <Drive>를 보고 조셉 고든 래빗에서 라이언 고슬링을 구별해 낼 명분을 찾았고 마이클 만에게는 일종의 체면을 걸었다.
혹시 <콜레트럴>이나 <히트>와 비슷한 차기작에 한 자리가 빈다면 속는 셈 치고 라이언 고슬링과 작업해 보시오 라고.
80년대 시골 나이트 클럽에서 촌스러운 무희가 발랐을 법한 립스틱 색깔로 쓰여진 저 drive 라는 철자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고
결정적인 순간에 영화의 강약을 조절하며 터져 나오는 촌스럽다고 하기에는 너무 절절한 전자 음악들.
그 대책없이 서정적인 멜로디들과 고담 시티를 배회하는 브루스 웨인 만큼 우수에 찬 고슬링이 도시의 밤을 가득 메우는 영화.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이 전에 뭐하던 사람이었을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흔하진 않다.
카센터에서 일하는 틈틈이 영화 스턴트 맨으로 돈을 벌고 종종 강도들의 도주를 돕는 운전사로 일하는 고슬링.
입 가장자리에는 항상 이쑤시개를 걸치고 있고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면 말을 아끼며 표정에 있어서도 인색하다.
관객들로 하여금 고슬링의 전직을 궁금해 하게끔 만든것은 감독의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감독들이 이기고 들어가는 게임을 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아무런 호기심도 일으키지 않는 주인공들이 지루한 영화의 일등공신 이라는 것을 잘 아니깐.
첫번째 도주씬이 끝나자마자 <분노의 질주> 같은 영화를 떠올리며 고슬링이 전직 카레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지만
감독이 갑자기 경찰복을 입은 고슬링을 카메라 안으로 밀어넣는 순간 '얘는 또 부패한 경찰관인가' 이라고 생각하게 됐고
계산적이고 약삭빠르지만 악랄해 보이지는 않는 카센터 주인 섀논이 등장 할때는
아 얘는 그냥 기회를 잡지 못해 이용 당하고 방황하는 언젠가 운전으로 큰 몫 챙길 주인공 인가 보다 하는 가설을 세운다.
그리고 감독은 배우들의 움직임과 대사들을 영리하게 요리하며 내 질문을 영화 끝까지 끌고 갔다.
필요하다면 모두에게 자신을 이용 할 기회를 주면서 고독하게 마치 박애주의자 같은 눈빛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는 고슬링.
그는 청산하고 싶은 혹은 참회하고 싶은 과거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는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처럼 그냥 영웅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히트맨> 같은 고독한 전직 킬러일까?
아니면 그냥 성냥개비 대신 이쑤시개를 물고 있는 주윤발의 열혈팬일지도.
적지 않은 그녀의 영화를 봤지만 아직 딱히 모르겠는 배우.
2014년 출연 예정인 영화가 3편이나 있다는 이 캐리 멀리건의 매력을 진심으로 하루 빨리 이해하고 싶다.
고슬링과 아파트 같은 층에 사는 아이가 있는 젊고 예쁜 여자 아이린이다.
이 말없는 주인공들은 사랑에 빠지는 순간 조차 수동적이다. 행복이란것이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냐고 묻는 듯
무표정한 눈빛에 온기가 실리고 입꼬리가 올라갈 때까지의 짧은 순간은 마치 슬로우 모션 같다.
가장 행복한 이 순간이 마치 영원이 길 바라듯이 어디로도 서두르지 않는 이들.
너와 함께 했던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는 이 두 남자의 상투적인 말 조차도 슬프게 들리는것은 그 때문이다.
고슬링도 스탕달도 마치 기름이 다 떨어진 차 안에 옴싹달싹 못하고 갇혀버린 사람처럼
그들은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현실에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는 상황에 놓여 버린듯 보인다.
아이린의 남편 스탕달은 감옥에서의 안전을 보장 받는 댓가로 적지 않은 빚을 졌고
빚을 갚지 않으면 가족이 해치겠다는 협박에 어쩔 수 없이 또 다시 전당포를 터는 범죄에 가담하게 되고
고슬링은 자진해서 스탕달을 돕겠다고 나선다.
그리고 영화 초반의 그의 대사가 똑같이 반복된다.
'너에게 5분을 줄께. 그 시간동안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줄께'
그는 인생의 한탕을 노리는 사람들의 고독한 조력자가 되지만 스스로 욕망하는것은 하나도 없는 영웅처럼 행동한다.
사실 약간은 과장된 고슬링의 동작과 표정이 누군가에게는 거부감을 줄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이 영화가 다분히 만화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아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그럴듯한 클리셰를 가진것 일지도 모른다.
이런 영화는 심히 부담스럽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중에 다시 챙겨서 봐야 겠다고 생각했던 영화들 만 한 트럭이다.
영화 음악은 물론이고 배우 캐스팅도 정말 잘 한것 같다.
베르니 역의 알버트 브룩스는 내 기억에 정말 대단히 '웃긴'사람이다. 그가 연출했고 출연했던 <뮤즈>는 정말 웃긴 명작이다.
더 이상의 창작이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는 시나리오 작가가 살아있는 뮤즈의 황당한 요구 앞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자신을 의심하는 아내 때문에 곤경에 빠지지만 결국 아내도 뮤즈에 빠진다는 황당한 상황에서의 그의 능청맞은 연기.
그렇게 웃긴 사람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는 동네 깡패역을 하니 정말 더!욱!더! 무섭다.
<미녀와 야수>와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에서 쭉 이어져 오던 론 펄만의 만화적 이미지는
최근에 본 미드 son's of anarchy 로 인해 완전히 바뀌어서 굳어져 버렸는데
그래서 특히 이 영화에서는 가장 감정 이입이 쉬웠던 캐릭터였다.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는 베르니만큼 냉철하지 못하며 부정확하다.
그의 마피아 흉내도 쉽지만은 않다는것은 피자집 파티에서 박장대소하는 그를 쳐다보는 드레스 입은 여자 표정에 잘 드러난다.
십 센티미터는 족히 되는 하이힐을 신고 스탕달을 도와 강도질에 투입되는 블랑쉬는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80년대틱한 영화 음악과 저 보라색 스펠링에 가장 잘 어울렸고 의외로 이 영화의 누아르 분위기를 가장 잘 살린 인물이었다.
이미 동네 마피아들이 사전에 조작한 범죄라는것을 강변씬부터 여실히 증명하는 인물이고
얻어맞는 쿡을 무표정하게 쳐다보는 벌거벗은 스트리퍼들과 동일선상에 있으면서도
자신은 희생양이 아니라는 확신속에서 철저하게 이용당하는 영화 속 많은 인물들 중 하나이다.
감독인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다른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그는 모든 갱 영화와 필름 누아르를 섭렵한 영화광일지도 모른다.
고슬링이 사는 비현실적으로 텅 빈 아파트는 <히트>의 드니로의 집을 연상시켰다.
과거를 청산하고 낯선 도시에 흘러 들어와 일자리를 준 섀논의 요구를 충족시키며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듯한 고슬링이나
언제 급하게 떠나야 할 지 몰라 집은 거의 항상 비어 있다는 드 니로.
결정적인 순간에 본성을 내보이며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멀어져가는 장면들도 완벽한 평행이론이다.
전당포를 터는 장면들도 <히트>의 주인공들이 은행을 빠져 나올때와 규모면에서만 다를 뿐 긴장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속의 키스씬은 물론 로맨틱했지만 <칼리토>의 병원 엘리베이터 씬이 떠올라 집중할 수 없었다.
고슬링이 분장 마스크를 쓰고 니노의 피자집을 찾아가는 슬로우 모션 씬에선 정말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데
심지어는 게임 히트맨에서 히트맨을 암살하려는 섹시한 수녀들이 다가올 때 아베 마리아가 흐를때와 완전 같은 효과를 주었다.
그가 운전을 하는 장면에선 마치 깊은 바다를 잠수하는 사람에게만 들리는 그 바닷 속 공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고슬링의 침묵은 그의 드라이브 씬에 따라 붙는 영화의 나레이션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화 음악들은 인물들을 대신해 뭔가를 얘기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절묘하게 배치되어 흘러 나왔다.
사실 영화를 보자마자 영화 음악을 찾아서 들었고 가사들도 전부 검색해 보았다.
"천천히 가라앉는 배에서 155명의 사람들이 모두 안전하게 구조되었네.
너는 무엇을 해야 할 지 알고 있지. 네가 진짜 인간이고 진정한 영웅이란것을 증명해봐"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넌 뭔가를 숨기고 있는것 같아. 얘기를 좀 해봐. 넌 여전하구나"
고슬링이 아이린과 아들을 드라이브 시켜 줄 때 흐르는 노래 real hero 와 초반 운전 장면에서 흐르는 night call 은
침묵하는 고슬링을 한발 가까이에서 이해 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피자집에 와서 능청스럽게 중국 음식을 주문해 먹는 베르니에게 핀잔을 주는 니노와
유태인이 무슨 피자집을 차리느냐고 반대로 니노에게 빈정거리는 베르니.
친구 등처 먹으려다 이미 한 번 큰코를 다쳤지만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사업 자금을 제안하는 섀논.
니노의 피자집은 정겹기까지 하고 이들 모두는 그냥 각자 나름대로의 꿈을 가진 나이든 남자들로 남을 수도 있었다.
고슬링이 블랑쉐를 협박할 때 천천히 장갑을 끼는 장면이나 쿡의 머리에 총알을 대고 박는 시늉을 할 때
우리는 그의 전직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이들 모두는 철저한 공생 관계에 놓여있지만 필요에 따라 누군가는 그냥 잡아 먹히고 철저하게 폐기된다.
착하게 생긴 상어가 없고 그런 상어에게서 좋은 상어를 기대하기 어려운 세상.
(왜 굳이 고슬링과 베네치오가 보는 만화에 상어가 등장하는지 궁금해져서 사전을 찾아보니
shark 가 상어 뿐만아니라 고리 대금업자라는 의미도 가진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고슬링이 베르니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고슬링은 이미 그에게서 얻을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예감 했던것 같다.
고슬링은 그런 사람들에게 지배 당하는 세상의 생리를 알고 있고
착한 얼굴을 하고 그들을 벌하겠다는 그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를바 없다는것도 말하려 했던 걸까.
멀리건과 고슬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키스 명장면에 꼽힐 만큼 아름다운 키스를 나누지만
달콤한 키스 후에 아이린은 고슬링이 잔혹하게 자객을 죽이는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우연한 목격도 아니고 멀리건의 눈을 가리거나 도망치라는 소리지름도 없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그를 보여주는 살인.
명분없는 살인은 세상에 없지만 합리화 될 수 있는 살인도 없다.
모든 개개인의 꿈들이 얽히고 섥혀서 모든이들이 골로 가는 지경에 이르지만
어쩌면 목숨을 부지했을지 모를 고슬링은 멀리건을 다시 만나서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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