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리투아니아 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24일 저녁에 온 가족이 '크리스마스 이브 식탁'에 둘러 앉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시작하지만 재작년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 이브는 정식 공휴일이 아니었다. 24일이 평일일경우 대부분은 단축 근무를 하고 저녁때에 맞춰 부랴부랴 고향으로 떠나는 식이었는데 작년부터 크리스마스 이브가 정식 공휴일이 되었으니 공식적으로 크리스마스 당일 그리고 크리스마스 세컨드 데이까지 합해서 3일간의 휴일이 주어지게 된셈이다. 연간 4주라는 법정 유급 휴가가 주어지는 리투아니아에서 올해는 많은 이들이 쾌재를 불렀다. 23일이 월요일이고 27일이 금요일이니 조율이 가능한 사람들은 지난 21일부터 29일까지 황금연휴를 만끽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다른 나라에서 보내는것도 한편으로는 좋은 경험이겠지만 익숙한곳에서 마음껏 축축 늘어지면서 편히 쉬는것 또한 나쁘지 않다. 어쩌면 그게 가장 현명한 선택일지도.
리투아니아의 12월은 몹시 분주하다. 오후 4시가 되면 이미 어둠이 가라앉는 거리,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들뜬 기분을 감지하는것은 어렵지 않다. 참으로 구태의연하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크리스마스만 같아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정말 사람들이 항상 이렇게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리투아니아에서도 크든 작든 대부분의 집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한다. 난 그냥 슈퍼에서 사먹은 초콜렛 틴 케이스로 대신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면 마트 주류 코너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글뤼바인. 짐작컨데 프랑스나 저기 독일 같은곳에서 시작된 전통이려나. 북유럽쪽일까. 적어도 이 와인은 독일산이다. 크리스마스 전에 대략 4000원 정도에 마트에 깔리고 갑자기 가격이 오르기도 하며 크리스마스 후에 운이 좋으면 2000원까지 내린다. 두고두고 마시겠다는 기분으로 여러병 살 수도 있겠지만 같은 겨울이어도 2월보다는 12월에 어울리는 이 놈. 일년에 한 두번 정말 마시고 싶을때 마셔야 맛있는 그런 놈이다. 어둡고 쌀쌀한 골목을 걸을때 따뜻한 실내조명 아래 도란도란 앉아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볼때면 항상 생각나는 뜨거운 와인. 뭐랄까 맛은 다르지만 정종을 데워먹는 정서와 비슷한것 같다.
모르긴 해도 이 뜨거운 와인에 딸린 레시피도 수천가지일거다. 사실 이 와인 자체가 계피와 정향, 오렌지를 이미 함유한 상태라서 그냥 바로 끓여 먹어도 큰 상관은 없다. 저기 계피 스틱이나 정향 같은 것이 어떤 풍미를 더해주는것은 확실하지만 일반 와인을 끓이는 경우라면 모를까 이 글뤼바인을 끓이는데에 반드시 필요한것도 아니다. 불가사리 모양의 아나이스나 통후추, 생강,오렌지,자몽, 레몬을 넣는 사람들도 있고 설탕을 첨가하기도 한다. 와인을 끓일때 그냥 뜯어서 쏟아 붓기만 하면 되는 간편한 첨가제를 팔기도 한다. 나는 최소한 오렌지와 시나몬 정도를 넣어준다. 그리고 가가멜이 스프를 끓이는 마음가짐으로 끓어 오르기 전까지 잠시 저어주면 된다.
이 정향의 생김새는 그냥 뭔가 사랑스럽다. 달팽이 눈 같기도 하고 사슴 뿔 같기도 하고 봄의 새순 같기도 하다.
신은 정향에게 귀여움을 주신 대신 곧바로 씹어 먹을 수 없는 인간과의 거리감도 동시에 주신듯. 일종의 민간요법인데 치통이 심할때 소량의 보드카에 정향을 넣어 우려낸 것을 솜에 적셔 물고 있는 경우도 있다. 말린 사과를 끓이는 겨울 음료에도 이 정향을 넣는다.
빨대로 마셔야 더 맛있다.
몹시 뜨거우므로 천천히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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