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니우스 구시가지를 걷다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바로 녹색 그물망으로 아랫부분이 꽁꽁 싸매어진 발코니이다.
겨우내 쌓인 눈이 녹기 시작하면 건물 처마 밑의 거대한 고드름이 무서워서 인도로 걷더라도 긴장하게 되는 구시가지인데
고드름말고도 또 다른 골칫거리가 바로 이 오래된 발코니에서 떨어지는 콘크리트 부속물들.
땅아래에 이미 떨어져서 산산조각난 일부 콘크리트 조각을 보면 그 순간에 지나가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인지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예전에 우리집 베란다를 떠올리면 그곳엔 계절이 지나 더이상 필요없게 된 물건들을 넣어 놓을 수 있는 선반 같은것이 있었고
물 빠질 배수구가 있으니 호스를 끌어와 화초들에 흠뻑 물을 줄 수도 있었고 빨래를 널 수 있는 기능은 물론 첫번째로 중요한 기능이었을테고
하지만 베란다에 의자와 테이블이 있어서 앉아서 커피를 마신다던가 책을 읽는다던가 했던 한가진 기억은 없다.
요새 빌니우스에 새롭게 지어지는 대단위 주거단지들을 보면 베란다 면적이 훨씬 넓은 한국의 아파트 형태와 비슷한 건물들이 많다.
하지만 구시가지의 몇십년 혹은 백년이 넘었을지도 모르는 이런 건물들의 발코니는 한두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좁은 공간이고
그 기능도 봄부터 여름까지 화분으로 치장하거나 자전거를 놓거나 자그마한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기 위한 공간에 가깝다.
한마디로 날씨 화창하고 따뜻한 봄과 여름을 위한 공간.
심지어 대부분은 샷시도 없어서 겨울이 길고 추운 이곳에선 그 기본적인 기능을 제대로 다 하지 못할때가 많다.
그러니 자연스레 커다란 발코니가 무용지물인것이다.
나라 전체가 한날 한시에 난방을 시작하고 끝내는 난방 시스템을 갖춘 이곳에서
오래된 건물과 샷시 없는 발코니는 단열 효과를 떨어뜨리니 비싼 난방비의 주요 원인인데.
그래서 국가의 지원을 받아 건물 전체를 단열하는 리노베이션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신축 건물들이나 오래된 건물이라고 해도 돈을 들여 리모델링을 한 경우 난방 조절 장치를 갖추고 있는 경우가 있지만
난방 리노베이션이 안된 대부분의 오래된 건물이라면 집이 춥고 따뜻하고와 상관없이 한달동안 집을 비우고 말고와는 상관없이
주택 면적에 해당하는 난방비를 의무적으로 지불해야한다.
이만하면 난방을 중단해도 상관없겠다 싶은 따뜻한 늦겨울에도 어쩔땐 난방이 지속될때가 있으니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것도 당연.
특히나 구시가지의 이런 옛 건축물들은 창문 길이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천장이 신축 건물보다 훨씬 높아서 난방비도 많이 든다.
하지만 빌니우스에 사는 동안 한번쯤은 이런 옛 건물에 살아볼 기회가 오기를 바란다.
그래서 발코니 공사가 진행되기전까지는 안전상의 문제로 이렇게 그물로 싸매놓고는
콘크리트가 아닌 강화 플라스틱 재질로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무너져가는 발코니는 물론 행인 뿐만아니라 아래층 발코니에서 일광욕 하는 사람들에게도 위협적인 존재다.
부서지는 발코니위에 서있는것도 물론 안락한 느낌은 아닐거다.
이런 건물은 보면 알겠지만 도색도 새로하고 아주 정성들여 리노베이션된 구시가지의 건물인데 왠일인지 발코니 공사는 하지 않은듯.
같은 건물에 으례 발코니가 있어야 할 자리인데도 아예 제거해버려서 없는 건물들도 많다.
아직까지 나무재질의 창틀인곳도 많다. 나도 살아봤지만 겨울엔 엄청 추울텐데.
요즘 같이 좋은 날씨의 빌니우스에서 평화롭게 앉아서 차가운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는 발코니를 가졌다면
부서져가는 발코니여도 아마 사람들은 행복을 느낄거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기분좋은 미소를 흘릴 수 있는, 지나가는 나 역시도 그들의 망중한에 눈인사 할 수 있는 그런 아우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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