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약국과 서점이 체인 형식으로 운영되는 리투아니아. 헌책방이나 북카페가 아니라면 개인이 운영하는 순수 개념의 동네 서점을 찾기 힘든데 빌니우스 구시가지에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자리잡고 있는 서점이 있으니 바로 루디닌쿠 서점이다. 카페나 음식점이 자리 잡기에는 너무 아담한 거리이지만 서점 바로 근처에 카페 체인이 하나 들어서면서 서점은 왠지 더 서점다워졌고 카페는 더욱 카페스러워졌다. 서점 안에 들어선 미니 카페 컨셉은 너무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전략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아 쉽사리 들어가지지 않는다. 그저 책을 읽고 싶은 이들도 그저 커피를 사이에두고 마냥 수다를 떨고 싶은 이들, 아무도 편치 않은 넉넉하지 않은 아우라를 주기 때문인데 이렇게 약간의 거리를 두고 위치해 있는 서점과 카페를 보니 언젠가 이 서점에서 얇은 책을 한권 사서 근처 카페에서 진한 커피 한잔 들이킬 날을 꿈꿀뿐이다.
비오는 날 우산으로 찌익 긁고 지나가면 우두두 떨어질듯 간신히 벽을 붙잡고 서있는 벗겨진 칠.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많고 따뜻한 날보다 추운날이 훨씬 빈번한 이곳에서 커피 한잔과 아름다운 글귀만큼 찬 가슴을 녹여줄만한것이 있을까. 커피 한잔이 69년산 와인만큼 비싸지 않아서 다행이다. 멋진 글귀들이 부자들만 볼 수 있는 은행 금고 따위에 꽁꽁 숨어있지 않아 다행이다. 하지만 구시가지에서 좋고 마음에 드는 장소들은 그 존폐여부때문에 늘상 불안하다. 인구가 적은 이곳, 식당이든 무엇이든 항상 적은 수요에 시달리고 타산이 맞지 않아 좋은 장소들도 쉽게 문을 닫는다. 이쯤되면 아름다운 장소들을 살리려고 단골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가게를 사들인다는 신문 한켠의 작은 기사들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리투아니아어 서적뿐만아니라 외국 잡지나 서적,희귀 음반이나 관광 엽서등도 판매하는 서점. 좁은 장소에 들어서면 시선이 집중되어 마음 편히 구경할 수 없을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직원들과 한두마디라도 주고받을 수 있는 따스함이 있다.
책을 자주 사지는 않지만 빌니우스의 건축과 조각에 관련된 사진이 많이 들어간 책 몇권을 이 서점에서 구입했다. 표지가 예쁘거나 관심을 끌만한 주제의 책들은 보기좋게 저 창문 너머로 진열해 놓는 경우가 많다. 구입한 책 전부 오며가며 창문 너머를 흘끔거리며 혹해서 샀더랬다.
한두번인가를 이 서점에 음식을 배달해 준 적이 있다. 식당의 배달원이 개인 사정으로 일을 못했거나 차가 고장나서 정비소에 들어가 있었거나 아마 그랬을거다. 서점 문을 잠시 닫는다고해도 이 서점 근처에는 빨리 먹고 돌아올 수 있는 식당도 없고 직원이 혼자 일하고 있는데 배고파서 어디 나갈 수도 없다고 호소했던적이 몇번있다. 왠지 이 골목 한켠에 외롭게 자리잡은 서점 생각이 나서 원래 식당 원칙상 한그릇은 배달을 하지 않지만 어차피 집에 가는 길이어서 흔쾌히 그러겠다고 한적이 있다.
http://www.rudninkuknygynas.lt/
가끔 모든것이 장난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 도시. 기억할 수 있을까. 8월의 금요일 오후 7시쯤 이곳을 내리쬐고 있는 이 태양의 각도를.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한 아이이지만 왠지 노인과 바다를 읽어주고 싶어서 샀다. 사실은 내가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텅빈 배에 뼈를 드러낸 물고기를 묶고 돌아오던 안소니 퀸의 얼굴이 생각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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