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밀라노행 티켓을 상품으로 받고 부랴부랴 떠나게 된 2주간의 이탈리아 여행. <투스카니의 태양>의 코르토나, <냉정과 열정사이>의 피렌체와 그의 두오모 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것이 있다면 아마도 비행기에서 내려 생소한 밀라노 시내에서 첫끼로 먹은' 파르미지아나 디 멜란자네' 란 가지요리였다. <아이엠 러브>에서 틸다 스윈튼이 오르던 밀라노 두오모는 그렇게나 화려했지만 그 장엄함 뒤의 무기력함을 발견해버리면 한없이 초라해졌다. 밀라노의 명품거리는 오히려 희소성을 잃은채 투탕카멘 분장의 거리 예술인에게 사람들의 시선을 몽땅 빼앗긴듯 보였다. 약속이나 한듯 말끔하게 차려입고 베스파를 몰고 다니는 이탈리아인들로 붐비던 밀라노의 점심시간, 넉넉한 체구의 중년의 아저씨가 주문을 받는 테이블 몇개가 고작인 간이 식당에 들어섰다. 식당에 들어서서는 직원과 몇마디를 나누며 선채로 에스프레소를 급히 들이키고 유유히 사라지던 이탈리아인들. 따뜻한 라떼와 차가운 아포가또, 치즈가 흘러나오던 파니니, 그리고 신세계, 파르미지아나 디 멜란자네. 그 좁은 식당 구석구석에서 마주쳤던 모든 피사체들이 내 기억속의 밀라노의 전부가 될줄이야. 리투아니아에 가지요리가 있는것도 아니고 게다가 5년전엔 지금처럼 마트에서 쉽게 살 수있는 야채도 아니었다. 하얼빈 생활때부터 가지를 조금씩 좋아하기 시작한 나. 파르미지아나라는 단어만 보고 선택한 이 음식과 그렇게 사랑에 빠질줄이야. 이탈리아 여행 내내 메뉴판에서 melanzane 라는 단어를 보면 거리낌없이 주문을 했다.
이것은 반나절동안 머문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베로나에서 먹은 파르미지아나 디 멜란자네. 부엌이 갖춰지지 않은 이미 만들어진 음식을 데워만주는 편의점같은곳이었는데 역시 맛있는 음식은 차게 먹어도 그냥 데워먹어도 맛있나보다.
리투아니아어로 가지가 바클라자나스 Baklazanas 인데 왠지 어감이 비슷해서 정감있고 코즈믹 러브 라이더스의 멜라니라는 노래를 떠올리게하는 멜란자네라는 단어도 야채 이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로맨틱하지 않은가.
어제 만들어 먹은 멜란자네. 모짜렐라를 이미 아래층 가지 사이사이에 너무 많이 써버린탓에 맨 마지막에 덮어버릴 모짜렐라가 모자랐다.
이 음식을 만들때 가장 손이 많이 가는것은 기본적으로 가지를 굽는것인데. 소금을 뿌려놓고 물기를 제거하고 밀가루를 조금 뿌려 기름에 살짝 굽는것.
가지가 구워지면 사이사이에 파르미지아노와 모짜렐라, 토마토 소스와 풀어진 계란을 순서대로 뿌리고 덮어주면 된다.
그래서 만들때마다 생각하는것이 이탈리아에는 올리브 오일에 구워져 이미 말랑말랑해진 가지 자체를 따로 팔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절여진 오이지를 파는것처럼, 동그랗게 차례대로 썰어서 엄마가 조물럭조물럭 참기름 양념만 하면 되는것처럼 말이다.
매번 느끼지만 가지를 굽는 과정만 생략된다면 좀 더 자주 만들어 먹을 수 있을텐데.
하지만 가지를 가지런히 동일한 굵기로 써는 솜씨가 늘어나고 리투아니아에 좀 더 양질의 모짜렐라가 생기고
꼬졌다고 생각했던 구소련 가스 오븐에 익숙해지면서 이 음식을 만드는 속도도 맛도 나아지고 있다.
다음번엔 모짜렐라 바다에 가지가 겨우겨우 떠있는 느낌이 들도록 더 많은 모짜렐라를 사야겠다.
계란도 두개 정도는 풀어서 끼얹어야겠다.
그리고 좀 더 큰 오븐 용기를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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