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봄이되고 벚꽃이 피면 벚꽃엔딩이라는 노래가 인기가 많다는데 그 시기에 빌니우스에서 벚꽃을 볼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중고등학교 6년내내 벚꽃 완상의 시간이 있었다. 물론 화창한 봄날 그냥 수업을 하지 않는 자유 시간이라는 의미가 모두에게 더 강렬했지만 그때 하늘에서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참 많이들 뛰어다녔다. 왜 소원들은 굳이 힘들게 잡아야하고 한번에 불어서 꺼야하고 던져서 맞혀야 이루어 지는것인지 참 우스운 일이다. 생각해보면 참 풋풋한 시절이었다. 물론 난 그렇게 발랄하게 뛰어다닐 감성은 전부 내다 판 학생이었지만. 그래서 그런지 벚꽃에 대한 기억은 뜨뜨미지근한 물처럼 밍밍하다. 빌니우스 시청 근처에 조성된 조그만 벚꽃 언덕이 있는데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 오스카 쉰들러처럼 2차세계대전 당시 리투아니아에서 적지 않은 유태인들을 구한것으로 유명한 일본인 스기하라 영사를 기리기 위한 언덕이다. 빌니우스 사람들에게 벚꽃은 참으로 이국적이고 그 시기에 그곳에 가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지만 벚꽃에 대한 로망이 있는것도 아니고 뭔가 너무 인위적인 기분이 들어서 잘 가게 되지 않는다. 빌니우스에서 봄이 오고 있다는것 그리고 봄이 지나갔다는것을 알려주는것중의 하나는 라일락이다. 그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라일락은 항상 벚꽃과 개나리 진달래에 밀리는 느낌이다.
집근처에 라일락이 피고 지는 곳이 어딘지를 대충 알고 있다. 이곳들을 처음 몇년간은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봄이 되어 꽃이 피고 향기가 흘러나올때 '아 여기 라일락 나무가 있었네' 하고 생각했고 막상 다음해가 되었을때에는 ' 아, 맞다. 여기 라일락 나무가 있었지.' 하고 잊고있던 라일락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 다음해에는 '아 여기 이 라일락 나무 있다는거 다음해에는 꼭 기억해야지' 라고 다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의 겨울즈음에야 '아 이 나무가 아마 라일락 나무였지. 곧 꽃이 피겠네' 라고 미리 짐작하기 시작했다. 매번 향기만 맡고 꽃만 쳐다보니 라일락 잎사귀가 어떤것인지 나뭇가지가 어떤식으로 뻗어 있는지 따위는 한번도 눈여겨 보지 않았으니 꽃이 피고 공중에 색이 묻어 나야지만 그곳이 그곳인지를 아는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아주 이른 봄부터 성급하게 라일락 나무들이 있는 거리들로 일부러 삥 돌아서 다니곤 한다.
초록 잎사귀 위에 연보라색 물감을 스펀지에 묻혀 색이 번지 않게 조심스럽게 살짝 문지른 듯 흐드러진 모습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이 분명 없는데 담배 연기가 잔뜩 묻어난 비오는 날의 어떤 풍경과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교육방송의 밥로스 아저씨도 라일락은 잘못그렸을거야. 있지만 없는듯 느낌. 그 향기가 아니라면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존재. 개나리나 장미처럼 명확하지 않고 목련처럼 완고하지도 못한 수줍은 봄의 정령. 하지만 왠지 지나치게 길들여지면 중독될것 같은 느낌, 왠지 마냥 좋을것만은 같지 않은 묵직한 향기이다.
매해 피고 지는 라일락을 보며 문득 나에게 벚꽃엔딩을 대체할만한 곡은 제프 버클리의 '라일락 와인 Lilac wine' 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많은 음악인들이 커버했고 제프 버클리도 그의 'Grace' 앨범에 라일락 와인의 커버곡을 수록했다. 모든 라일락 와인을 듣고 또 들어도 마시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하는 것은 제프 버클리의 라일락 와인 뿐이었다. 니나 시몬의 커버곡도 제프 버클리의 그것만큼 유명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독한 어둡고 짙은 심해의 초록색에 가깝다. 와인보다는 압상트에 어울리는 목소리이다. 그냥 가볍게 취해서 기분좋게 흐느적거리기에는 너무 치명적인 독주이다. 제프 버클리의 버전을 듣고 있다보면 와인 레시피에 심장, 마음을 담았다는 가사처럼 자신이 부르는 노래와 그 노래 속 술에 취해 천천히 기분좋게 뜨거워지고 빨라지는 그의 맥박과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리는것 같다. 고작해야 가벼운 두통을 동반할 수 있는 그래서 당당하게 명확하게 고통을 호소하기에는 편치 않은 그의 라일락 와인. 이별의 아픔과 애절한 사랑은 아주 소극적으로 애둘러 호소할 수 있을뿐이다. 한장의 정규 앨범만을 남기고 갑자기 사고로 요절한 제프 버클리. 난 그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그의 음악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몇년후에 <바닐라스카이>의 영화 음악에 수록된 Last goodbye 를 좋아하면서 그를 알게 되었다. 거리에서 기타 하나들고 영양실조 걸린듯한 모습으로 버스킹하는 많은 초식남들의 표본. 하나의 음악 장르로 명확하게 구분해내기 힘든 가끔은 전위적이라 느껴지기도 하는 그의 자작곡들, 집요하다 싶을정도로 과장된 그의 바이브레이션과 그 자아에 도취되어 나 좋으면 그만이라는듯 흐물거리는 보컬은 물론이겠지만 난 그가 커버한 곡들 때문에라도 그가 참 좋았다. <바그다드 카페>의 메인테마 calling you 도 제프 버전이 더 좋다. 내가 좋아했던 스미스의 곡도 많이 커버했다. 모리세이의 음색이 독특하고 스미스 곡들이 워낙 서술적인 가사가 많아서 커버하기 쉽지 않은 곡이라 생각해왔는데 제프 버클리는 그냥 즉흥적으로 바이브레이션 뽑아내듯 그 긴 가사들을 우물우물 씹어서 던져버리듯 소화해낸다.
아직 여름의 열기가 시작되기 전 봄 내내 라일락 나무 주변을 지나치며 항상 흥얼거리던 노래. 2주정도 기분좋게 따뜻한 날씨가 지속되다 온도가 떨어져 매일 비가 내리는 요즘, 가보지 않아도 이제는 없을 라일락 꽃들. 라일락 와인, 라일락 엔딩.
I lost myself on a cool damp night
Gave myself in that misty light
Was hypnotized by a strange delight
Under a lilac tree
I made wine from the lilac tree
Put my heart in its recipe
It makes me see what I want to see
and be what I want to be
When I think more than I want to think
Do things I never should do
I drink much more that I ought to drink
Because (it) brings me back you...
Lilac wine is sweet and heady, like my love
Lilac wine, I feel unsteady, like my love
Listen to me... I cannot see clearly
Isn't that she coming to me nearly here?
Lilac wine is sweet and heady where's my love?
Lilac wine, I feel unsteady, where's my love?
Listen to me, why is everything so hazy?
Isn't that she, or am I just going crazy, dear?
Lilac Wine, I feel unready for my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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