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_2017)
한국의 겨울은 단지 가을보다 좀 춥고 여름보다 좀 많이 추운 상대적인 추위일뿐 추위 자체가 절대적인 혹독함이나 공포는 더 이상 지니지 않는듯하다. 하지만 겨울 그 자체만 놓고보면 더 춥고 덜 추운 날은 엄연히 존재하고 어제보다 더 추운 오늘을 지나온다면 오늘보다는 따뜻할지모르는 내일을 상상하며 겨울은 항상 그렇게 절대적인 틀속에 진행되는것 같다. 이번 겨울의 추위 중 딱 하나의 추위를 회상하라고 한다면 버티고개역의 기나긴 에스컬레이터 굴을 뚫고 나와서 올랐던 가파른 약수동 꼭대기 위의 전시 공간일거다. 석유 한통을 다 들이부었지만 이 공간은 애초에 물리적으로 따뜻하게 데울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발굴된듯한 시멘트 집터 속에는 추위에 관한 농담들과 시시콜콜한 계획과 상상들로 촘촘하게 채워지던 따스함이 있었다.
몹시 추웠던 이곳, 왠지 신발을 벗고 철퍼덕 주저 앉아야 할 것 처럼 자유로웠던 공간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멘트 기반의 몹시 고집있던 의자. 두꺼운 옷을 벗고 난로 근처에 앉아 오손도손 손을 비비기에도 차가웠던 의자, 커피믹스를 가져갔지만 보이지 않던 전기포트, 녹지 않은 마당의 눈과 코 앞의 펼쳐진 파란 하늘로 아주 오랜만에 잘 보존된 겨울을 만끽 할 수 있었다. 다 마시기에 너무 많을것 같아서 사간 동네 마트의 값싼 미니 와인과 남이 사온 바삭한 페이스츄리는 추위도 모르고 맴맴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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