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 배우들의 조합에 혹해서 보게 된 영화. <프랜시스 하>의 그레타 거윅이 예술 경영을 전공한 젊은 대학 강사로, 앞서 많은 영화속에서 소설가를 연기했던 에단 호크가 또 다시 어딘지모르게 궁색한 소설가로, 무슨 배역을 맡아도 배역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능청스러운 줄리안 무어가 보호 본능 자극하는 에단 호크의 까칠한 인텔리 부인으로, 미드 <바이킹>의 주인공 라그나르역의 트래비스 힘멜은 뜬금없이 수제피클에 페티쉬를 가진 피클 가게 사장님으로 등장한다. 심지어 감독인 레베카 밀러가 특정 배우들의 전작을 꼼꼼히 살펴보고 그들이 연기한 배역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낸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물들은 생생했다. 영화는 몹시 수다스럽고 마치 많은 영화들을 거쳐오면서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캐릭터들이 자신의 존재의 정당성을 역설하기라도 하듯 시시콜콜하다. 자신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이래저래 마음이 통한 여자를 만나 갑작스런 이혼과 재혼을 겪게되는 에단 호크는 영락없이 비포 트릴로지와 <파리7구의 여인>의 주인공이 이렇게 저렇게 혼합된 캐릭터로. 구석에 자그마한 부엌이 붙어있는 곳곳에 책이 쌓인 싱글녀 매기의 아파트는 긴 방황을 끝내고 새 직장을 얻어 혼자 살 집을 임대해서 우편함에 자신의 이름을 잘라 집어넣던 <프란시스 하>의 프랜시스의 공간과 자연스레 겹쳐진다. 마치 그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경력을 쌓고 점점 더 독립적인 여인으로 성장해가던 프랜시스이자 매기가 사랑에 빠지고 깨지기를 반복하면서 염증을 느끼고 결국은 자신만의 가정을 꾸리기로 결심하게 되는 하나의 연결된 이야기로 다가왔다. 트래비스 힘멜은 어떤가. 바이킹에서 가는곳마다 자식을 만들어내던 그가 피클 만들기를 업으로 삼으며 허무하고 나른한 어조로 누군가에게 정자를 제공하는 심미주의자로 분한것은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의외의 그리고 가장 절묘한 캐스팅이었다. <Maggie's plan> 과 <Blus is the warmest color> 는 요새 본 영화들 중 왠지 묶어놓고 기억하고 싶은 영화이다. 전자는 아는 남자로 부터 정자를 제공받아 자신만의 가정을 꾸리려는 매기에 관한 이야기이고 후자는 여자를 사랑하는 어떤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자신들이 규정 지은 관계의 덫에 걸려서 상처받고 관계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다시 성장하는 모습들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그려냈다. 그것은 얼마나 다양한 방식의 사랑과 가족의 형태가 존재할 수 있는지를 진보적인 관점에서 보여주기도 했지만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비틀어지기 시작할때의 진부함은 그것이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똑같음을 몹시 담담하게 묘사해낸다. 굳이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날때까지 마음 졸이며 기다리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바에야 그 모든 과정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고 능동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매기는 동네 아는 남자의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을 시도한다. 사실 그 자신이 싱글맘인 엄마와 단 둘이 외롭게 자랐음에도 (하지만 엄마와 보낸 시간이 행복했다고 말하는것은 잊지 않는다) 정자를 제공받아 홀로 아이를 키우려고하는 매기는 결정적인 순간에 아버지의 부재라는 결핍을 극복하지 못하고 아이가 둘있는 유부남과 관계를 맺고 결혼을 해버린다. 같은 전공 분야에서 승승장구하는 아내 옆에서 겉돌듯 소설쓰기에 집착하는 남자는 흡사 모계사회를 연상시킬 정도로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 뒤바뀐 가정속에서 자존감이 바닥난 상태이다. 하지만 그에게 결핍된것은 남편이나 아버지로써의 견고한 지위가 아니라 창작을 위한 영감이다. 그는 그의 소설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일종의 뮤즈를 만나면서 뚱딴지 같이 이혼을 해버리고 새 가정을 꾸린다. 꽤나 성공한 학자인 줄리안 무어는 에단 호크와 이혼을 하고 그가 새 가정을 꾸렸음에도 그와 부부관계와 별로 다를것 없는 관계를 유지한다. 공부외에는 모든것이 서툴러 보이는 전부인에게 그는 어찌됐든 정신적 동반자로써의 지위를 잃지 않는다. 모든 관계 맺음의 가장 강력한 동기는 결핍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결핍을 채우고 싶은 이기적인 욕구와 누군가의 결핍을 채워주겠다는 이상적이고도 전인류적인 오지랖이 세상에 하나뿐인 둘만의 집합을 만들게된다. 하지만 그 집합에 교집합이 생기고 그것이 그들만의 세상이 아닌 어떤 더 거대하고 이상적인 세상 한켠에 들러붙은 좁은 구석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서 관계는 변질된다. 그 변질된 관계에 돌을 던지면서 증오와 질투가 섞인 소모적인 감정싸움을 시작할것인가 쌍방이 함께 경험하는 어떤 결핍에 연민을 가질것인가. 영화는 후자를 택하면서 지극히 자신만을 생각하는 등장인물들을 오히려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관계는 계속해서 만들어진다. 우리는 그 덫을 벗어날 수 없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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