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도 그렇지만 영화도 추운지방이 배경이면 더 보고 싶어진다. 영화가 추우면 보통은 재밌다. 그 추위를 잔혹하지만 세련되게 묘사할 수 있다면 그 영화는 또 멋있다. 그런 영화들은 또 얼마나 폐쇄적인가. 그들은 절대 추위를 남겨두고 로스앤젤레스 같은 도시로 날아가지 않는다. 그들은 철저하게 고립된다. 낯선 곳에서 어쩔 수 없이 흘러들어와 발을 들여놓는 사람들만 있을뿐이다. <인썸니아>의 알파치노나 <트윈픽스>의 카일 맥라클란 같은 사람들 말이다. 이 영화에서는 사건의 심각성을 평가 절하한채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혈혈단신 파견되는 FBI 요원 엘리자베스 올슨이 그렇다. 주인공들은 그 어떤 눈보라와 폭풍에도 끄떡없을 것 같은 더 이상 적절할 수 없는 옷을 입고 등장한다. 추위를 일상적으로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방어해 낼 수 없는 종류의 추위는 다른 이들에게도 결국 마찬가지라는 눈빛으로 항상 의연하다. 이런 영화들 속 그 특유의 기후와 자연환경은 그냥 함께 어깨를 붙이고 살아가야 하는 동반자이지 이겨낼 수 있는 종류였던 적이 없다. 영화는 오랜 세월 이어진 백인과 미국 원주민들간의 대립이라는 고전적인 소재 위에서 끊임없이 실종되지만 미국의 실종자 통계에서는 누락되는 차별 받는 원주민들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하얀 설원에서 하얀 보호색을 띤 사냥용 방한복을 입고 사냥감을 찾고 피의자를 찾아 헤매는 백인 코리는 얼핏 강자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도 원주민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잃은 피해자일 뿐이다. 이 영화에서의 백색 설원은 오랜 세월 원주민들을 착취한 백인들을 상징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약한 자, 자신보다 약한 사냥감만 상대하는 동물, 그것에 굴복하고 타협할 수 밖에 없게하는 모든 불가항력에 대한 것이다. '이곳엔 아무것도 없어. 여자도 없고 적막뿐이라고.' '적막, 그것이 그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것이야.' 이것은 많은 것을 잃어가면서도 남겨진 가치에 순응하고 또 그것에 배반당하는 삶을 반복하는 사람들과 주어진 가치를 전복하려다 파멸해버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무리 깊은 발자국을 남겨도 눈보라와 모래 폭풍이 휘몰아치는 공간이라면 진실은 어떤 식으로든 왜곡된다. 그럼에도 그 사라진 발자국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 그리고 그 마저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와 <헬 오어 하이 워터>의 시나리오를 쓴 테일러 쉐리단이 감독한 영화이다. 사실 영화가 시작되고 감독이름을 봤을때는 저 영화들을 바로 떠올리지 못했다. 심지어 저 두 영화의 시나리오를 같은 사람이 쓴 줄도 영화 포스터를 보고서야 알았다. 하지만 윈드 리버를 보는 내내 저 영화들의 이미지들이 실제로 머릿속에 맴돌았다면 테일러 쉐리단은 정말 성공한 영화 감독이 아닐까. 모든 감독들이 자신들의 작품 사이에서 그 특유의 일관성과 고유의 빛깔을 뿜어내는 것은 아니니깐. 한편으로는 시카리오의 드니 빌뇌브나 헬 오어 하이 워터의 데이비드 메켄지 역시 테일러 쉐리단의 각본을 그의 의도되로 영화화 한 훌륭한 감독일지 모른다. 등장 인물들의 구성이나 고립된 배경속에서 마지막 한 방울의 눈물까지 착취당한 원주민들의 등장 같은 공통점 때문에도 그렇겠지만 어쨌든 이 세 영화는 트릴로지로 묶어도 될법한 영화들이다. 특히 윈드 리버에서 존 번탈이 갑작스럽게 등장해 짧고 강렬한 연기를 남기고 사라졌을때 시카리오에서 에밀리 블런트의 상대역으로 나와 역시 짧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의 눈빛이 생각나 더더욱 그랬다. 각각의 영화의 배경이 된 끝없는 설원이 펼쳐진 와이오밍의 원주민 보호구역과 건조하고 텁텁하기 그지없는 텍사스 사막, 거리거리 전시용 시체들이 넘쳐났던 멕시코의 어느 도시, 최근 일이년 사이에 본 영화들중에 이들만큼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해줬던 영화들은 없었다. 양심도 동정도 법도 부재한 아무것도 없는 각기 다른 황량한 배경속에서 이들은 마지막 남은 가치 하나를 수호하려 발버둥 친다.
가장 큰 긴장감을 유발했던 이 장면은 자동차들이 빽빽히 늘어선 도로에서 조차 아무런 죄책감도 경계심도 없이 총격전이 난무하던 시카리오의 초반 총격씬과 헬 오어 하이 워터에서 제프 브리지스와 벤 포스터가 벌이는 황무지에서의 마지막 총격씬에 대구를 이루는 장면이다. 마이클 만의 히트를 압도하는 총격씬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마이클 만의 뒤를 이을 감독이 있다면 테일러 쉐리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거듭났으면 좋겠다.
이건 그냥 설원을 배회하는 제레미 레너를 보자마자 우연치고는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서 첨부해 보는 사진. 이 멋진 배우는 자신이 출연했던 가장 괜찮았던 영화들에서는 항상 이렇게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의상을 걸치고 나오신다.
완전 무장하고 혼자서 투벅투벅 폭발물을 향해 전진하던 허트 로커에서의 한 장면.
갑자기 외계인과 조우하기 시작하는 박사님으로 등장하는 어라이벌에서도 역시 땀차는 옷을 입고 등장.
난 괜찮아요. 입으라면 입어야죠.
존 번탈 이 배우는 좀 더 잘 됐으면 좋겠다. 워킹데드에서도 너무 일찍 죽어버리시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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