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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5 to 7_Victor Levin_2014





외교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뉴욕에 살고 있는 프랑스 여인 아리엘. 작가 지망생 미국인 브라이언. 그들은 뉴욕의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브라이언이 먼 발치에서 끽연중인 아리엘에 반해 다가가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우연인듯 말을 걸지만 영화 후반부에는 아리엘이 반대편에서 걷고 있는 브라이언을 먼저 보고 그가 건너오기를 기다린 것 같은 뉘앙스로 아리엘의 관점에서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관객인 나는 왜 그 장면에서 브라이언을 좀 덜 동정해도 된다는 것에 안도한 걸까. 그것은 먼저 반한 사람이 더 사랑하는 것이고 그가 더 많은 것을 잃는 존재라고 끊임없이 암시하던 많은 사랑 영화의 문법에 세뇌당한 까닭이다. 몹시 없어 보이는 그런 관념을 이젠 좀 떨쳐내고 싶다. 그들은 항상 같은 시간에 호텔 앞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런 몇번의 만남끝에 브라이언은 아리엘이 유부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리엘은 프랑스인 남편의 미국인 애인 제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인의 존재는 그녀의 결혼 생활을 파국으로 이끄는 통속적인 장애물이 아니다. 아리엘은 제인에 대해서 남편의 장례식이 행해진다면 아리엘 그녀와 함께 울어 줄 또 하나의 존재일 뿐이라고 말한다. 제인은 결코 <위험한 정사>의 글렌 클로즈처럼 애인의 집에 무단침입해서 고양이를 삶을 여인이 아니다. (글렌 클로즈가 이 영화에서 브라이언의 엄마로 나온다는 것은 또 무슨 조화인지.) 프랑스인 부부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파괴하지 않고 배우자의 애인을 인정하며 함께 공존한다. 그 공식을 받아들일 수 없는 브라이언은 3주간 고민하지만 결국은 아리엘의 연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너의 전부가 아니라면 반쪽이라도 갖겠어' 라고 하던 <글루미 선데이>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 부분인다. 하지만 그들은 월요일의 오후 5시부터 7시까지만 호텔에서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아리엘이 브라이언에 대한 믿음을 담보로 정해놓은 규칙이다.  그녀의 남편은 브라이언을 파티에 초대하고 그는 연인의 아이들과 남편의 환대를 받으며 집에 들어서고 연인의 남편과 연인의 남편의 애인과 함께 근사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연인의 남편의 애인과 택시를 나눠타고 돌아온다. 그들의 조금 이상한 형태의 사랑은 얼마간 평화롭게 지속되지만 잡지사의 소설 공모에 당선되서 6000달러의 상금을 받은 브라이언이 샤넬 반지를 사들고 아리엘에게 청혼을 하면서 균형이 깨진다. 그는 오후 5시부터 7시까지가 아니라 아리엘과의 평생을 꿈꾼다.  아리엘은 브라이언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연인의 남편은 브라이언에게 25만달러 수표를 끊어주며 아리엘과 관련된 지출에 쓰라고 전해주며 빰을 갈기고 사라진다. 하지만 아리엘은 결국 프랑스 남편과 남는다. 브라이언은 자연스레 5시부터 7시까지의 사랑도 잃게 된다. 브라이언과 제인은 프랑스인 커플과 헤어진 이후 각자의 가정을 꾸린다. 몇년 후 아리엘과 브라이언 가족은 조우한다. 아리엘은 장갑을 벗어 브라이언이 선물한 반지를 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브라이언은 미소짓는다. 영화의 줄거리를 낱낱이 다 적어보았다. 이것은 브라이언과 아리엘이 결국 하나가 될까 말까에 관한 손에 땀을 쥐는 영화는 분명 아니다. 사랑은 무엇이고 결혼은 무엇이고 그 제도 속의 사랑이란 무엇이고 또 그 제도권에 들지 못한 사랑은 또 무엇일까. 무엇이이상적인 관계이고 무엇이 이상한 관계일까. 옛 연인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갈지도 모를 남편 브라이언을 둔 아내는 비련의 여인인가. 




브라이언과 아리엘의 관계가 성립과 해체를 겪는 과정속에서 관객을 그리고 브라이언 자신을 혼란에 빠뜨리게 하는 요소는 여러가지이다. 결혼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 평생 사랑하겠다는 맹세를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깨진 와인병을 거꾸로 꽂아놓은 담벼락 같은 제도일까. 그래서 그 테두리에서 빠져 나오려는 사람과 그 안에 남는 사람, 그 안으로 향하려는 모두에게 상처를 남기는가. 아니면 합법적인 관계 속에서 자식을 낳고 기르며 좀 더 안락하게 죽음까지 이를 수 있는 사회적인 안전망인가.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 제3자와 맺는 감정적 육체적 연대는 제도를 위협하는 기형적 관계인가.  제도권 밖에서 위성처럼 떠도는 사랑이 불멸이여도 그것은 불륜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해야 하는 걸까.  결혼이라는 계약을 잡음없이 이행하기 위해 수십년 동안 수차례 다가올 지도 모를 사랑에는 등을 돌려야 하나. 오히려 그런 사랑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결혼은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아리엘의 손에 끼워진 반지가 아무런 공식적 지위도 갖지 못했다고 해서 그 감정이 허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리엘이 브라이언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지정한 2시간의 규칙은 그런 관계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 그들 사이의 제도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리엘과 그의 남편이 정립한 사랑에 관한 그들의 철학이기도 하다.  아리엘이 자신의 결혼 생활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을 두고 유능한 남편이 보장하는 안락하고 부유한 삶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더 값진 것을 포기하고 쟁취하는 가난한 사랑이 진짜라는, '진정한 사랑' 컴플렉스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리엘이 브라이언을 그 정도까지는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상대적 질량으로 저울질 하는 고약한 습관에 기인한 것이다.  이들의 사랑을 비관적으로 보면 그것은 애인이 있는 남편에게서 상대적 상실감을 느끼고 자신도 똑같은 대안을 마련해두고 싶었던 아리엘의 판타지일뿐이고 낙관적으로 본다면 모든 관계는 그 자체로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쌍방의 믿음과 합의가 있다면 얼마든지 공존하고 존속될 수 있다고 보는 믿음이다.  





잠시 브라이언을 연기했던 안톤 옐친을 추모하며.  안톤인걸로도 모자라 옐친이라고 그가 나오는 영화를 볼때마다 우스개 소리를 하곤 했었는데 너무나 어린 나이에 황당하게 죽어버렸다.  꾸준하게 다작을 하면서 점점 가능성을 넓혀가던 배우였는데 아쉽고 안타깝다. 러시아 태생의 이 배우는 이름 때문에라도 항상 체홉을 떠오르게 했는데 <5 to 7>  에서는 실제로 작가 지망생으로 등장하고 결국 소설을 출간하는데 성공한다. 이 배역에 정말 잘 어울렸다. 영화의 배경이 뉴욕이어서도 더 그랬겠지만 이 영화도 그도 뭔가 우디 알렌스럽다. 약간 외곬수 느낌의 꾸밀 줄 모르고 단도직입적인, 글쓰는 남자, 몇몇 영화에서 작가로 출연했던 에단 호크나 존 쿠삭 같은 느낌도 주었다. 뱀파이어에게 오래된 기타를 가져다 주며 황당한 모습으로 등장한 이 영화 <Only lovers left alive> (http://ashland.tistory.com/208)   딱히 개성이 없는 배우라 생각되다가도 어떤 역을 해도 잘 해내던 배우. 




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이 영화 Like Crazy (http://ashland.tistory.com/198) 에서 였다. 이 영화에서는 영국인 여자친구와 장거리 연애하며 마음 고생하는 미국인으로 나온다. 아슬아슬하고 섬세했던 연기들, 이해가 가면서도 답답했던 그들의 행동. 이 영화의 제이콥이 조금이라도 브라이언 같은 성격이었다면 저들의 사랑이 그리 힘들지 않았을텐데. 저 영화에서 저들은 참 어렸고 살아있었다면  지금도 그는 여전히 어릴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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