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ese Take-out_Sebastian Borensztein_2011
한국에서는 <로베르토의 특별한 일주일> 이라고 번역된 이 영화. 스페인어 한 마디 못하는 중국인 쥔이 유일하게 남은 혈육을 찾으러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한다. 그가 가진 유일한 정보는 팔목에 새긴 동네 이름과 백부의 이름. 작은 철물점을 운영하는 아르헨티나인 로베르트는 오갈데 없는 그를 돕게 된다. 하지만 쥔은 백부를 찾을 수 없고 그 동네까지만 데려다주면 될거라 생각하고 시작한 그의 작은 선행은 결국 기약없는 동거로 이어진다. 로베르토라는 지푸라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중국인 쥔은 눈치껏 행동한다. 영화는 국적이 다른 낯선 이방인과의 문화적 차이를 보여주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하나의 시공간에서 맞물린 두 사람의 각기 다른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로베르트는 세상은 논리적으로는 설명 될 수 없는 일들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한다. 그 자조 섞인 불신은 외부를 향해 폭력적으로 분출된다기 보다는 그를 그 자신 속으로 가두어 버린다. 그런 로베르트의 생활은 정체되어 있다. 마당 한 켠은 철 지난 잡동사니로 가득하고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탁상 시계 속 숫자뿐이다. 자주 찾아오는 단골도 귀찮기만 하고 자기가 좋다고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여자도 밀어내기만 한다. 지나간 신문의 황당한 해외 토픽면을 읽고 닫힌 유리 장식장 속에서 말없이 웃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 보는 것이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이다. 약혼녀를 잃고 고향을 떠나와 과감히 새로운 세상속으로 진입한 쥔은 결과적으로 세상 모든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세상을 대하는 두 가지 방식이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든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임하든 어찌됐든 세상은 굴러 간다. 찰나의 우연에서 한 발짝 움직이는 순간 그것은 각자가 선택한 어떤 운명이 된다.
영화 속에서 로베르토는 거의 웃지 않는다. 하지만 쥔의 백부를 찾았다는 소식을 전달받고 살 것 같은 기분이 된 그는 한 가득 미소를 안고 쥔에게 아르헨티나 디저트인 둘체데레체를 꺼내 맛보게 해준다. 하겐다즈 중에 둘체데레체 맛이 있어서 난 지금까지 그게 그냥 그 아이스크림 회사가 만든 이름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우유에 설탕을 넣고 졸여서 만든 남미 전통 디저트였던 것. 영화 속에서 껄끄럽고 떨떠름한 관계의 사람들이 마주 앉아 먹는 음식들은 그들 관계의 어떤 강력한 윤활유가 된다. 둘체데레체 뿐 아니라 이들이 서로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도 중국 배달 음식이다. 물론 어떤 음식을 먹고 나자마자 더 없이 돈독한 관계가 된다거나 하는 급진적 변화를 매번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것은 타인에게 마음을 열게되는 어떤 전환점에서 우리의 가슴이 얼마나 말랑하고 달콤해지는 지를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재임이 분명하다. 새벽 바닷가에서 한바탕 멱살을 잡고 싸우다 텅 빈 부엌으로 돌아와서 이탈리아인 형제가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없이 먹던 <빅 나이트>의 오믈렛이나 갑자기 들이닥친 사촌 여동생이 못마땅하기만 한 윌리가 사와서 먹던 <천국보다 낯선>의 티비 디너. 그 조악한 미국식 도시락에 에바가 보인 티없는 호기심이라니. 각자의 동의하에 시작한 동거라지만 끝끝내 마음을 열지 않고 까칠하게 구는 브론테에게 조지가 끓여주는 <그린 카드>의 에스프레소 같은 것들. 물론 저 야심차게 꺼낸 둘체데레체가 무색하게 철물점 앞에 도착한 사람은 쥔의 백부가 아니었지만. 그 짧은 순간 로베르토가 만끽했던 둘체데레체는 아마 그의 전 생애를 통틀어 가장 달콤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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