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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My summer in Provence_ Rose Bosch_2014


한국어로는 러브 인 프로방스로 번역된 영화. 영어 제목에는 사랑 대신 여름을 프랑스어 제목에는 미스트랄이 들어간다. 사실상 한정된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다 사랑도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여름도 거센 미스트랄도 어느것 하나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느낌이다. 양 옆으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비포장 도로를 막무가내로 달리는 트럭 기사에게 조금 천천히 달려주세요 하는데 운전사는 아랑곳 하지 않고 속도를 밟는 듯한 느낌, 기분좋게 물컹거리며 입속에서 퍼지는 올리브 향기를 기대하다 덜 익은 올리브를 깨문듯한 느낌, 씨가 제거되지 않은 올리브 통조림을 스스로 선택해놓고도 으례 씨 없는 올리브인줄 알고 먹다가 이 사이에 매몰차게 들어차는 올리브씨에 화들짝 놀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래서 올리브는 항상 덜 익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먹어야 하는 것인데 이렇게 특정 지역이나 명칭을 보란듯이 영화 제목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자연스레 기대치가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관객은 항상 잃을게 없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올리브 나무 사이로> 를 상상했든 멕 라이언의 미소와 포도 향기로 가득했던 <프렌치 키스>를 상상하며 보든 불어오는 바람과 내리쬐는 햇살 드문드문 올리브 내음을 감지하려 했던 노력으로 어쨌든 뭔가를 잔뜩 이야기 하고 싶었던 누군가의 바램은 전달 받는다.  프로방스의 햇살과 성마른 미스트랄의 변덕을 경험한 사람과 그럴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 덜컹거리는 좁은 트럭 짐칸에서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는 영화. 막 파종을 마친 보슬보슬한 토양을 뚫고 나오려는 유년 시절과 꺽여버릴까 말라 비틀어져 버릴까 스스로도 몰라 질풍노도하는 청소년기, 이제는 다 알아, 더 이상 배울 게 없다 생각해도 결국 지나 온 모든 시간의 불완전함을 되새기며 살 수 밖에 없을 노년이 집약되었을 올리브 기름 한 병.  프로방스의 모든 햇살을 담은 듯한 아이의 미소와 선글래스를 써도 알아차릴 수 밖에 없는 얼굴을 이미 가져버린 칠십에 들어선 장 르노를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시선을 머물게 했던 것이라면 17년전 집을 나간 딸의 방 벽에 붙어 있던 포스터들이었다. 영화 <귀여운 여인>의 포스터와 슈게이징 밴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포스터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순간적으로 로이 오비슨의 멜랑콜리하고도 또렷한 목소리와 마블발의 허무하게 뭉그러진 노이즈가 귀를 채우며 아버지와 갈등을 겪고 집을 나가는 십대 소녀의 표정이 화면 가득 떠올랐다. 음악적 취향을 결코 하나의 장르만으로 규정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올리브도 하나의 맛과 질감으로 규정되어서는 안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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