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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La melodie (2017)


La melodie_Rachid hami_2017


영화를 보고 나서 제목이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점점 잦아 진다. 최근 들어서 부쩍 자주 그러는듯. 심지어 배우나 감독 이름을 몰라서 영영 기억해내지 못하는 영화가 있을 정도. 영화 내용을 대충 적었을 때 검색이 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학창시절에는 영화를 보고나면 작은 수첩에 기본 정보 정도는 기록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때처럼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 조차 잊고마니 우스울 뿐이다. 가끔 보는 프랑스 영화들은 특히나 배우나 감독의 불어 이름들이 입에 붙지 않아서 기억하는데에 더 애를 먹는다. 이렇게 한 번 정도 쓰면서 되새겨보는 이 영화는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파리의 초등학교 음악 수업에 강사로 초대 받는 어떤 바이올린 연주자. 얄미울 정도로 짖궂고 건방진 아이들에게서 그래도 말썽부릴 에너지와 의지라도 느껴지지만 이 음악 교사는 이미 너무 무기력하다. 연습실이 누전으로 불에 타버려 아파트 옥상에 모여 같이 연습을 한다거나 부모들 스스로 십시일반 연습실을 만드는 등의 드라마를 보여주며 활도 제대로 잡지 못했던 아이들이 결국 커다란 무대에서 멋진 공연을 하는 것으로 부랴부랴 결론을 맺긴 하지만 감독 자신은 따뜻하고 감동적인 드라마와 냉소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을 지닌 비판적 이야기 사이에서 어디에 좀 더 비중을 둬야할지를 몰라 갈팡질팡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과 선생님이 등장하지만 스쿨 오브 락에서의 잭 블랙의 패기나 유치원에 가서 좌충우돌하는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특유의 카리스마로 학생들을 휘어 잡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로빈 윌리엄스 같은 캐릭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오히려 미카엘 하네케의 히든 (https://ashland11.com/166)이나 마티유 카소비츠의 증오와 같은 어둡고 무거운 영화들을 보고 자란 감독이 노골적이고 불안한 선배들의 카메라 앵글을 연습하며 클래식 음악과 아이들을 통해 우회적으로 말랑말랑하게 프랑스 사회의 분열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같다. 차라리 음악 부분을 더 강조했다거나 더 탄탄하고 무기력한 갈등 구조를 만들었으면 나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 뭔가 아슬아슬 폭발할 것 같은 긴장감을 주다가도 결국 여러 번 봄직한 온화한 이야기들로 급하게 끝이 나서 조금 아쉬웠다. 영화의 배경은 아마도 이민자들이 주를 이루는 중하층민들이 몰려 사는 동네의 학교일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조금 더 많은 문화적 혜택을 주려고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수업이지만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별로 흥미가 없고 집에서는 바이올린 연습 소리가 시끄럽다고 타박을 하는 것이 부모의 문화적 수준이다. 아이들은 중년의 바이올린 교사가 자기들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쉽게 소통하지 못한다. 바이올린 교사가 알제리인 아빠와 프랑스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게되자 노르망디 사람인 줄 알았다고 놀라워 하는 장면이 그렇다. 그 순간 그들은 일종의 동질감을 느낀다. 많은 이들이 파리의 에펠탑을 보려고 모여든다. 허름한 아파트여도 최소한 집에서 에펠탑이 보이는 위치에 살고 있다는 것으로 일종의 자조섞인 소속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영화를 보면 에펠탑이 어떤 무소불위의 원심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느껴진다. 마티유 카소비츠가 증오를 만든지 20여년이 지났는데 이 영화는 심지어 증오에 나온 인물들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다. 분명 오랫동안 프랑스에 살고 있고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프랑스어를 구사하고 있지만 주류 사회에 편입되지 못하고 계속 겉도는 모습을 비추며 과연 20년이란 시간동안 우리는 어떤 변화를 이끌어 냈는가 자문하고 있는 느낌이다. 한 명의  지휘자와 100명이 넘는 연주자가 화음을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에서 서로 다른 악기들과 사람들이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1/3이나 차지하는 바이올린 파트만 딱 떼어놓고 봐도 그렇다. 같은 악기, 같은 악보를 보는 사람들에게서도 항상 완벽한 화음을 기대하긴 어려울거다. 아이들이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어쩌면 아이들이 별다른 문제없이 공통적으로 구사하는 프랑스어 같다. 때로는 철자를 틀리기도 한다. 미세한 억양도 다르겠지. 집에서는 코티드부아르의 음식을 먹고 유명한 축구 선수의 이름으로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정도만 환기시킬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같은 언어를 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사실이 완벽한 화합과 상생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낯선 나라의 이방인으로 그 나라 국민들과 같은 말을 쓰며 더불어 산다는 것의 안락함과 따스함을 몸소 체험하고 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가늠해보는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만약 마트 계산대 앞에서 나에게 감자를 던지며 너네 나라로 가라고 한다면 정말 참담할 것이다. 한국에 속속들이 발을 들여놓고 있는 어떤 이방인들과 한국인으로 태어나는 어떤 아이들의 미래가 영화 속 아이들의 모습에 겹쳐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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