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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The hunt (2012)


The hunt_Thomas Vinterberg_2012


이런 영화를 보고 났을때 가장 기분이 좋다. 우연히 보게 됐는데 생각지도 못한 긴장감으로 눈을 뗄 수 없을때, 보고 나서도 한참동안 여운이 남아서 계속 생각하게 될때, 그러다가 곧 잘 꿈도 꾸게 하는 영화들. 우습게도 얼마전에 빌니우스 거리에 사슴 네 마리가 무리지어 뛰어 가는 꿈을 꾼 것은 아마도 매우 이 영화 때문일거다. 물론 포스터 속에 매즈 미켈슨이 아니라 모르는 배우의 얼굴이 있었다면 보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결국 배우의 힘이 가장 큰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의미하는 표정일까. 어떤 장면일까. 고아로 태어나 용병으로 길러진 슬픈 남자의 이야기인가. 거대한 권력에 철저하게 이용당하다 피를 흘리며 터벅터벅 어두운 아파트로 돌아와 위스키 병 마개를 열곤하던 고독한 스파이의 이야기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헐리우드라면 이런 눈빛의 매즈 미켈슨을 충분히 그런식으로 소모하고도 남을테니. 이 영화가 특히 좋았던것은 미국 영화에 나오는 매즈 미켈슨이 아니라 덴마크 감독의 덴마크 영화 속에서 덴마크어를 하는 매즈 미켈슨이라서. 그리고 겨울을 좋아하다보니 이런 추운 지방의 일상적인 추위가 자연스럽게 묘사되는 영화들이 너무 좋다. 영화의 배경은 덴마크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랐고 각자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은 지금도 여전히 함께 사냥을 나가고 저녁이면 그들만의 지하 아지트에 모여 맥주를 마시며 옛날 이야기를 하는 어떤 남자들이 나온다. 오랫동안 감기를 앓다가 감기가 다 나아서 마트에 가면 계산원이 감기에 걸렸었다면서요? 하고 물어볼 것 같은, 개개인의 가정사와 일상이 여과없이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작고도 정겹지만 한편으로는 폐쇄적인 마을이다. 점점 줄어드는 인구로 초등학교마저 문을 닫고 주인공 루카스는 자연스레 교사직을 잃고 유치원 교사로 일하기 시작한다. 이혼한지 얼마되지 않아 아들을 만나는 날을 정하는데 있어서도 전부인과 큰 말다툼을 해야 하는 상황. 덴마크의 기후는 끝도 없이 차갑고 어두우며 혼자가 된 그의 집은 휑하기만 하다. 그나마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정성을 다해 놀아 주는 일상이 그를 겨우 지탱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친구 딸의 엉뚱한 행동으로 그의 인생은 하루 아침에 엉망이 된다. 친절하고 온화한 루카스를 평소부터 잘 따르던 친구의 딸 클라라가 루카스에게 구슬로 만든 하트를 선물하고 이것은 나보다는 다른 남자 아이나 부모님한테 주는게 좋을 것 같다는 루카스의 말에 조금 토라졌을 클라라가 루카스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유치원 원장에게 말하는 것이 그 발단이다. 원장은 그 이유를 묻고 클라라는 엉뚱하게도 루카스의 중요 부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물론 클라라는 그것을 본 적이 없고 모든 것이 클라라의 초등학생 오빠가 스쳐지나가며 장난으로 보여준 포르노의 한 장면으로부터 시작된 모방과 상상에 불과하다. 루카스는 순식간에 친구의 딸을 성추행한 파렴치한이 된다. 출근길에 친구의 딸을 손수 유치원까지 데려다 주던 그의 친절함은 그를 완벽하게 범죄자로 몰고간다. 물증은 하나도 없이 오로지 심증만이 지배하는 마녀 사냥. 결국 가장 소름끼치는 것은 루카스의 범죄 행위를 기정 사실화 해가는 어른들의 행동이다. 원장은 모든 학부모들을 초대해서 최근들어 아이들이 이상 행동을 보이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아이들이 자다가 꿈을 꾸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행동들이 루카스의 범죄를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로 둔갑한다. 유치원 원장은 치를 떨며 루카스와는 말조차 섞으려 하지 않는다. 유치원에 초대된 정신 감정가에게 클라라는 결국 아무일도 없었다고 말하지만 어른들은 그것이 놀란 클라라가 무서웠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 하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거의 향숙이 예뻤다에 귀신이 씌인 사람처럼 유도 질문을 한다. 당연히 절친들과의 관계는 틀어진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이 그를 믿어주는 아들과 그의 일부 친구들이다. 루카스는 결국 무죄로 풀려나지만 그는 이미 직업을 잃었고 그의 존재와 정체성은 이미 철저히 사냥당한 후이다. 그는 마트에서 물건을 사려다 두들겨 맞는다. 누군가는 그의 창문에 한밤중에 돌을 던진다. 그의 애완견은 죽임을 당한다. 아동 실종이나 아동 성범죄에 관한 영화가 의외로 참 많다. 무슨 이유로 어떤 사람들이 아이들을 납치하고 납치한 후에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살아 돌아오는 아이 혹은 그렇지 않다면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은 어떤가에 대한 영화들. 그 영화들 속에서 치밀하고도 설득력있게 묘사되던 범죄자를 추적하는 과정들이 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지만 영화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모두가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는 항상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지 틀렸음을 인정할 수 없는 수치심으로 인해 우리는 더 큰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휩쓸려 믿고 지나가는 것들이 과연 진실일까. 심지어 나도 그 누구도 루카스와 같은 희생양이 되는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누군가를 루카스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갈 어리석은 다수의 입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오싹해진다. 영화를 보다 보면 루카스가 왜 좀 더 적극적으로 결백을 입증하지 않을까 답답해지는 순간이 있다. 어쩌면 그가 사력을 다해 결백을 입증했을 드라마틱한 순간들은 오히려 화면 밖으로 철저히 숨겨버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해 유령처럼 변해가는 그의 모습만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하려 많이 애쓴것 같다. 루카스는 만취 상태에서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러 대부분의 주민이 모일 마을 교회로 향한다. 포스터 속의 모습은 교회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절규하며 뒤를 돌아 친구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이것은 적막에 휩싸인 눈덮힌 숲 속에 철저하게 고립된 겁에 질린 사슴의 눈빛인지도 모른다. 운좋게 총알이 빗겨나가면 사슴은 도망이라도 가겠지만 말과 불신으로 입은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클라라의 아빠는 루카스의 저 눈빛을 보고 더 이상의 총질을 거두고 화해를 청하러 그의 집을 찾아간다. 그럼 이제부터 그는 만나는 사람 사람마다 붙잡고 루카스의 결백을 입증하러 다녀야할까. 그렇게 하면 루카스가 받은 상처는 치유될까. 루카스의 아들이 사냥 허가증을 받은 날 그들은 모두 함께 사냥에 나선다. 그리고 숲 속 한 가운데 우두커니 서있는 루카스를 향한 총성. 그것은 여전히 그를 불신하는 누군가의 분노일수도 있고 자신의 판단이 실수 였음을 인정할 수 없는 그릇된 자존심에서 비롯된 비아냥거림일 수도 있다. 그것은 아직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는 경고음이다. 최소한 루카스 그 개인의 인생에서는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무방비 상태의 무기력한 매즈 미켈슨의 독보적 눈빛을 감상하는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영화이다. 사실 그가 국제적으로 알려진데에 미드 한니발이 한 몫 했지만 안소니 홉킨스가 구축한 잔혹한 렉터 박사의 원형도 명랑한 식인종은 아니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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